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5. 나폴리의 환상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새롭게 거처를 온긴 용산 신혼집 근처엔 나폴리 맛피아로 알려진 권성준 셰프의 비아 톨레도(Via Toledo) 파스타바가 있다. 이 레스토랑의 이름은 맛피아가 살던 도시를 모티브로 지었다고 한다. 나와 아내는 그 동네인 Toledo로 숙소를 잡아 기대감을 안은 채로 나폴리에 입성했다.
로마에서의 여행이 만족스러웠기에 나폴리에서도 이탈리아의 매력을 느끼겠지라는 설렘을 품고 도착한 우리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지어진지 100년은 족히 돼 보이는 건물들이 틈새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골목을 이루고 있었고, 겨우 2대의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 사이에서 오토바이와 차들이 일상이라는 듯 쌩쌩 달리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탈리아의 뒷골목 느낌이랄까. 갑자기 로마에서 야경 투어를 할 때 가이드가 나폴리를 간다는 우리 부부에게 특히나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스친다. 스산한 골목이 더욱 스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10년 전 메이플스토리에서 도적 캐릭터의 마을인 커닝시티가 연상되는 느낌이랄까? 높은 빌딩 때문에 가려진 빛 때문에 뒷골목 같은 느낌이 자욱한 거리를 지나서 숙소로 향했다.
확실한 행복을 찾자
좋지 않은 첫인상이 기우일 거라고 다짐하며, 숙소 근처의 피잣집을 향했다. 구글 지도에서 맛집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식당들이 4점 이상대의 평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폴리에 왔으니 제대로 된 나폴리식 피자를 먹어보자고 다짐하며 스캔한 결과, 한 피자집의 리뷰가 눈에 차였다. '일반적인 관광 피자와는 관련이 없는 나폴리식 피자'라는 리뷰에 고민하지 않고 가게로 향했다. 그곳은 약 2900명의 전 세계인이 평균 4.5로 평가한 곳, Pizzeria Laezza라는 곳이었다.
나는 4가지 토핑이 올라간 피자와 이탈리아 대표 맥주인 페로니 맥주를, 아내는 도우 위에 루꼴라와 프로슈토, 그리고 토마토가 올라간 피자 그리고 이탈리아 대표 칵테일 아츠로를 시켰다. 미리 받은 맥주와 칵테일을 홀짝이니 이내 큰 접시 위에 피자를 내어주었다. 피자를 칼로 잘라 한 조각 입으로 넣었을 때 나는 나폴리와의 인연이 악연이 아닐 것임을 확신했다. 이탈리아 피자의 진가를 맛보려면 나폴리에 가라고 했던가. 한국 피자는 3조각 까지가 맥시멈인 나도 한 판을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게 맛있는 맛이었다. 이후에 알고 보니 미국식 도우는 기름진데 반해 이탈리아 피자는 바삭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아내도 이내 한 입 베어 물더니, 고주파의 외마디로 맛에 감탄했음을 대신 표현한다. 이제야 나폴리가 좋아지나 싶음을 느끼던 와중 앉은 의자 옆으로 차와 오토바이가 닿을랑 말랑하게 지나갔다. 맥주와 칵테일, 그리고 피자로 허기를 채우며 나폴리에는 정을 두기 힘들겠다는 대화를 도시를 바라보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감정을 숨기는 데에 서투른 우리 부부는 기쁨, 아쉬움, 부러움, 장난스러움, 애틋함 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곤 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걱정스러움 한 조각이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그렇게 나폴리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진짜 나폴리 여행을 즐겨보자!
첫날의 걱정스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렌트카를 빌려 나폴리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했다. 나폴리 주변에 있는 아말피 해변이라던가, 예약한 와이너리로 가려면 렌트카를 빌려야지만 쉬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어서였다. 해외에서 처음 운전대를 잡은 순간 이탈리아의 광활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로망이 피어났다. 시작은 그랬다.
또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는 아말피 해변에서 거대한 노을을 아내와 함께 꼭 보고 싶었다. 절벽으로 깎여진 곳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마을 속에서 바라보는 핑크빛 그라데이션의 노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안은 채 드라이버 기어를 D로 돌려 바퀴를 굴렸다. 바퀴가 굴러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드라이브에 대한 낭만은 나폴리를 빠져나가면서 사그라들고 말았다.
다른 차들이 어떻게 운전할지 모르니 항상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방어운전을 하세요.
