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 디디온, <하얀 앨범>
“우리는 살기 위해서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 「하얀 앨범」 중에서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조운 디디온은 1934년 캘리포니아 주의 새크라맨토에서 출생했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학 졸업반 시절『보그』지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것을 계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한다. 젊은 시절 탐사보도 기자 및 작가로 활동을 했는데, 특히 1960년대에 탐 울프, 노먼 메일러 등이 적극적으로 이끈 <뉴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다. 1963년에 쓴 첫 소설을 시작으로 소설과 산문 중심의 작가 생활을 이어왔다. 1968년 로스앤젤레스 인근 지역의 반문화에 대한 심층탐사를 모은『베들레헴을 향한 웅크림』이란 산문집으로 본격적인 작가적 명성을 쌓기 시작해서 이후 할리우드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스타 탄생>, <업 클로즈 퍼스널> 등이 있다. 2003년 딸이 혼수상태에 빠진 직후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남편에 대한 애도를 담은『마술적 사유의 해』는 평단의 극찬뿐 아니라 일반 독자층으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을 출간하던 해 딸 역시 사망한다. 2005년 디디온은 이 책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실과 애도를 담은 또 하나의 최근작으로 2011년에 출간된『푸른 밤』이 있다.
디디온의 글은 자서전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개인적 경험과 시선을 통해 당대의 문화를 예리하고 세련되게 분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의 개성이 돋보이는 대표적 에세이는「하얀 앨범」이다. 동명의 에세이집을 여는 서론과 같은 이 글은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공주가 감옥에 갇혀있고, 젊은이가 사탕으로 아이들을 유혹해 바다로 데려간다. 16층 방의 창가에 벌거벗은 여자가 앉아있다. 이 여자는 왜 이러고 있을까.”
이 세 문장은 각기 환상적 세 장면을 묘사하는데, 작가라면 누구든 사로잡힐 상상력의 순간을 보여준다. 창가에 앉아있는 벌거벗은 여자를 보면 작가는 ‘왜’라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디디온은 작가란 파편적이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미지들에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완전하게 살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실제적 경험, 우리가 경험하는 이 현실이 끊임없이 변화무쌍한 환영(幻影)이라면 생각과 관념, 아이디어를 부여해서 현실을 고정시킴으로써 삶이 완전해진다는 것이다.
「하얀 앨범」은 디디온이 이렇게 자기만의 이야기로 쌓아온 삶이 어느 순간 의심스럽게 여겨졌던 때를 그리고 있다. 1966년에서 1971년까지 디디온은 한 달에 두어 편씩 잡지에 글을 실었고 책 두 권을 출간했으며 영화 작업도 몇 편 하고 있었는데, 겉으로는 유능하고 멀쩡한 사회 일원으로 보였지만 내면적으론 심한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렸다. 그녀는 그 5년의 시간 동안 자신이 기자며 작가이자 아내이고 엄마로서, 60년대 말 미국, 그것도 자유와 평화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캘리포니아의 중심부인 할리우드에 살면서 한 ‘시민’으로서 했던 일을 나열하는 문단에서 “그 당시의 편집증에 참여했다”는 문장을 삽입시킨다.
그녀는 “당시는 내 인생에서 내가 ‘이름으로 불려진’ 시기였다”라고 정의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책임을 갖고 그것에 어울리는 직책으로 불리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시민으로서 작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성인이라면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 사회와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갈 때 한 번쯤 자기 자신에게 낯선 이물감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있으리라.
“아마도 내 인생의 중년이었을 그때, 나는 여전히 [그때까지 내 삶에서 만들어온] 서사를 믿고 싶었다. 그 서사가 말이 된다는 사실을 믿고 싶었지만 매 장면마다 [서사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경험은 윤리적이라기보다는 전기 장력 같은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디디온이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흔한 중년의 위기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그녀가 “그 당시의 편집증”이라고 언급했듯이, 미국의 현대사에서 60년대 후반은 반전운동과 시민권 운동, 여성해방운동, 동성애 운동 등 기존 권위 체제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던 격변의 시대였고 그에 따른 어떤 심리적, 정서적 기운이 퍼져있었다. 공적인 변혁의 물결은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몸과 정신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와 공존했다. 성해방, 급진적 개인주의, 기존 종교 체계를 거부한 영성운동 등이 반체제 운동과 나란히 현존 생활가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젊은 세대는 단지 사회체제를 바꾸는데 머물지 않고 인간성, 인간다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50년대부터 이어져온 이데올로기적 공포가 여전히 대기 중에 떠돌아다녔고, 마약류 및 향정신성 약물중독이 확산되었다. 범죄도 빈번히 발생했고 세기말을 알리는 충격적 사건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었다. 일례로 그녀가 살던 할리우드의 집에 수시로 낯선 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곤 했다. 지금의 상식으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던 당시의 미국은 상시적 편집증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로스앤잴레스와 뉴욕, 새크라멘토를 오가며 지냈고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보냈다.
