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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Dec 05. 2019

철학없는 아름다움은 지루하다

우리 학원은 신사동에 있다. 밤늦은 시간, 가로수길 초입의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씁쓸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노는 걸 뭐라 그러는 게 아니다. 노는 건 나도 너무 좋아한다. (이왕 노는 거 재밌고 멋지게 놀아야 하지 않겠나?) 문제는 노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됨됨이를 말하는 거다.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보면 알고(술집에서 주차 시비 붙어봤나?), 계단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와 가래침을 보면 알고, 사우나 가는 길에 목격하는 익숙한 광경들을 보면 안다. 새벽 6시, 학원 건너편 클럽 입구에서 비틀거리는 여자, 오늘도 여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듯 클럽 앞을 어슬렁거리는 (뾰족 광택 구두와 산 티 나는 광택 정장을 입은) 촌스런 남학생들…. 그들 삶의 꼼꼼한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비판할 자격도 없다. 다만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초라한 내면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새벽 5시, 논현동의 민낯


밤늦은 시간, 논현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해보면 한국사회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는 남을 의식하고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만, 뒤에서는 인간성의 추락을 보여주는 사회 아닌가. 그 양면의 모습을 논현동 일대의 골목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모두 겉은 화려하다는 거다. 정말이다. 한껏 치장하지 않고 클럽에 오는 여자들이 있을까? 명품 가방과 성형중독자, 논현동 새벽 5시의 탐앤탐스는 너무 잘 어울리는 화면구성이다. 화려한 외모의 여자들이 클럽에서 논다. 한편에선 멀쩡한 외모와 좋은 차를 가진 남자들이 주차 문제로 쌍욕을 한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외모 중심사회라는 게 이렇다. 화려한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빈약한 내면은 골다공증을 연상시킨다. 뻥뻥 뚫려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논현동의 상황을 도덕적 기준에서 비판하는 게 아니다. 내겐 감히 도덕적 기준을 들이댈 절대적 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나 또한 도덕적인 인간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고급스럽게 보이고 싶다면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다면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외적인 화려함에 너무도 쉽게 현혹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가장 아쉬운 것은 그 학생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순수함과 무한한 가능성이다. 아름답고 고결한 원석 같은 재능을 가진 친구가 불과 몇 번의 유혹 때문에 화려함의 꽁무니를 뒤쫓아 간다. 안타까운 일이다.


철학 없는 아름다움이 지루한 이유


문제는 그런 화려함의 코스프레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퇴직자가 너도나도 치킨집을 하듯이 조금의 유혹만 있어도 그 화려함의 세계에 자신을 팔아넘긴다. 마치 그것이 절대적 기준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러나 정말 가치 있는 배우를 꿈꾼다면, 수준 높은 삶과 성공을 바란다면 다른 가치들이 필요하다. 섣부른 비판을 하고 싶지 않기에 오로지 입시에만 국한지어서 말해보겠다. 확실히 연기과 입시에서 외모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 외모의 기준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개성과 매력이 중요하지, 획일화된 매력은 오히려 지루하다. 보통의 소개팅에서야 논현동 스타일이 눈에 띌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영화과 입시 아닌가. 얼마나 예쁜 학생들이 많을지 상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 없는 아름다움은 지루하다. 예쁜 학생은 무조건 입시가 잘 풀리지 않느냐고? 하지만 예쁘고 늘씬하기만 한 학생들은 최상위권 대학을 잘 가지 못한다. 내면의 깊이나 예술가로서의 (배우도 당연히 예술가이므로) 철학, 자신감, 개성과 매력이 없다면 그들도 예외 없이 탈락하기 마련이다. 배우의 다양한 개성을 발견하는 관점과 철학을 지속해서 밀어붙인 결과, 한예종 연기과 출신의 개성 넘치는 연기자들이 수없이 많이 배출되는 중이다. 단연코 돋보이는 수확이다.


외모가 아닌 연기 센스에 눈을 떠라


교수는 바보가 아니다. 지루한 학생을 절대 합격시키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철학 없는 아름다움은 지루함을 불러온다. 배우는 단순히 외모를 치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신체와 삶, 인격을 통로 삼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조각가가 조각 오브제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듯 배우는 자기 자신을 통로 삼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빈약한 배우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기만의 색깔과 생각, 삶과 매력이 없다면 결코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누구 보다 열려있어야 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충만해야 한다. 다른 배우들과의 협업이 가능하도록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걸릴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즉시 수정할 수 있는 순발력과 이해력은 필수적이다. 이런 걸 통칭해서 '연기 두뇌'라고 부른다. 일종의 연기 센스를 말하는 셈이다. 


외모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절대적이지도 않다. 앞서 언급한 철학 없는, 지루한 아름다움이 먹히는 대학이라면 진학하지 마라. 다행히 국내의 유수의 대학들은 외적 매력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한예종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연기 두뇌는 어느 곳에서건 무조건 본다. 지원자의 개성과 매력은 물론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의 독립성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철학 없는 아름다움은 지루하다. 연기자는 예술가다. 자신의 삶과 몸 그 자체를 소통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연기자라면 자신의 삶과 연기를 분리할 수 없으며, 개성과 연기 또한 분리할 수 없다. 획일성은 연기자에게 가장 큰 독이다. 그래서 예쁜 여학생들이 최상위권 연기과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입시에서 가장 집요하게 보는 것은 결국 연기 센스다. 열린 사고, 오감과 호기심, 순발력과 이해력 등을 통칭한 이 요소가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이다. 아울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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