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달콤 쌉싸름했던 그날의 우리들
집 앞에 에스프레소 바가 있었네?
결혼하기 2주 전, 서울 용산구의 집에 먼저 들어와 살던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30분은 기꺼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아내의 커피 맛집 레이더가 작동한 것이다. 나 또한 하루에 3잔 이상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애호가이기에 나중에 가서 꼭 먹어봐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행동력이 강한 아내는 이미 그 에스프레소 바에 가서 콘 파냐를 맛본 후 카페 콘파냐 찬양론을 전파했다. 고급스럽고 쫀쫀한 휘핑크림과 함께 에스프레소를 들이켜면 천상의 맛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에스프레소를 뜻하는 카페(Caffè)와 크림이 함께 얹어져 있다는 것을 뜻하는 콘 판나(con Panna)가 합쳐진 카페 콘파냐는 휘핑크림이 얹힌 에스프레소를 뜻하는 메뉴이다.
아내의 설파에 동조되어 어느새 나는 그 카페에 들어가 콘파냐를 시키고 있었다. 내 주먹의 1/3쯤 되어 보이는 아담한 잔에 몽실하게 올라간 휘핑크림 위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초코 파우더가 솔솔 뿌려져 있었다. 한 모금 위에 모자처럼 얹힌 휘핑크림을 맛보았다. 마시멜로우처럼 쫀쫀하면서 달콤한 휘핑크림의 풍미가 입 안에 퍼졌다. 두 번째 마실 때는 아래에 있던 에스프레소가 함께 들어와 입 안에서 휘핑크림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다디단 휘핑크림과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만나 서로의 단점을 강점으로 보완해 주는 맛이었다. 신혼집에서 콘 파냐 찬양론자가 2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콘파냐 찬양론자 부부는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원조 콘파냐의 맛을 꼭 맛보리라 다짐했다.
결혼 다음날, 이탈리아로 가는 신혼여행 짐을 싸면서 나와 내 아내는 이탈리아 신혼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해 줄 무언가를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1일 1편 릴스 올리기, 필름사진 찍기, 다양한 추억 쌓기의 방법론들이 오가던 중 아내가 나에게 제안해 왔다.
글을 써보면 어때? 같은 소재이지만 서로의 시선으로 다르게!
이미 글쓰기 모임을 오랫동안 이끌어오면서 독립출판까지 해낸 아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 또한 긴 호흡의 글은 자주 써본 적이 없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쓴다면 못쓸 것도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 함께 무언가를 도전하고 기록해 보는 것도 나에게는 새로운 의미였기에 아내의 제안을 이내 받아들였다.
발행은 주 3회, 회차는 10회 이상으로!
주에 3번 정도 글을 써보자는 아내의 말에 나의 위험감지 센서가 작동했다. 2주에 1번 정도 겨우 글을 써왔던 나는 글쓰기에 지쳐버린 나의 데자뷔를 마주했다. 나에게 1주에 3번 글을 쓰는 것은 1km에 6분대로 달리던 사람에게 1km에 5분 초반대로 장거리 마라톤을 뛰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결국 주에 2회로 합의안을 타결하고,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기가 시작되었다. 제목을 짓는 것도 미션 중 하나였다. 길지 않으면서 직관적인 에세이스럽고, 이탈리아와 신혼여행의 의미를 담은 적절한 문장으로 하고 싶었다. 화려하지만 심플하게 같이 어려운 문장을 고민하다 콘파냐가 떠올랐다. 달달한 눈빛을 주고받다가도 쌉싸름한 다툼이 다이내믹하게 이어지는 신혼생활은 카페 콘파냐와 미묘하게 닮아있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 헤리티지를 가지고 있는 메뉴라니! 이거다 싶었다.
"그와 그녀의 콘파냐 어때?"
"그런데 신혼여행이랑은 관련이 없잖아."
챗GPT에게 20가지의 네이밍 제안을 받고 나서야 "그와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라는 시리즈가 탄생했다. 나는 "그의 허니문 콘파냐", 아내는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로 각자의 시리즈를 시작했다. 해외여행을 하는 도중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의지를 많이 요하는 일이었다. 아내는 도화지에 슥슥 멋있는 그림을 쉽게 만들어내는 밥 아저씨처럼 글감이 생각나면 멋진 문장을 손쉽게 탄생시켰다. 흰 노트북 화면을 30분 정도 뚫어지게 보고 나서야 글의 개요를 만들기 시작하는 나의 문장은 느적느적 완성되었다. 한 편의 글을 발행시키기까지 더 자주 우리의 장면을 곱씹어야 했고, 우리의 대화에 머무르고, 우리의 감정을 되새김질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의 장면들을 여러 번 곱씹고, 나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그녀의 언어로 구사된 우리의 여행과 아내의 시선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이탈리아 여행기의 또 하나의 장점이었다. "오늘 내 글 봤어?"라며 글을 쓰지 않았으면 전해지지 않았을 각자의 표현과 생각들도 송신되었다. 우리가 써 내려간 글들은 생각의 연동까지는 되지 못한 우리들에게 좋은 수신기로 작용했다. 와인을 숙성시키듯 이 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들여다볼 때의 향미가 짙어질 것만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기념품을 풀었다. 이탈리아 모카포트 브랜드인 비알레띠의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아내는 이탈리아의 채소 요리인 카포나타에 빠져 빵과 함께 즐겨 먹곤 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 있는 줄도 몰랐던 나폴리식 정통 피자집을 가서 피자를 시켜 먹곤 한다.
몸으로 느끼고 글로 음미한 이탈리아 여행은 우리 부부의 삶과 감상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신혼집에서 아침을 같이 해 먹고 밤에 산책을 할 때면 이제야 결혼했음이 실감 난다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여운이 남은 허니문 콘파냐 여행을 추억했다. 추억을 따라가다 보니 집 앞 에스프레소 바 앞에 섰다.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시켜 한입을 후룩 맛보고, 두 번째 모금을 맛본다. 세 번째 모금을 마실 때는 달콤한 휘핑크림이 많이 걷히고 에스프레소의 향이 강하게 퍼진다. 하지만 위에 올라간 휘핑 덕에 에스프레소를 잘 못 마시는 나도 부드럽게 마실 수 있었다. 한국패치가 되어서인지 이탈리아에서 마신 콘파냐보다 더욱 달콤하고, 깊은 맛이 나는 느낌이다. 에스프레소만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잔을 내려놓고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는 말을 혼자서 되뇌었다. 항상 웃으며 인사해 주시면 너무 친근하지 않은 사장님께 인사를 건넸다.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먹고 나서 집으로 향할 때 기분 좋은 쌉싸름함이 나의 입 안을 맴돌았다.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AMALFI(FOSITANO) – SICILY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저와 신부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보는 이야기에 대해 담을 예정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각자의 언어로 함께 있는 시간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신부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