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6. 이탈리아 남부의 와이너리에서
우리 부부가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할 때 유독 기대하던 일정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 남부의 와이너리 숙소에 가서 와인 주조 현장을 보고 직접 만든 와인을 맛보는 것. 특히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소주, 맥주보다 어울리는 와인을 생각해 내는 아내는 더욱 기대하던 일정이었다. 우리가 갔던 와이너리는 나폴리에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Alvignanello라는 곳에 있는 와이너리 숙소로 향했다.
여기 엄청 자연적이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몸의 다양한 감각들이 이것이 이탈리아 자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각기의 소리로 손님을 맞아주는 강아지와 양들의 소리가 났고, 100년은 족히 그 자리를 지켰던 것 같은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정원에서 풍기는 로즈마리향이 물씬 풍겼다. 나폴리의 뒷골목에서 맘고생을 꽤나 한 우리는 광활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풍경의 와이너리에 오자마자 제대로 된 쉼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우리 또래의 건장한 이탈리아 남자가 환히 웃으며 "Buongiorno!(본 조르노!)"라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를 맞아준 직원은 와이너리를 직접 운영하는 프란체스코로 나폴리에서 살다가 와인을 직접 만들고 싶어 7년 전부터 와인 주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행운적이게도 우리 부부는 화요일에 와이너리를 방문했는데 그날 우리 부부만 예약되어 있어 쾌적하게 숙소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여행을 간 2025년은 이탈리아 25년 만의 희년이었기에 숙소가 전반적으로 비쌌다. 괜찮은 숙소를 예약하려고 하면 1박에 100만 원은 우습게 넘어갔기에 우리 부부는 저렴한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 묵었었는데, 이곳은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묵었던 숙소 중 가장 넓고, 큰 욕조가 있고, 웰컴 위스키까지 있었던 가장 느좋(느낌 좋은) 숙소였다. 게다가 이 숙소는 1박에 약 21만 원으로 꽤나 합리적인 가격이었기에 기대하지 않은 컨디션 덕에 더욱 놀랐다.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된 기분에 우리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펭귄이 몸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뒤뚱거리듯 율동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여독을 풀었다.
왠지 이곳에서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아!
자연적인 풍경부터 친절한 주인, 넓고 고즈넉한 숙소 모든 것이 우리의 기분을 상기시키는 데에 촉진제가 되었다. 연애 때부터 언젠가 한번 꼭 가보자는 와이너리 투어도 곧 간다는 설렘도 기분을 살리는 조미료가 되었다.
이내 저녁 시간이 되기 전 우리는 간단한 와이너리 투어를 했다. 프란체스코가 직접 와이너리의 주요 공간을 돌며 포도의 재배 방법부터 숙성 과정, 그리고 병입 후 이스트의 발효 과정까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까베르네 소비뇽이 탄닌감이 짙다던가, 피노 누아가 산미가 강하다는 등의 토막 상식만 알고 있던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와인의 생산 프로세스를 알게 되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양조장은 아니었지만,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줄만 알았던 와인들의 실제 제조 과정을 보니 굉장히 섬세한 관리와 숙성을 통해야 하나의 와인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와인 생산 과정에서 Microclimate(미세기후)라는 단어를 굉장히 강조했는데, 와인에 적절한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 적절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환경을 조절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 와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세심한 관리와 관심, 그리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우리는 와이너리에서 직접 주조한 와인과 코스 요리를 먹으러 식사 공간으로 발길을 이동했다.
이 와이너리는 스파클링 와인, 로제 와인, 레드&화이트 와인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주조했는데, 메뉴와 맞는 페어링 와인을 내어주었다. 한입거리 참치 수육에는 스파클링 와인, 머쉬드 포테이토와 야채 플레이트에는 화이트 와인을 주었다. 으레 고기에는 레드 와인, 해산물에는 화이트 와인이 좋다고들 하지만 사실 페어링을 신경 쓰고 와인을 마시진 않았는데,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고 한입거리를 먹으니 입맛이 확 돋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어지는 코스 요리와 와인을 마시니 코스 요리에서의 페어링은 음식 궁합을 넘어서 입맛과 전체 코스 요리의 만족감을 좌우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 여기서 주는 코스요리 하나하나마다 맛의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있는 느낌이라서 좋았다. 평소에 아내와 연애를 할 때에도 오마카세라거나 파인 다이닝을 찾지 않았었지만, 만약 찾는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다음 코스로는 메인 요리로 트러플 리소토와 소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나는 이 요리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생각했던 맛의 기준을 깨 준다는 것이었다. 진짜 트러플을 먹어보지 않던 나는 기존에 트러플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트러플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먹어본 트러플은 완전히 다른 맛이어서 놀랐다. 생각보다 트러플 향은 강하지 않았고, 트러플을 씹을 때 트러플향 오일이나 소금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녹진한 풍미가 뿜어 나왔다. 다음으로 먹은 스테이크는 마치 족발처럼 연하게 소고기를 졸인 느낌의 스테이크였다. 배불러서 아내는 많이 먹지 못했지만, 위에 얹힌 야채의 향과 아래에 조려진 고기의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육즙의 풍미가 와인의 맛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마지막으로 먹은 피스타치오 크림은 치즈크림 위에 피스타치오 크림을 얹은 디저트였는데, 아내는 배부른 와중에도 한 통을 다 비우며, 한국에서도 꼭 만들어 먹겠노라고 입에 피스타치오 크림을 묻힌 채로 말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먹은 와인들도 제조 과정을 함께 듣고 먹으니 더욱더 깊게 즐길 수 있었다.
전반적인 와이너리 투어와 숙소의 경험은 별점 5개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잘 모르던 분야를 몸으로 느끼고, 맛보고, 음미하니 몰랐던 맛의 감각이 깨어나는 감각이 들었다.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여 포도를 재배하고, 그 포도를 짜서 만드는 와인처럼 우리 관계도 Microclimate이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 와인을 만드는 프로세스 중 하나라도 미세 조건이 지켜지지 않으면 맛이 완성되지 않는 와인처럼, 우리 부부의 관계도 적절한 온도와 많은 관심, 그리고 교감이 중요하다고 느낀 와이너리 투어였다.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AMALFI – SICILY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저와 신부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보는 이야기에 대해 담을 예정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각자의 언어로 함께 있는 시간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신부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