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마디로 한예종 지진아다. 문제아이자 열등생이다. 대학원에서 그 드물다는 학사경고를 받은 사람이 바로 나다(물론 장학금 받은 학기도 있다). 대학원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냥 출석만 해도, 네 번 이내로만 결석해도 학점 A는 그냥 나오는 곳이 대학원이다. 그런 곳에서조차 학사경고를 받았다는 것은 불성실해서라기보다는 나만의 관점이 너무 분명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한양대에서 이미 석사를 수료한 나였기에 한예종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돌아보니 잘했다는 생각 반, 후회 반이다. 그래도 확실한 것 하나는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강의실에서, 극장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반항도 하면서, 좌절도 하고 성취도 하면서, 때로는 삽질을 하면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한예종이 상업적 이윤추구에서 자유롭다는 것, 또 학생선발의 자율권이 있다는 이 두 가지의 치명적인 장점 때문에 기존의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에선 나타날 수 없는 돌연변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예종은 커리큘럼과 시스템이 기존 대학과는 혁명적으로 다른 곳이다. 완전히 다르다. 한예종을 가야만 하는 첫 번째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시스템' 때문이다. 수업 자체가 성과로 평가받는 시스템, 학생 선발에 관한 교수들의 완전한 자율권, 그리고 현업에서 가장 앞서가는 현직 예술가들이 실기를 지도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수업 방식, 그리고 상상한 것들을 부담 없이 '공연’으로 올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야합’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들… 이런 뛰어난 시스템이 지금의 한예종을 만들어온 것이다.
한예종이 특별해진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학생 수가 ‘소수'라는 데 있다. 내가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을 때 합격생은 나 하나였다. 연출과는 두 명, 극작과는 한 명, 이게 전부였다. 교수님이 학생보다 더 많았던 셈이다. 동기생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니 얼마나 집중적인 교육이 가능했겠는가. 소수라는 것, 이것의 특별함은 과감한 투자가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한예종의 숨은 경쟁력은 이처럼 과감하게 학생을 극히 소수로 선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단 합격한 학생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예종의 세 번째 장점은 다양성과 전문성에 있다. 연극전공만 해도 그냥 연극전공이 아니다. 연기전공 연기에서 아동청소년 극전공, 연출전공, 무대미술전공에서는 조명전공, 분장 및 의상전공, 무대미술전공, 극작전공, 서사창작전공 그리고 연극비평전공과 드라마터지전공…. 이 정도로 세부적이어야 비로소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다른 학교의 현실은 어떤가? 내게 상담하는 사람 중에 무슨 과를 지원하냐고 물으면 연극영화과를 지원한다는 사람이 많다. 사실 연극영화과라는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실제로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극과 영화는 하나의 과로 통합되어 있었다. 이러니 전문성이라는게 생길 수가 없다. 앞서 서술한 연극원 하나만 해도 이렇게 세부적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 영상원 안에서도 영화연출, 편집, 촬영, 시나리오 그리고 방송영상, 다큐멘터리전공, 피디연출전공으로 나뉜다. 거기에 영상이론, 멀티미디어영상, 애니메이션 등등…. 이제 겨우 영상원과 연극원을 언급했을 뿐이다. 미술원과 음악원, 전통예술원 등 전문적이면서도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저마다의 독자성을 갖추고, 자연스럽게 융합과 통섭이 일어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한예종이다.
현대예술은 융합과 통섭으로 가고 있다. 예술과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연극과 영화의 경계가 무너지고(로베르 르빠쥬의 ‘안데르센 프로젝트’처럼), 국악과 연극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이자람의 ‘사천가’처럼). 이처럼 통섭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전문성과 다양성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그뿐 아니다. 한예종은 다른 학교와의 연계도 아주 훌륭하다. 고대, 한양대, 한국외대, 그리고 카이스트 등과 자유롭게 수업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대학들과의 교류도 빈번하다.
한예종의 마지막 장점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한예종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있다. 다른 예술대학과 한예종이 치명적으로 다른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다른 예술대학은 예술 그 자체보다 이상한 집단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 많다. 군기 잡고, 인사하고, 집합하고, 술 마시고, 자유롭게 연애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남자들이 군대를 다녀왔다고 해도 아직은 20대 중후반이다. 어리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런 어린 학생들을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아두고 집합과 같은 군대식 집단문화를 내버려 두거나 방조하는 것, 그걸 예술이라고 강변하는 교수들에게 첫 번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진짜 자유는 단지 자유롭게 사는 것에 있지 않다. 예술적 자유란 몰입 속의 자유다. 발레리나가 발가락이 변형되도록 자신을 몰아붙인 후에야 비로소 입증되는 예술적 자유가 진짜 자유다. 몰입의 자유, 몰입의 기쁨, 바로 그것이 예술가가 가져야 할 자유의 진짜 모습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이 몰입 속의 자유가 아닌 방종을 자유라고 착각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많은 제자를 합격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일부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많은 학교에서 방종이 몰입을 넘어서고 있다. 예술적 추구 때문에 하는 고민이 아닌, 선배에게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아니지 않겠나.
한예종은 이런 면에선 매우 자유로운 곳이다. 왜냐하면 학생 수는 적고 교수는 많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마치 강남의 대치동 학부모처럼 학생들을 대하는 곳이다. 일일이 따라다니며 가르친다는 말이다. 수업 스케줄 자체가 살인적이어서 일탈이라고 해봐야 ‘짱개(진짜 중국집 이름이다)’에 주문한 짜장면과 함께 소주를 마시거나, 학교 앞 울랄라 빈대떡집에서 빈대떡 먹는 정도가 전부다. 한예종 입구에 가보라. 석관동 주민들이 고스톱이나 윷놀이를 하고 계신다. 그 흔한 술집이나 유흥업소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들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단점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이래야 하는 거다. 이래야 진짜다.
줄리아드 학생들을 본 적이 있나? 실제로 만나보면 우리와 똑같다. 대신 매우 바쁘다. 그냥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교수의 악마적 커리큘럼을 따라다니느라 거의 혼이 나가 있다. 그런데 줄리아드 다니는 학생이 인근의 (하버드였나? 예일이었나?) 유명한 종합대학에서 복수전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 채로 책을 읽고 밥을 먹으며 수업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게 진짜다. 그런 게 명문이고 그런 게 교육이다. 교육은 자유에 앞서 책임과 헌신 그리고 대가, 무엇보다 몰입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교육이다. 촛불을 보라. 열정이 만일 불이라면, 그 불을 유지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을 태울 수 있어야 한다. 그 열정은 또한 고통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기쁨이다. 그 고통과 기쁨 모두를 알고 있는 나는 지금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