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8 완료주의인 나, 완벽주의인 너
할 때 제대로 해야지
본인이 하는 일은 마음이 들 때까지 고민하고 손에 놓지 못하는 아내는 세심하고 꼼꼼하지만, 시작이 더디고 고민이 길다. 그런 아내의 성정 덕에 나의 의식주는 더욱 정교해졌다. 나의 옷들은 더욱 깔끔하고 향기로워졌으며, 탄단지가 고루 갖춰진 맛있는 식사를 하고, 우리의 집에 놓는 집기류나 식기들도 모두 그녀의 센서를 통해 검증된 것들로 놓여 잔고장이 없이 견고한 것들이다. 이런 아내는 모든 조건을 따져보고, 고민해 보고 최적의 답을 내놓는다. 모든 그림이 그려져야 손을 움직이는 완벽주의적 사람인 것이다.
일단 시작하고 보완해 나가면 되지
일단 시작하고 하나씩 뼈대를 만들어가는 나는 빠르고 결정이 명확하지만, 첫 시작이 꼼꼼하거나 완벽하지 못하다. 언젠가 아내가 밤에 방충망을 하나 새로 맞춰야겠다고 말을 해왔다. "우리 집 방충망이 뜯어져서 벌레가 들어오네, 하나 달아야겠어." 나는 그다음 날 아침 방충망 업체 3군데에 전화해서 예약을 곧바로 잡았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가능한 한 빠르게 완료해야 하는 나는 완료주의적인 사람이다.
성향이 다른 우리는 서로가 가진 모습을 부러워하다가도 어느새 답답해하기도 했다. 여행지 숙소를 찾을 때에도 '지금 바로 얘 약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아직 더 알아봐야 해!, 빨리 할 거면 찾아보고 최적의 선택을 알려줘.'라고 대답하곤 했다. 내가 말한 '지금 하자'라는 것은 지금 숙소를 찾는 것을 시작해서 괜찮은 곳으로 바로 예약하는 것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다양한 옵션을 따져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우리의 성향을 서로가 장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이런 반대의 성향은 꽤나 효율적으로 작용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현지에서 여행할 때에도 그랬다. 그녀가 여행을 위해 렌터카를 빌리자고 하면 나는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두었고, 여행에서 현지의 음식을 해 먹자고 하면, 렌터카를 밟아 식료품점으로 데려다주었다.
우리의 여행도 그랬다. 숙소에 체크아웃을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4시간 중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그녀가 다양한 장소를 고민하고 있으면 나는 그중에 최적의 선택을 바로 골라주었다. 나는 그녀의 고민 시간을 줄여주는 타이머였고, 그녀는 나의 불완전함에 더 많은 선택지를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칠리아의 트라파니에서 San Vito Lo Capo라는 해변에 들렀다.
여행지에서의 휴식의 모양도 달랐다. 바다 수영을 좋아하는 아내는 물에 꼭 들어가 보고 싶다며, 지중해의 파도에 맞설 동안 나는 5유로를 내고 깐 썬베드에서 아내가 맞서는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으며 눈에 휴식의 순간을 담았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아내는 바다에 몸을 폭 담갔고, 이내 그녀가 웃었다. 모래를 흠뻑 묻힌 발로 나에게 다가와 들어오라 손짓했지만, 흐린 눈과 미소로 화답했다.
함께 물놀이를 하지 못한 것에 서운했을 수 있지만, 아내는 나에게 '해변에서 드러누워있을 권리'를 존중해 주었다. 아내는 바다에서 나의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나는 누워 아내가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헤엄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우리는 여행 중에도 서로를 인정하고, 완전해지고 있었다.
바닷물이 채 마르기도 전 향한 Ni Mia 식당에서의 접시와 잔도 서로의 이해로 이루어졌다. 아내는 좋아하는 해산물 요리를 시키고자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가게의 종업원에게 추천 메뉴를 물어봐주었다. 잡내가 하나도 나지 않는 굴, 주꾸미 튀김, 토마토 홍합 스튜, 까라비네 새우회, 가재회 등 다양한 해산물이 올라가 있는 플레이트를 보자마자 "우-와"하는 탄성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보기도 힘든 식재료로 구성된 해산물과 화이트 와인, 그리고 나와 아내가 시칠리아에 있다니! 음식을 보고 도파민이 솓았다. 무교이지만 그 당시의 행복한 현실이 있음을 하나님께, 아니 교황님께 감사해했다.
자기 이거 봐, 흙사람이야.
해변에서 아내는 손에 모래를 한 움큼 응축시켜 동그란 흙 소르베를 만들어 눈사람의 형태를 만들었다. 금방 부서질 듯한 흙사람 위에 흙사람을 완성시키듯 모래를 더 얹고 있었다. 아내의 순수한 한 줌 장난이 평화로움을 한 줌 얹어주었다. 흩어져 있던 모래 둘이 만나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흙사람처럼, 다른 성향과 취향의 사람이었던 우리 둘도 하나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함께 붙어있다면 사랑도 삶도 인간적인 형태로 완전해져 가겠지.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AMALFI(FOSITANO) – SICILY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저와 신부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보는 이야기에 대해 담을 예정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각자의 언어로 함께 있는 시간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신부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