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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Mar 04. 2020

연기는 바깥이 아닌 안으로 향하는 것이다

연기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연기는 바깥으로 향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연기하면서 끊임없이 바깥과 외부를 의식한다.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간 여자들처럼 남을 의식하는 거다. 그러나 이런 전시성은 연기와 가장 먼 행위다. 왜 그럴까? 연기한다는 건 보통 어떤 배역을 맡는 것을 의미한다. 배역을 맡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창조한 세계 (그것이 연극이건 뮤지컬이건 영화건 간에)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즉 만들어진 스토리 속 인물의 삶을 행위를 하는 게 연기인데 이것은 삶을 꾸민다는 말이다.


연기와 미인 선발대회는 무엇이 다른가?


삶을 꾸미는 것의 반대가 배우 자신을 전시하는 거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와 연기가 다르다는 건 이런 것이다. 그래서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배역을 잘 소화한다는 말이며,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배우 자신을 더욱더 확고하게 감춘다는 것이다. 작품 속 캐릭터가 더욱더 뚜렷하게 표현된다는 말이다. 물론 현대연극이나 현대예술에서 배우의 전시성을 작품 속에서 의도할 때도 있다. 대표적으로 브레히트의 연기론을 들 수 있다. ‘게스투스’라고 불리는 브레히트의 연기방식은 배우의 자아를 감추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이를 드러내 끊임없이 관객을 자극한다. 이것은 생소화 효과를 노린 연기적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극 중 햄릿 역을 맡은 이상민이라는 배우가 있다고 치자. 그는 연극 중에 “아, 제가 이상민인데요. 제가 연기 한 번 해볼게요. 햄릿 연기”라는 대사를 한다. 그러다 “아, 잘 안되네요. 다시 한번 해볼게요”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배우 자신과 극 중 인물을 넘나들면서 연기하는 방식이 바로 ‘게스투스’다. 하지만 입시는 다소 클래식한 방식을 추구하므로 이런 생소한 연기는 나중에 도전해보기로 하자. 문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부족한 연기 덕에 ‘생소화 효과’가 유발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 면접 보는 교수는 칼같이 끊고 '예~ 수고했어요~' 를 외친다.


연기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연기다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자신을 잘 드러낸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연기는 일차적으로 바깥이 아니라 배우의 안을 향한다. 위대한 배우 중 내성적 성격이 많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입시에 성공하는 학생 중에도 내성적인 성격이 많다(그런데 무대 위에선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로선 참 매력적이다). 연기는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화가는 캔버스로, 조각가는 오브제로,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으로 예술을 한다. 이들은 예술가 자신과 표현수단이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연기자는 자신의 몸 자체가 표현의 수단이다. 예술가와 그 표현수단이 분리되지 않은 것이 연기예술의 특징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 번째, 자신의 몸에 대한 관리와 훈련이 중요하다. 몸이 통제되고 훈련되어야 하며 발성이나 발음 같은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1차 당일 대사는 이런 기초적인 면을 집중해서 본다. 두 번째, 자신의 삶과 인격이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삶 자체가 자신의 예술표현수단이 되어야 한다. 비비언 리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 역을 맡은 뒤, 그 역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연기자에겐 자신의 삶 자체가 표현수단이며, 연기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연기가 되어야 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배우로서의 조건이자 특권이며, 배우가 지닌 가장 숭고한 면이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연기는 결론적으로 훌륭하게 바깥을 향하게 된다. 안에서 바깥으로 흐르게 된다는 말이다.


연기는 끊임없이 안으로 향한다


왜냐고? 집에 원빈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원빈은 그냥 자신의 일상을 살아간다. 남들처럼 커피를 마시고 TV를 본다. 그런데 그런 원빈이 너에게 영향을 줄까, 주지 않을까? 반드시 영향을 준다. 원빈의 에너지가 바깥으로 흐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연기자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진실해지면 위대한 감독, 연출자, 작가들은 그런 배우를 도구 삼아 훌륭한 인물을 설계한 후 관객의 마음을 훔칠 것이다. 연기란 이처럼 역설적이다. 안으로 향하는 연기가 가장 파괴적으로 외부로 표출된다. 영화 ’밀양’에서 보여준 전도연의 연기를 생각해보라.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가 회개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전도연이 교도소를 나서 투벅 투벅 걸어가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나는 종종 수업 시간에 이 장면을 ‘등으로 하는 연기’라고 말하곤 한다. 이때 전도연이 누군가에게 보이는 걸 의식하고 연기할지를 생각해보라. 이때의 전도연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장면 자체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정도로 카리스마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연기는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 향한다. 끊임없이 안을 향하면서도 결국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것, 그것이 연기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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