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자, 마시자, 달리자. 그리고 사랑하자

EP 04 그와 그녀가 이탈리아를 살아가는 방식

by 래리
로망(ROMAN) : 실천하고 싶은 이상이나 개인적인 낭만

우리가 바라는 추구미나 이상이라는 뜻으로 흔히 쓰는 '로망스', '로망'의 어원은 도시 이름인 ROMA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로마라는 도시 자체가 이상적이고, 개인적인 낭만을 뜻하는 뜻으로 쓰였다니, 유럽인들이 얼마나 로마를 이상향적인 도시로 바라봤는지 알 수 있다. 로마에서 3일 남짓 있었던 나도 로마인들 속에서 그들이 바라보았던 로마인들의 이상향을 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혀로 음미한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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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와인

으레 로마에서는 물보다 와인과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고 할 정도로 와인이 저렴하다. 저렴한 와인은 글라스당 5유로(약 8천 원), 보틀은 12유로(약 1만 5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와인 한 병만 시켜도 10만 원은 쉬이 넘는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식사에 와인을 빼고 마시는 것은 손해인 장사였다.

20250511_113312.jpg 운이 좋다면, 보틀 같은 글라스를 받을 수도 있다.

화이트 와인은 "비노 비앙코(vino bianco)", 레드 와인은 "비노 로쏘(vino rosso)"라고 하는데, 나와 내 아내는 매 끼니마다 의례적으로 비앙코와 로쏘를 번갈아 주문하며, 이탈리아의 와인을 한껏 즐겼다. 와인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라도 걱정하지 마시라.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하는지, 달달한 와인을 좋아하는지 취향만 말해주면 점원이 친절하게 괜찮은 와인 리스트를 추천해 준다. 나는 그 리스트에서 원하는 느낌의 와인을 고르면 될 일이다. 레스토랑마다 다루는 와인이 달라, 와인 리스트를 보고, 추천을 받는 경험조차 이탈리아 미식을 탐험하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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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또한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한국에서는 특히나 배달로 피자를 많이 먹는데, 이탈리아에서는 화덕에서 바로 나온 피자를 즐길 수 있다는 데에 특별함이 있었달까. 주위를 둘러볼 때 보이는 이탈리아인과 로마의 건축물도 피자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감미료가 되었다. 한국보다 토마토소스의 산미가 한국보다 더욱 높아 소스마저 신선하게 느껴졌고, 위에 올라가는 토마토나 루꼴라 토핑도 향이 풍부하고 풍미가 살아있었다. 피자의 재료들이 스포츠 선수들이라면 자국의 홈그라운드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는 느낌이랄까. 토마토의 토스와 치즈의 서포트, 그리고 도우의 감독 하에 슛을 한 피자의 볼에 내 마음의 골대는 골을 쉽게 내어주고 말았다. 한국에서 먹은 피자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피자의 강력한 역량에 '피자가 맛있어봤자 뭐 그리 대단하겠어'라는 나의 편견은 4:0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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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왔으면 1인 1젤라또를 하라

커피, 피자, 와인과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 먹거리로 회자되는 친구는 젤라또다. 이탈리아 사람의 대표 디저트 메뉴임을 드러내듯 우리가 가는 도시, 동네마다 젤라또 가게는 편의점처럼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가격은 콘 1개당 약 3유로(약 4.5천 원), 주문을 하자마자 꾸덕한 젤라또를 스쿱으로 퍼서 콘 위에 덕지덕지 탑을 만들어준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하지만, 위대한 이탈리아 젤라또의 점성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밀도와 점성이 높아 먹었을 때 젤라또가 혀에 코팅되듯이 붙어있는 느낌이었고, 넘어가기 전까지 입 안에서 자기 맛을 강하게 주장을 하는 특성이 있었다. "챠오~ 나는 헤이즐넛 향 젤라또야."라는 말을 쎄게 건네는 느낌? "그래 너 맛있다."라고 느낄 때 비로소 입에서 녹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카리스마 있게 주장하지만 뒤끝은 없는 외유내강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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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지 마시라

이탈리아는 커피가 맛있다는 세간의 평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입장이다. 이미 한국의 커피 퀄리티가 많이 올라갔기 때문일까. 에스프래소의 진한 크레마 위에 황설탕을 솔솔 뿌려 먹을 때는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다양한 원두가 있다거나 풍미가 다양한 커피는 경험하지 못했다. 대체적으로 다크한 향이 나는 원두를 강배전으로 쓰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머리끝까지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을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 아이스드 아메리카노라고 주문한다면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 5 덩이 정도를 동동 띄워 내가 받을 때는 미지근한 아메리카노가 있을 것이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에스프레소와 얼음을 담은 컵을 함께 시켜서 넣어서 먹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프레소 바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5분 만에 에스프레소 3샷을 마신다거나,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 챠오(안녕하세요)하며 스몰 토크를 하는 문화는 커피 맛을 더욱 끌어올렸다. 결국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씹고 맛을 느끼는 것을 넘어 그 공간에서 나누는 점원과의 대화와 주변의 사람,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풍경까지 합쳐져 기억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발로 느낀 나의 로마에서의 로망
1746860300677.png 로마 테베레 강에서의 아침 러닝

해외여행을 간다면 아침에 그곳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달리는 동안 발로 땅의 질감을 느끼고, 공기를 더 깊게 마시고 풍경과 호흡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런 지점에서 내가 있던 로마 근처의 테베레강은 이런 러너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달릴 때 보이는 로마의 건축물, 꽤 오래 로마 거리를 달린 듯한 로마의 러너들, 생각보다 한적한 활주로는 러너의 활력을 한껏 끌어올리기 좋은 코스였다. 7km를 달리고 뛰기 시작했던 지점에 다시 돌아오자 바람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몸은 땀에 젖었지만 사우나를 마치고 온 듯 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의 완벽한 로마의 휴일, 로망스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이렇게 살아가고, 사랑하자.

이 모든 순간을 아내와 함께 했다. 우리는 로마에서 함께 피자와 파스타, 젤라또를 먹고, 와인잔을 부딪히며 와인을 마시고, 테베레 강을 함께 달렸다. 이 모든 로마의 경험은 아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로 여행을 가느냐보단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중요했던 나는 아내와 로마를 함께 와서 이 모든 로마의 삶을 더욱 음미할 수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좋아하고 실망하며, 때로는 함께 취미를 하는 이 삶을 한국에 돌아가서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내리쬐는 태양 아래 갈매기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다. 저 갈매기처럼 나와 내 아내도 곧 한국에 날가아겠지..라는 의식의 흐름의 속에 우리는 나폴리행 기차로 몸을 싣는다.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AMALFI – SICILY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저와 신부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보는 이야기에 대해 담을 예정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각자의 언어로 함께 있는 시간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신부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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