10년 전 나에게 운전을 알려준 운전 학원의 기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다. 이들은 공격운전을 하고 있었다. 다른 차들이 어떻게 운전할지 모르니 내가 빨리 선수쳐 앞서고자 하는 느낌이었다. 왼쪽 오른쪽에서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수한 변수 중 하나가 되었다. 이따금씩 왼쪽, 또는 오른쪽 백미러가 날아간 차들을 볼 때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들의 안전거리는 약 70mm, 성인 남자의 새끼손가락 길이 정도 되는 거리만을 확보한 채 무수히 많은 차들과 오토바이와 차들이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나의 두려움은 사고가 아니라 사고가 난 후처리였다. 이탈리아 말이래 봤자 챠오(안녕하세요)나 일 콘토 페르 파보레(계산서 주세요) 밖에 못하는데 보험 처리나 사고가 난 상대방과도 말이 통하질 않으니 나랑 사고가 난 이태리인도 환장할 노릇일 것이었다. 나름 운전이 험하다는 부산에서도 무탈히 운전을 하는 나였지만, 이곳은 부산을 5배 이상 능가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위험했던 운전에 신경을 많이 썼던 탓인 지, 사고가 날까 숨기지 못한 내 불안함과 예민함에 그녀의 감정도 동화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순간 발을 엑셀과 브레이크가 아닌 땅에 딛고 있다는 게 감사함을 잠시나마 느끼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자기 좋아하는 해산물 요리 잔뜩 먹고 가자!
소렌토는 아내가 정한 경유지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 신혼여행에서 그녀의 한 가지 목표는 '남편이 이탈리아의 음식과 도시를 좋은 기억으로 추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나보다 나를 더 신경 써주는 사람이 그녀였다. 누구보다 즉흥적으로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그녀이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계획적으로 임했음을 여행 내내 나에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해산물 레스토랑에 들어가 예민함을 달랠 수 있는 음식을 주문했다. 처음은 랍스터 통살이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와 그날 그날 잡아 올리는 재료로 만든 오늘의 생선 튀김 요리를 시켰다. 뽀모도로 랍스터 파스타는 내 팔뚝만 한 통 랍스터와 생면으로 만든 파스타, 그리고 신선한 토마토가 올라가 있었다. 랍스터의 살을 발라 파스타와 같이 먹을 때 지금까지 한국에서 먹은 파스타와는 한층 다른 차원의 맛과 해산물의 풍미가 올라왔다. 옆에 생선 튀김도 얇은 튀김옷을 벗겨내면 안의 신선하고 야들한 속살이 나타났다. 금세 예민함과 운전의 피로가 사그라듬을 느꼈다. 우리의 나폴리 여행은 환경 때문에 지쳤었고, 음식을 통해 따스히 위로받았다.
그런 나폴리를 겨우 벗어났나 했더니, 다음은 포지타노 해변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말피 해변 도로나 포지타노 해변 도로는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다는 후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보고도 경각심을 느끼지 않았던 나를 반성했다. 산을 따라 계속해서 꺾이는 좁은 해안 도로에서 반대편에 버스라도 온다면 속도를 20km로 맞추고 서서히 가야만 했다. 그리고 포지타노의 레스토랑이나 관광지도 그 좁은 골목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점원이 음식을 서빙하는 것도 함께 조심해야 했다.
포지타노에 오자마자 주차장 앞에 사람이 친절하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을 보고 홀린 듯 들어갔다. 주차 금액은 1시간에 12유로(약 18,000원). 폭리를 취하는 것을 보고서도 이미 주차해 버린 나는 다른 곳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다!'로 일관했지만, 나도 아내도 대놓고 폭리를 취하는 것에 부당하다고 표정이 대신 말해주었다.
험난한 운전에 질려버려서인지 나와 내 아내는 포지타노를 보고, '죽기 전에 와봐야 할 곳'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했다. 아내는 부산의 한 마을 같다고도 했는데,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넓게 보이는 바다와 산 위에 지어진 마을과 가게들이 어우러지는 생경한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와보세요!'라고 추천할만하진 않았다. 차를 끌고 온다면 더더욱 말리고 싶었다. 운전하면서 겪을 목숨에 대한 불안을 느껴가면서까지는 굳이 오지 않으셔도 될 듯하다.(운전에 정말 자신이 있는 분에게만 추천한다.)
그래서 우리는 원래 가기로 했던 아말피 해변은 가지 않았다. 아말피는 포지타노에서 해안 도로를 50분 정도 더 달려야 하는데, 가기로 한다면 돌아오는 것까지 포함하여 약 2시간 정도를 도로에 불안해하며 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러는 편이 우리에게는 더욱 행복할 것 같았다.
