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했던 답

EP 09 첫 이탈리아 여정을 마치며

by 래리

아침에 일어나 트라파니에서 늦은 아침을 만들어먹고, 트라파니 앞바다에서 바다수영을 했다. 중간에 San Vito Lo Capo 해변에 들러 마을을 돌아보고 3시간을 운전해 팔레르모 공항 근처 숙소로 왔다. 시간은 오후 8시, 오랜 이동으로 체력은 녹초가 되었지만 우리는 기어코 밖에 산책을 나가겠다는 의지어린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제는 한 동안, 아니 아마 몇 년간은 보지 못할 이탈리아의 저녁노을을 함께 품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시칠리아의 저녁거리엔 바다 냄새와 풀들이 풍기는 냄새가 합쳐져 초여름 냄새가 났다. 로즈메리와 레몬을 많이 재배해서 그런 걸까. 이탈리아의 초여름 냄새는 서울에서 맡는 향보다 더욱 산미 있고 꽃향이 나는 냄새였다. 서울엔 없고 제주도에는 있을 것만 같은 솔방울 패턴의 나무를 지나 우리는 신혼여행의 끝자락을 함께 걸으며 이탈리아 여정을 되새겨보았다.

20250517_195013.jpg 제주도의 귤나무처럼 시칠리아에선 레몬 나무를 볼 수 있다.

경이로운 건축물과 낭만 있는 거리에 매료되었던 로마 한복판을 걷던 순간, 예상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뒷골목 느낌이 강했던 나폴리의 톨레도를 경험하고 예민해서 다투었던 날. 두 번은 운전하고 싶지 않은 소렌토와 포지타노의 열악한 운전 코스와 Wrong way로 잘못 들어가 노인 3인방의 도움을 받고 탈출했던 날. 와이너리 투어에서 다양한 와인과 수준급 코스 요리를 먹었던 날. 현지인처럼 살아보았던 시칠리아까지. 그리고 피자와 에스프레소, 와인과 파스타 등등의 이탈리아 요리 전체를 우리 몸에 담아 묵직하게 느껴졌던 몸까지.(실제로도 몸무게가 5kg는 늘었을 거다.) 몸의 감각으로 느낀 이탈리아의 맛은 아내와 함께 곱씹으며 그 향기를 더욱 느꼈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순간은 뭐였어?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평론가의 리뷰를 찾아본다. 아직 나의 언어로 정리되고 구사되기 전에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것에 통쾌함을 느끼곤 해서이다. 이 방법은 어떤 주제에 대해 내가 아직 정리를 하지 못했을 때 유용한 대화의 스킬이다. 내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내 기준 이탈리아 여행 전문가인 아내의 대답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볼 참이었다.

"자기랑 있는 거"

그녀가 간단명료하고도 본질적으로 대답해왔다. 그렇다. 그녀는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은 '너(신랑)의 세계를 넓혀주고 싶어서'였다. 이탈리아에 향수를 느껴서 온 것도 아니었고, 나폴리 현지의 피자가 먹고 싶은 것도 그 본질은 아니었다. 이 간단명료하고 본질적인 대답을 듣고 나니 여러 가지 기억 조각들 중 하나를 고르고자 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이탈리아에 처음 와서 가장 처음 좋았던 건 이탈리아 땅을 밝고 나서 좋아하는 나를 보는 그녀를 보았을 때다. 로마의 생김새가 좋았던 것보다 로마의 생김새를 보고 너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볼 수 있음에 좋았다. 다시금 떠올린 이탈리아의 모든 순간들 옆에는 그녀가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함께 와인잔을 부딪히는 사람, 로마의 바티칸 성당 근처 육교에서 노래를 함께 들었던 사람, 나폴리가 생각보다 치안이 좋지 않았다며 나누는 사람, 모두가 그녀였다. 더움을 느끼기에 시원함이 좋고, 배고픔이 있어 배부름이 행복하듯 혼자 느끼던 모든 것들을 그녀와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았다. 나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하기보다 아내와 함께 미식을 느끼고, 풍경에 감탄하고, 다투고, 평안했던 모든 순간들로 기억하고 싶었다. '자기는 뭔데?'라는 되물음에 '나도!'라고 속 편하게 대답했지만, 그때 구사되지 못한 나의 언어들은 여기에 담는다.

20250517_202437.jpg 어두워지는 시칠리아의 21:00

귀국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우리는 바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각자 좋아하는 조합으로 음식을 담아 조식을 먹고, 테니스를 치고, 풀장에서 수영도 했다. 이리저리 여행지를 오갔던 지금까지의 여행이 모두 끝나고, 이제야 안정을 찾은 느낌이었다. 시칠리아 와인 한 보틀을 사서 숙소 풀장 앞에 있는 선베드 옆에 두고, 누워서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여정의 마무리에 만끽하는 리조트의 휴양은 생각보다 더욱 달콤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햇빛이 내리쬐었다. 5월 중순의 시칠리아 햇빛은 우리를 너무 뜨겁지도 따갑지도 않게, 적당히 따스한 온도로 내리쬐었다. 그리고 그 옆 선베드에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 또한 선베드에 누워서 핸드폰에 몰입하고 있었다. 들려주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의 이탈리아 여행 한줄평을 속으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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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숙소에서의 조식, 테니스, 그리고 수영
이탈리아에 오길 잘했다!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AMALFI(FOSITANO) – SICILY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저와 신부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보는 이야기에 대해 담을 예정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각자의 언어로 함께 있는 시간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신부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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