“[이런 생활은] 내게 어떤 환상을 심어주었는데, 나는 당장에라도 룸서비스에 전화를 해서 난초로 장식된 나만의 역사 수정주의 이론을 주문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호놀룰루의 로열 하와이안 호텔 베란다에 서서 로버트 케네디의 장례식을 시청했고... 로열 하와이안 비치에 누워 조지 오웰의 글을 몽땅 다시 읽었으며... 미국 본토로부터 하루 늦게 도착하는 신문에서 베티 렌즈다운 푸껫이라는 26세의 빛바랜 금발 여인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녀는 고속도로 5번에서 베이커즈필드의 마지막 출구 5마일 남쪽지점에 중앙분리 대위에 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올려놓아 죽게 내버려두었다. 12시간이 지나서 캘리포니아 고속순찰대가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울타리를 그러잡은 아이의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 내야 했다. 뉴스에 따르면 아이는 엄마와 계부, 오빠와 언니가 탄 차를 따라 ‘한참을’ 달려갔었다고 했다. 이런 이미지들은 내가 알고 있던 서사에 맞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디디온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에 뽑힌다. 1968년 여름, 디디온은 산타모니카의 세인트 존스 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얼마 전 겪은 “현기증과 구토증” 증세로 인해 우울증 테스트를 받게 된다. 그녀의 진단서에는 “모든 인간적 노력이 실패하리라고 느끼며 점점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심리적 포기상태로 빠져드는 것 같다. 그녀가 보기에 세상은 낯설고 갈등으로 가득하며, 상호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사악한 동기로만 가득한 사람들 천지였다”라고 적혀있다.
그녀는 1968년의 여름에 대한 반응으로 “현기증과 구토”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고 쓰면서, 당시에 일어난 연쇄살인사건, 블랙 팬서당[흑인의 힘을 주장한 반인종차별 과격주의]의 리더 휴이 뉴튼 인터뷰, 밴드 도어스의 음반 녹음 당시 만난 보컬 짐 모리슨, 어떤 사교 모임에서 만난 가수 재니스 조플린, 샌프란시스코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목격한 시위 장면 등의 묘사를 콜라주처럼 이어 붙인다.
이런 글쓰기 스타일은 뉴저널리즘의 전형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매일 벌어지는 사회적 사건들과 문화적 현상들을 기록하고 전달해야 하는 그녀의 글은 이런 객관적 사건들을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에 있어 단지 저널리스트적 객관성만 고집하지 않고 작가 개인이 느낀 고유한 정서를 통해 사건 자체가 담고 있는 특유한 분위기를 살려 묘사한다. 다시 말해 육하원칙에 입각한 밋밋한 기술이 아니라 작가 고유의 정서가 투영되어 기억된 것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독특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글에는 그녀가 기억한 것, 느끼고, 관찰하고, 사색한 것들이 사실의 덩어리를 구성하고 있다. 더 이상 작가의 개인성이 신변잡기나 자의식에 붙들려있지 않고 어떤 역사적 인식과 기록의 차원이 되는 그런 글쓰기가 탄생한 것이다. 그 결과 디디온이 보낸 한 시절에 대한 개인적 독백과도 같은「하얀 앨범」을 읽다 보면 그 당시의 시대적 정신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상은 3년 전 모 문예지에 실었던 미국 문학 기획 연재 원고의 일부이다.
이 원고를 검토하던 중 지난 3월 22일 엘에이 타임스에 디디온의 <하얀 앨범>에 관련해서 한 기사가 실렸다. 디디온의 글에 대한 단독 기사라기보다는 디디온의 글을 소재로 만든 동명의 공연이 4월 초에 열린다는 소식과 이 공연을 만든 40세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라스 잔을 소개하고 있었다. 라스 잔은 25년 전에 처음 디디온의 에세이를 읽고 매료되어 그동안 20차례 이상 반복해서 읽어왔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울린이 쓴 이 기사도 공교롭게 필자의 원고에서 인용된 디디온의 에세이 첫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울린 은 이 첫 문장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울림이 큰 첫 문장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서사, 즉 이야기에 대한 작가 혹은 개인이 느끼는 양가적 감정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우리를 구원하고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에세이 중반부에 디디온이 쓰고 있듯이 우리가 알아왔던 서사에 맞아 들어가지 않는 이 세상의 혼돈 속에 그저 무기력할 뿐인가.
컬트 집단을 이끌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찰스 맨손, 블랙 팬서당 리더 휴이 뉴튼의 재판 과정, 짐 모리슨, 케네디 암살사건 등 일련의 정신없이 몰아치는 시대의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디디온은 통제력을 상실하고 서사의 구조는 붕괴한다. 그런 정신적 문화적 혼돈상태가 고스란히 디디온의 글에 담긴다. 결과는 몽타주와 콜라주 스타일의 파편적 에세이.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의 어느 유명 여성작가는 디디온을 끔찍이도 싫어한 나머지 '그 여자의 글을 읽으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실제로 디디온의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도 극과 극이다.
내 개인적 독서 경험은 라스 잔의 것에 가깝다. 특히 이 <하얀 앨범>은 읽기 시작할 때부터 이상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서 궁금해져서 자꾸 읽게 되고, 읽고 난 후에도 반복해서 떠올리고 텍스트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건 아마도 그 시대, 즉 지금은 먼 과거가 된 듯하지만 2019년 현재에도 출몰하고 있는 그 1960년대라는 시대의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시대의 중심에서 서사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자신의 시대가 붕괴하고 폭발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거울상처럼 받아낼 수밖에 없었던 글쓰기 - 현실 사건이 범람하고 혼돈으로 빠져갈 때 작가가 버티는 방법은 역시 이야기, 글쓰기밖에 없다는 것, 구원이나 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록 혹은 미러링으로라도 글로 버텨가야 한다는 것.
**표제 사진은 1960년대 할리우드 블루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