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기대하지 마라. 이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고등학생인 네가 우연히 공연 하나(이런 경우 대부분 한 편이더라)를 본 후 필이 꽂혀 자신의 인생을 뮤지컬에 걸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갑자기 뮤지컬 연출을 공부하겠다고 선언한 후 부모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일단 드러눕고 난 후, 그다음에 하는 일이 뭔지 아는가. 엄마랑 같이 손잡고 뮤지컬 연출이 가능한 대학과 과를 찾는다. 가장 먼저 네이버부터 검색하겠지? 그러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멍청이들, 학원쟁이들이 올린 답변 등을 보고, 저급 블로그에 올라 있는 글을 읽고 비로소 ‘한예종’이란 이름을 알게 된다. 그 밖에 중앙대, 동국대, 한양대 등이 좋다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보들을 얻게 되겠지. 그다음엔 무얼 할까? 이제 한예종을 준비할 학원을 찾는다. 일단 대학은 가야 하니까. 잘 들어라. 이런 메커니즘 자체가 문제란 거다. 수많은 고등학생의 연극영화과를 향한 이런 막연한 꿈이 온갖 잡다한 자들의 생계를 유지해주고 있다. 과연 연극영화과 교수들의 월급은 이곳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1) 연출과 연극과 영화는 반드시 대학에서 전공해야 할까?
2) 그렇다면 국내의 관련 대학들은 이런 갈증을 채워줄 충분한 실력과 준비가 된곳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많은 고등학생이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나요?’ ‘이 분야는 인맥과 선후배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우선 연극영화과의 선후배는 너의 성공에 도움이 되기보단 장애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게다가 네가 여학생이면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남자선배들이 네 인생이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졸업한 언니들에게 물어보라. 물론 남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실기를 전공도 안 하고 그 분야에서 일할 수가 있나요?”
“실무적인 지식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대학 = 미래의 직업’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공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하려면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해야 한다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대한민국만의 공식이다. 그 입시를 가르치는 학원과 과외가 존재하는 말도 안 되는 현실, 다른 사람을 언급할 것도 없이 나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진실이 그것이다. 대학은 결코 미래의 직업과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 특히 연극과 영화 분야는 무조건 ‘아니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어설프게 공부하면 오히려 길을 막을 수도 있다.
과연 국내의 대학, 국내의 연극영화과가 너희들의 꿈과 소망을 구체화하고 정확한 전문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까? 너희들에게 입체적이고 통섭적이며 창의적인 교육을 제공해줄 커리큘럼과 인적 자본을 투자하고 있을까? 이후 직업적, 실무적 연관성을 고민하고 있을까? 아니다. 기대하지 말라. 대학은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천편일률적인 연극공연을 준비하거나, 원서를 번역하거나, 교수님에게 잘 보이기, 자기 돈 들여서 허접스러운 단편영화 찍는 정도가 전부다. 지나치게 냉소적이라고? 맞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네가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채 이 분야에 뛰어들 것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과 연극영화과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라. 연극과 영화에 대한 기초교육을 1번이라고 하고, 직업과의 연계성을 2번이라고 가정한다면 국내 연극영화과는 1번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모 대학 영화과는 실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현업에 종사 중인 유명 감독을 초빙하기도 한다. 대학로나 학교에 이런저런 시설을 갖추는 등 어느 정도 노력은 한다. 학교 다니는 동안 연극, 영화, 극작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나 실기를 공부할 정도의 환경은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다. 대학 4년 동안 관련 수업을 몇 과목 들었다고 해서 직업적인 연출이나 뮤지컬, 영화 등에서 탁월한 프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건 대학만의 잘못은 아니다. 대학은 직업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연극영화 역시 버젓한 학문이며, 연극영화야말로 이 시대 문화산업의 중심이 때문에 학문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학문적 뒷받침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연극영화과이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뮤지컬 배우, 뮤지컬 연출자, 영화감독, 제작자, 극작가, 연출자 등은 네가 직접 도전하면 된다. 전공이 경영이건 문학이건 기계공학이건 경영공학이건 심지어 애견미용을 전공했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직접 오디션을 보고(뮤지컬 배우 중에 전공자가 몇이나 될까?) 연출을 하고(고졸 학력의 이윤택이 부산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시작한 것처럼) 극을 쓰고(극작과 중 극작과 나온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냐?) 영화를 찍으면(김기덕이나 박찬욱을 생각해봐라. 이창동은 뭐 한예종 나와서 감독하나?) 되는 것이다.
