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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Dec 05. 2019

프롤로그 - In + Theatre, 극장 안에서

나는 고등학교 때 독특한 학생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것에 빠지곤 했다. 한 때는 무협 소설을 써서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엄청난 흥행을 했다. 판화 시간에는 선생님을 캐릭터로 만들다 따귀를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학창 시절의 이야기는 따로 있다. 바로 우유 팩으로 야구를 했던 추억이다. 게임의 규칙은 단순했다. 빗자루를 방망이 삼고, 우유 팩은 공을 대신했다. 사각의 우유 팩은 무게 가벼워 직구 대신 커브만 던질 수 있다. 그래서 공이 날아가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변화구를 다양하게 창조해냈다. 우유 팩을 어떻게 찌그러뜨리느냐에 따라 다양한 커브가 나왔다. 마침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활약하던 시기였다. 온 나라가 야구붐으로 들떠 있었다. 심지어 선생님까지 내가 하는 야구에 참여할 정도였다. 이 우유 팩 리그는 갑작스런 물리 선생님의 부상으로 강제 종료될 때까지 엄청난 동참을 끌어냈다. 이런 창의적인 도전과 경험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나는 이렇게 한예종에 들어갔다


한 때는 문학동인회를 했다. 졸업생 중 유명인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는 무명의 고등학교였지만 나는 진지했다. 그 모임엔 ‘우리는 랭보의 예지에 빛나는 눈과 정신을 소유한…’으로 시작해 ‘찬란한 문학의 깃발을 꽂는다’로 마무리되는 헌장까지 있었다. 한 때는 시화전을 하면서 시 쓰기에 골몰했다. 시가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은 초콜릿을 붙이곤 했는데, 그 경쟁에서 승리하면 알 수 없는 쾌감에 취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의 시작에서 이런 사소한 향수 어린 추억들을 꺼내 놓는 것일까.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연극영화과 입시를 책임지는 교수들은 영화제 수상과 같은 화려한 경력도 좋아하지만, 이처럼 재미있고 살아있는,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조차 저렇게 노는 아이였다면 대학에 입학하면 더한 뭔가를 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보인 학생은 합격의 가능성이 높기 마련이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내가 바로 그 증거다. 나는 두 번의 연영과 입시를 모두 합격했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연극영화과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학자 유형은 아니었다. 체질상 꼼꼼한 걸 잘하지 못하고, 정확한 인용이 생명인 논문 쓰기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연기 역시 아니었다. 오죽하면 한 교수님이 ‘너는 연기하지 마라’고 콕 찍어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창작도 아니었다. 막상 한예종에 가니 뛰어난 인재들이 득실거렸다. 저런 애들이 창작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인형 뽑기도 성공해 본 적이 없고, 오락실 오락도 끝판 대장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이런 식의 통찰이 담긴 글을 끄적거리는 거였다.


‘나를 안다’는 것은 왜 중요할까?


한양대 석사를 수료하고 처음 한 일은 대학로 조연출이었다. 석 달 일하고 25만 원을 받았다. 그 길로 그만두고 초등학생 논술학원, 얼굴마사지기 공장 등을 전전했다. 그러다 연기를 가르쳐 보면 어떻겠냐는 선배의 권유로 무턱대고 지금의 이 일을 시작했다. 연기학원 강사를 거쳐 결국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때 같이 시작했던 친구들이 아직 강사를 하고 있다면, 나는 이미 이 분야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서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성공이란 눈덩이와 같다는 것이다.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을 낳고, 더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내겐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훨씬 더 많은 일이 있다. 아마 5년 뒤에는 그들과 나의 차이는 더 벌어져 있을 것이다. 단지 돈이나 명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므로 더없이 행복하다. 다른 결과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일 뿐.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과 나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답은 한 가지다. 나는 나를 정확히 분석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결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매우 구체적인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팩트가 필요한 질문이다.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볼까? 내가 대학원 시절 대출했던 책의 목록을 뽑아 본 적이 있다. 무려 오백 권이 넘었다. 2년 동안 오백 권이 넘게 대출한 거다. 그 목록을 입시 때 활용했다. 이건 내가 직접 발견한 혹은 만들어낸 팩트다. 누구나 알 수 있는 팩트를 찾는 건 오히려 쉽다. 그러나 진짜 묘미는 보이지 않는 팩트를 찾아내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 보이지 않는 팩트를 찾아가는 것이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여정이다. 한 마디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 셈이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나만의 팩트를 창조해냈고, 입시에 활용했고, 인생에 적용했으며 (지금까지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만의 행복과 성공을 위한 단 한 가지 전략 


