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 마케터의 생존 철학
A 클라이언트 : 광고 소재 바로 변경해 주세요.
B 클라이언트 : ASAP입니다. 내일 오전까지 될까요?
C 클라이언트 : 다 좋은데, 임팩트가 좀 약한 것 같아서 오후까지라도 보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알아보지 않으면 되지 않는 급박한 요청이 하루에도 N회차 빗발친다. 요청 건들에 대한 대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18:00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덧 이런 사이클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다. 어느덧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8년 차가 된 지금, 급한 요청 건에 대응하는 법을 깨달은 탓일까. 사실 큰 노하우라거나, 방법은 없다. 어찌 됐든 '에이전시(대행사)'이지 않은가. 우리가 대행해 주는 것들에는 그들의 고민도 포함된다. 그래도 나름 오랫동안 근무를 해오면서 축적된 나의 에이전시로서의 마음가짐이 있다. 이런 마인드셋은 소용돌이 같은 일정과 업무에도 나의 멘털을 지켜주는 방파제가 되곤 한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범람되는 때도 있다.) 그 방파제들은 생각보다 별게 아니지만, 별 것인 존재로 나의 일상을 지켜준다.
모든 고객사들이 에이전시를 찾을 때는 급하게 필요한 일이 있을 때이다. 초년생 때는 뭐가 되는 일이고, 뭐가 안 되는 일인지 판단을 하지 못해서 감당하지도 못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꽤나 애를 쓰곤 했더랬다. '전문가시니까요~'라는 말을 들을 때 '저희도 잘 모르는데요'라는 마음속 문장보다 '정리해서 제안드리겠습니다.'를 말한 탓이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하나 둘 늘어갈 때는 이런 요청 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업무의 흐름과 나의 건강을 책임진다. 이런 상황에서의 정답은 '내가 감당 가능할 만큼 일을 해서 가능한 정도인가', '내부에 이 일을 할 인적인 리소스가 있는가'를 판단해서 가부여부를 빠르게 회신하는 것이다.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면 클라이언트에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함을 잘 설명하는 것도 에이전시 마케터의 역량이다.
그렇기 위해선 내가 그 일을 하는 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의 범위와 깊이, 그리고 그에 따른 시간에 대해 길어진다면 양해를 구해보는 거절법을 터득해 보자. 사람들은 예스맨보다, 나의 요청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얻는다. 다만 Emergency ASAP 건이라면 최우선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되, 모든 리소스를 동원해 이렇게 빠르게 처리해 주었다는 것을 인지시키자. 만약 안 되는 일이라면 안된다고 이야기하자.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일들은 대게 우리를 소진시킨다.
마케팅 에이전시의 업무 영역은 크게 온라인 마케팅, 오프라인 마케팅으로 크게 구분되지만 그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수천 가지의 마케팅 영역이 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 오프라인 매체를 다루는 일, SNS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 그리고 오프라인 행사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일 등 내가 아는 일보다 모르는 일이 많을 만큼 마케팅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새로운 과업을 받을 때는 그것을 알아가는 데에도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럴 때에는 조직 안에서의 전문가를 찾는 것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단초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처음 진행하는 일을 할 때에는 그 일을 해보았거나, 관련 제안을 해본 사람에게 무조건 묻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나 관점을 제시해 주면 8시간을 해야 하는 업무가 단 2시간 만에 해결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단 핑거 프린스(프린세스)처럼 아주 사소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 방향을 해결하기 위해서 했던 나의 고민과 그 사람에게 들을 포인트들을 잘 정리해서 문의하는 것은 필수이다.(된다면 커피 한잔의 미덕도 함께). 어떤 업무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물음이 길어질 때는 나에게서 답을 찾는 것이 정답이 아닐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다.
일은 계속해야 하지만 우리의 리소스는 한정적이기에 이 업에서 길게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생각해 본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함의 증거라는 말이 있지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직업인으로서의 안녕은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법. 일요일이 끝나가는 오늘, 내일의 안녕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