대학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뮤지컬에 대한 관심 - 해당 분야의 대학 진학 - 뮤지컬 연출가로서의 직장’, 이런 공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은 하나다. 네가 연극영화과 입시를 직업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다면 ‘카오스적’ 세계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사, 약사, 교사, 변호사 등은 법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는 직업의 세계다. 만일 내가 ‘터놓고 병원’이라고 간판을 건 채 성형시술을 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구속이다. 앞서 열거한 직업들은 전공이 곧 직업이 되는 분야다. 그런데 연극이나 영화를 전공하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도전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는 거다.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예술’을 하기 위해서라면 연극영화과에 가서는 안 된다. 직업으로서 뮤지컬 배우, 뮤지컬 연출자, 영화감독, 제작자, 극작가, 연출자 등을 하고 싶다면 그냥 하면 된다. 전공과 상관없이 그냥 뛰어들면 된다. 카오스적 세계는 카오스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 유학을 가든, 원서를 뒤적거리든, 부산에서 이상한 극단을 만들어 한국적 영화를 시도해보든(연희단거리패처럼), 대책 없이 영화를 찍어 무작정 발표해보든 어떤 방식이든 가능하다. 시도가 중요하고 부딪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대학을 가서 전공하고, 직업을 가진 후 그다음에 꿈을 이루는 정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연극영화과에 가야 할까? 직업으로서의 대상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기량을 닦고, 실기를 배워 그 분야의 전문성을 얻은 후에 비로소 예술을 추구하기 위한 사람들이 가야만 한다. 예술적 추구는 그 추구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이기에 대학에서는 대학에서만 가능한 것들을 해야 한다. 비상업적인 실험 연극이나 실험 영화, 통섭 예술, 그런 것들 말이다. 대학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실수들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직업으로서의 연극영화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연극영화’가 되어야 한다. 연극영화가 더 좋은 직업을 위한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네가 이 분에서 ‘출세’를 원한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서울대를 나오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연고대나 카이스트, UCLA나 UC 버클리, 뉴욕대 정도는 나와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분야건 서울대, 연고대가 최고의 직업 연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에로 연극영화과 교수 중연극영화과 출신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대부분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다. 예술감독이나 예술기관장이나 이 분야 지도층들을 봐라. 연극영화과 출신인가? 아니면 명문대 일반학과 출신인가? 연극영화과를 성공의 도구로 삼겠다는 건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직업으로서의 성공을 원한다면 어설픈 실기 배우겠다고 학원 다니지 말고 죽도록 공부해서 서울대를 가라. 그리고 대학원은 아무 대학이라도 좋으니 미국에서 나와라. MFA는 비교적 쉽게 딸 수 있다. 영국은 1년이면 된다. 돈 안 되는 연출 몇 개 하고 대학 강사 기웃거리며 어슬렁대다 보면 결국 어떻게든 교수 정도는 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 못해서) 힘들다 싶으면 유학을 가라. 뉴욕대 정도 편입하는 건 한국에서의 노력에 비하면 사실 거저먹기다. 공부 못하고 돈 많은 집 애들이 그 길을 가는 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예종’은 객관적으로도 갈만한 가치가 있는 학교라고 본다. 학교의 철학이나 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교수진 역시 맹신할 정도는 아니다. 인적 자원이 좋아서다. 시스템 역시 그렇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최고 수준의 명문 예술대학이라 할 만하다. 일본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시스템을 한국에서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정말 뛰어난 인재들은 한예종에 모두 모인 것 같다. 전문사 과정을 보면 거의 둘 중 한 명이 유학파, 명문대 출신이다. 아니면 자기 작품 세계가 뚜렷한 대단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든가. 탁월하고 진지하고 치열하다. 그래서 준비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기회가 된다면 인생에서 한 번 정도는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말 좋은 전략 하나를 말해주겠다. 서울대, 카이스트, 연고대, 유학파… 스펙 좋은 학생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냥 스펙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말이다. 내가 지도한 학생 중에 서울대 출신으로 한예종 영화과 전문사에 입학한 친구가 있다. 머리를 잘 쓴 것이다. 지금은 대학들이 현직에서의 경력 등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서울대를 나와 이런저런 유학 과정을 밟았다면 교수 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 불문학과를 나와 한예종 전문사를 나온 후,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서 온다고 가정해보자. 거기다 한예종 다니는 사이에 단편영화 몇 편을 찍은 후 국제영화제에 출품한 경력이 있다면 어떨까? 문화기술 관련 교수직이 훨씬 더 가깝지 않을까?
좋은 직업을 위해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지 마라. 후회한다. 연극영화 그 자체로서, 즉 학문, 예술, 작업, 연구, 작품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직업이 되는 것이다. 이 분야의 직업을 얻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연극영화과를 나올 필요가 없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도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예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고 추구할 목적이라면 연극영화과에 진학해라. 현재의 교육시스템으로도 충분히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연극영화과를 직업의 도구로 삼지 마라.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다. 예술 그 자체를, 학문과 실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