이런 발견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연기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연기를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이 한예종에 대해 일종의 광적인 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양대 석사 과정과 한예종 석사 과정을 동시에 겪어본 사람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론과 실기가 완벽히 균형 잡힌 사람이라면 근사하지 않을까? 또 입시를 지도할 때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물론 한예종을 이런 목적으로 들어간 건 결코 아니다. 내 꿈은 학원 원장이 아니라,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꿈을 위해 한예종에 간 것이다. 한양대 석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연극이론, 연기지도, 영화이론 등을 섭렵했다. 그다음 한예종 석사과정을 통해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했다.


결국 이런 나의 전략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이쪽 분야를 보니 다들 대충 배운 지식으로 연기 선생 밖에는 못 하고 있었다. 한예종을 비롯한 많은 연영과의 입시에 성공하려면 지적인 토대와 예리한 분석, 수준 높은 입시컨설팅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연영과 출신들이 희곡 하나 제대로 읽지 않고, 연기학원만 수백 개를 만들어 주먹구구식으로 지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학원을 만들었다. 이론과 정확한 컨설팅, 대학원 전문사 이상의 지도가 가능한 수준 높은 강사진과 수업, 수준 높은 학생들, 그리고 지적인 통찰로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학원을 직접 만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이렇게 생활한 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깝고, 학생들과 더욱더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내겐 학생들 입시와 내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나는 일이란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학원 운영이나 학생들의 입시를 다른 무언가를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고 일하지 않는다. 학생들 입시가 곧 내 삶이다. 내 삶은 학원, 블로그, 독서… 이게 전부다. 수업하고, 학원 운영하고, 시간이 나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일주일에 최소 10권 이상의 독서, 이것 외에 하는 일이 없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 최고의 삶이다


누군가 내 몸을 반으로 잘라도 입시로 반 토막이 날 것이다. 왼쪽도 입시 오른쪽도 입시, 이렇게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30년을 몰입한다면, 그땐 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계속 나를 밀어붙일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술교육, 예술학교, 예술가를 키워내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나의 평생을 여기에 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 일만 할 것이다. 나는 이 일이 그렇게나 좋다.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동네 일식집 사장님은 회전 초밥을 예쁘게 포장할 때 가장 아름답고,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은 새벽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열심히 꿈을 키우며 아르바이트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중학생은 중학생 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퇴임하고 주택에서 콩나물을 키우는 할머니의 쭈그러진 손가락 역시 아름답다. 기준은 바로 자신이다. 네가 선택한 삶이 최고의 삶이다. 너의 인생이 세상 어떤 인생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다. 바로 너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일이 내가 맡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이 일을 해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최선 다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성수동에서 얼굴마사지 기구 조립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그 회사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하지만 내 기준에선 그게 너무 당연했다. 보든 보지 않든 그건 내 일이니까. 내 이름이 걸린 일이니까 대충 할 수가 없다. 나는 어느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거다.


당신은 왜 연극영화과에 가려고 하는가?


한 번은 탄자니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과 한 달을 지냈다. 어느 별이 환한 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초원에서 지평선을 바라본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초원이란 짤막한 나무 몇 그루를 제외하곤 사방으로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곳을 말한다. 적도 근처의 끝없이 이어진 초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 안의 모든 찌꺼기가 다 빠져나간 기분이랄까? 그리고 내가 중요하다고 믿어 왔던 많은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둘씩, 내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제외하고 보니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았다. 내겐 그것이 예술이었다. 그래서 한예종에 가기로 했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연극영화과를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수많은 학생을 제치고 당신에 입학해야만 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정말로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정말 예술과 관련된 무엇인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남들이 다하는 학원 수강이나 남들 다 보는 책 보는 것 말고, 당신이 직접 도전하고 경험하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대단한 공모전이나 영화제 입상일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우유 팩 야구를 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즐긴 것처럼, 학교에서 오백 권의 도서를 대출했던 것처럼, 탄자니에의 초원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나를 만났던 것처럼, 내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중에서도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냈던 것처럼,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얼마나 말할 수 있는가. 꿈과 희망 따위의 뜬구름 잡는 얘기 말고, 아주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팩트에 기초한 진실한 얘기를,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예술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임에 동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되었다. 이 브런치가 그런 당신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깊은 사색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구체적인 대답들을 제시할 것이다. 이제부터 그 질문에, 사색에, 대답들에 귀 기울여 보자. 모쪼록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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