묘한 불편함을 안고 다시 나폴리로 돌아가는 길에, 구글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로 가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1차선 일방통행 길목으로 안내해서 내려갔는데 내려간 길목의 끝엔 "Wrong Way"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었고 앞은 가드레일로 막혀있었다. 오직 차 한 대만 내려갈 수 있는 길목으로 내려왔기에 다시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오직 후진으로만 1차선 길을 500m 정도 올라가야 하는 상황. 다른 방법이 없기에 일단 시도해보긴 하지만 미칠 노릇이었다. 조금이라도 방향을 잘못 틀면 차가 긁힐 것만 같은 상황에서 후진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와중 이탈리아 할머니 한분이 다가왔다. 그저 잘못된 길임을 알려주려고 나왔나 싶었는데, 우리가 차를 돌릴 수 있도록 막혀있던 집의 문을 열어주러 나오신 것이었다.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서 차를 돌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우리에게 할머니가 손짓발짓을 써가면서 잘 돌려보라고 조언을 하다가 한 할아버지가 나와서 함께 의견을 보탰다. "그렇게 돌리면 안 돼! 왼쪽으로 빠져서 직선으로 갔다가 돌아가야지!"라고 할아버지의 손짓이 말하고 있었다. 점입가경으로 다른 할아버지까지 도착하여 우리의 무사 탈출을 돕고 있었다.
이탈리아 포지타노에서 막다른 길로 잘못 들어가서 절망하며 후진하고 있다가 노년의 3인방에게 도움을 받고, 무사히 탈출하는 이 진기하면서 웃긴 상황에 예민해진 나와 아내의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훗날, 이탈리아 나폴리 여행을 얘기할 때 포지타노의 아름다운 해변의 경치나 랍스터 파스타보다 "Wrong way" 에피소드를 재밌었던 추억으로 떠올릴 것만 같았다. 잘못된 길이었지만 우리에겐 여행을 추억하게 해 준 "Thankful Way"였다.
다시 나폴리 숙소로 돌아와서 주차장에 차를 대는 와중에는 사기를 당할 뻔했다. 공영주차장에 들어갈 때 "NAPOLI"라고 적힌 흰색 고딕 텍스트가 크게 박힌 검은색 캡을 쓴 사람이 주차 위치를 안내했는데, 듣다 보니 내가 주차를 봐줬으니 돈을 달라는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서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나도 이 사람 덕에 주차 정산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그냥 돈을 주고 말아 버리자라고 했으나, 아내는 사기꾼에게 알고도 주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가 주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에 우리는 돈을 주지 않고, 바로 빠져나왔지만 나폴리 사기꾼이 남기고 간 불편감은 담배연기가 자욱한 곳을 오랫동안 걷는 것처럼 우리의 이후 시간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내의 말도 충분히 공감했지만, 종일 운전으로 신경을 쏟아야 했던 서로의 메마른 기분에서, 날 섞인 감정의 대화들은 불씨가 되어 화를 부르고 말았다.
다툼이 시작되니 평소에 상대방에게 맞추고자 베풀었던 배려도 불만이 되어 서로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감정의 대화를 나누고 정답이 없음을 서로가 인정하고 나서야 다툼이 종료될 수 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무던한 사람이고, 아내는 태생적으로 섬세한 사람인지라 달라서 좋았던 부분들은 달라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되어가기도 했음을 또 한 번 이해한 순간이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성향을 서로 한 뼘 더 맞춰가기로 이야기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번 부딪히고 날 때마다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그리고 나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구나 더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험난한 도로로부터 그리고 나폴리캡 사기꾼으로부터 시작된 다툼은 지친 하루의 끝에 우리를 더 힘들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포지타노에서 맞닥뜨린 'Wrong Way' 덕분에 우리가 포지타노를 추억할 수 있었듯, 험난한 여행의 끝에서 다퉜기에 서로의 감정을 실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신혼여행은 결혼생활의 베타테스트를 함께 겪어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먹고 자고, 걷고, 달리면서 서로의 신경세포를 블루투스로 강하게 연동시키며 생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간을 찡그리며 "음~~"이라는 경탄사를 내뱉을 때에는 나도 함께 기뻤고, 오랜 여행에 지치거나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로 인해 예민해지면 나 또한 함께 우울해졌다. 나폴리의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달랐지만, 함께 예민해지고, 순간의 행복에 기뻐하고, 다른 의견과 감정에 다투며 우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음은 분명해진 순간이었다.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AMALFI – SICILY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저와 신부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보는 이야기에 대해 담을 예정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각자의 언어로 함께 있는 시간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신부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