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3. 로마에서의 첫 유럽 여행기
마지막 신랑 신부 행진이 끝나고, 예식의 막이 울렸다. 아내는 드레스에서 원피스로, 나는 예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이제는 신혼부부가 되었음을 살갗으로 느꼈다. 짐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온 뒤, 축의금을 정리하고 온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가족들에게 안부를 나누니 금세 시계는 저녁 11시 30분을 가리켰다. 결혼식 이후의 일들을 하나 둘 처리하고 난 뒤의 후련함이 스친 찰나, 여러 옷가지를 펼쳐놓기만 하고 정리되지 않은 신혼여행 캐리어가 눈에 띄었다. 나는 흐린 눈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음 날의 나에게 "신혼여행 짐 싸기" 일을 맡기며 눈을 붙였다. 다시 생각해도 결혼식 다음날 밤으로 신혼여행 비행기를 예약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11박 13일 첫 유럽 여행!
일본, 태국, 방콕, 푸꾸옥, 코타키나발루, 중국 등 나름 해외여행을 한 편이라 자부한 나였지만, 유럽과 미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300만 원 이상의 지출을 각오할 만큼 유럽 여행에 대한 큰 욕망이 없어서였기도 했고, 웬만한 세계음식은 한국에서 하는 것이 한국인에 입맛에는 더 맛있다는 주의여서이기도 했다. 커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에게 최고금 원두의 향과 산미가 아무리 좋은 거라고 설명해 보았자 크게 와닿지 않은 이유랄까. '신혼여행'이라는 큰 명목이 없으면 굳이 유럽까지 오지 않아도 될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이기에 유럽 신혼여행은 더욱 특별히 다가왔다. 새로운 문화와 환경 속에서 아내와 함께 맞이할 상황들과 경험에 기대되는 마음을 품고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랐다.
새벽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비행 기간 동안 푹 자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장기 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나 상의 사이즈가 XXL인 내가 가만히 있기란 한없이 좁은 구역이었다. 생각보다 좋았던 것은 Turkish Airlines(터키쉬 항공)의 기내식이었다. 기내식 특성상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메뉴의 구성도 다양했고 온도도 따뜻하게 제공된 점이 맘에 들었다. 0.5평이 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사육당하듯 3번의 기내식을 해치우고 나서야 나는 이탈리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로마 피우미치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발을 내딛을 때, 키가 2m는 족히 돼 보이는 이탈리아 사람이 즐비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제 이탈리아에 왔구나 실감하는 순간 막혀 있던 하체의 혈관이 풀리는 시원함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Mamma mia
로마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맘마미아였다. 지금까지 본 아시아의 풍경과는 이질적인, 아니 이세계적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풍경과 건축물들이 보였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로마 건축물의 패턴, 새푸름한 하늘, 핀터레스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시계 사이니지까지 눈으로 점유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감상을 아내와 공유하면서 로마를 더 진하게 음미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로마의 풍경은 하늘이 더 파랗다느니, 갈매기가 많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나누며 아내와 함께 있음에 감사했다. 아내는 나와 달리 가족여행으로 해외를 자주 다녔어서 20년 전에 로마를 왔었는데, 로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나와 함께 다시 와서 좋다고, 그리고 내가 로마를 맘에 들어함에 더 좋아했다. 로마의 푸릇한 풍경 아래에서 나의 감정에 기뻐하고, 또 시무룩하는 아내를 보며, 나도 누군가의 감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마에서는 바티칸 투어, 그리고 로마의 야경 투어를 신청했었다. 로마 여행의 7할은 아내가 주도적으로 신청했기에 나는 꼼꼼한 아내를 둔 덕을 누릴 수 있었다. 쿠팡에서 5천 원짜리 하나를 시키더라도 5가지 이상의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최적의 선택을 고민하는 아내였기에 아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선 믿고 따라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로마의 이튿날, 바티칸 박물관에 도달했을 때는 경이로움을 넘어 공간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라 미술 전시회에 가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천장에 새겨진 벽화의 웅장함과 조각의 디테일을 보며, 가톨릭교가 전 세계에 퍼질만한 힘을 가졌는 지를 깨닫게 되었다.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 프레스코화 기법으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의 벽화는 하루 17시간 동안 천장을 바라보고 그려야 했다고 한다. 거장의 한쪽 눈이 실명될 정도의 예술을 한 방 한 방 지날 때마다 느낄 수 있음에 경탄했다. 무교인 나조차도 종교적인 힘과 신념이 생길 정도의 압도감에 과거 로마인들이 신념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던 공간이었다.
가이드와 함께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들었는데 각 방을 지나면서 작품이 그려진 시대상과 작품의 의도를 함께 들을 수 있어서 더욱 몰입해서 바티칸 박물관을 즐길 수 있었다.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는 그림들, 시대가 지나면서 다시 그려진 작품의 의미를 들으며 2025년에 내가 바티칸 성당을 온 경험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곱씹어보았다.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AMALFI – SICILY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저와 신부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보는 이야기에 대해 담을 예정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각자의 언어로 함께 있는 시간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신부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