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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Mar 12. 2019

에세이'하는' 시간

문학적 산문(Creative Nonfiction)이란 무엇인가 - 1

산문이 대세다. 한국의 수필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시인, 소설가도 산문집을 내는 것이 유행인 시대이다. 수필 혹은 산문의 확산과 인기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미 문학계에서 산문은 오랜 전통을 이어온 장르이다. 산문은 영어로 에세이(essay)라고 하지만 최근 미국 문단과 출판계에서는 ‘creative nonfiction' 혹은 ’narrative nonfiction'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된다.

 

  한국에서 산문은 수필만이 아니라 시와 소설을 제외한 글을 넓게 통칭하는 용어이다. 영어로 산문은 ‘prose’이고 ‘에세이’는 산문 중에도 수필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creative nonfiction’은 직역하면 ‘창조적 비 허구’이지만, 우리말 번역으론 ‘문학적 산문’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한다. 기왕에 ‘에세이’란 표현이 있는데도 굳이 이런 새 표현이 필요한 이유는 에세이라는 전통적 장르의 원칙이 다소 제한적인 반면 산문이라는 형식으로 사람들이 실제 쓰고 있는 글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산문’이라고만 하면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형식적 범주로 사용하기 어렵다. 일례로 60년대 미국에서 풍미한 ‘뉴저널리즘’ 계열 산문은 기존 저널리즘의 객관적이고 딱딱한 정보 위주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문학적 창작의 요소를 가미해서 실제 사건의 서술에 사실의 한계를 넘어선 풍부한 의미를 담아내었다. 이런 시도들이 산문의 영역을 더욱 발전시켜서 현재의 다양한 실험을 낳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수필을 필두로 산문 장르는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으며, 수필 내부에서 다양한 하부 장르로 구분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수필 작법에 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수필론에서 아마 핵심적인 쟁점은 사실과 허구성의 문제일 것이다. 수필과 소설을 구분하는 가장 큰 변별점이 허구성의 여부라면, 수필 또는 문학적 산문은 허구적이지 않은, 객관적인 사실을 다루지만, 사실적 경험 세계의 진실을 좀 더 폭넓게 전달하고 묘사하기 위해 문학적 스타일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비허구적인 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문학적 산문을 제외한 산문은 사실의 기록과 평가, 정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뉴스 기사와 과학적 서술이나 학술논문)과 전통적 방식으로 서술된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이 남는다. 따지고 보면 이런 구분도 엄밀히 따지면 구분을 위한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글이든 문학성(literariness)이 깃들면 좋은 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성이 무엇이냐는 문제는 이 글의 목적을 넘어서는 주제라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문학성이 단지 허구성 여부만이 아니라 문장과 문맥에서 환기되는 어떤 정서적 울림 같은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만 덧붙이겠다. 휴프턴 미플린 출판사가 매년 각 장르마다 대표작을 엄선해서 출간하는 <베스트 아메리칸> 시리즈의 에세이 분야를 시작했고 책임편집해 온 로버트 애트완이 2012년판 서문에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에세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마 지나치게 많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세이 장르의 핵심은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우리의 정신과 정서에 실수없이 반응하는 능력이다.... 에세이 형식의 참다운 예들은 이 지속적 변화의 과정을 촉발시킨다. 에세이가 상상력의 문학으로서 진지하게 간주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은 그 과정에서 발견되고 에세이 작가는 진지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최고의 에세이는 매우 사적이며(그렇다고 자전적이란 말은 아니다) 쟁점과 사상에 깊이 관여하는 작품이다. 또 뛰어난 에세이는 에세이라는 장르를 동사로 제시함으로써 성찰하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정신의 운동을 보여준다. 즉 이런 작품들은 ‘에세이 한다’.”

     

  그는 최근에 이와 같은 자신의 에세이 개념과 기준에 따라 1950년 이후 미국의 베스트 에세이 열 편을 골라 발표했다. 물론 이 선별과정은 다분히 애트완 자신의 기준과 취향이 반영된 것이며 이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어도 훌륭한 작가와 그들이 쓴 에세이는 많으리라. 하지만 이 10명의 작가들, 특히 애트완이 각 작가의 대표작으로 엄선한 한 편의 에세이들이 흥미롭게도 여타 유사 ‘베스트 에세이’ 리스트들에서도 중복 선택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리스트가 갖고 있는 권위를 인정할 만하다.  


이 작가들이 글 속에 열어놓은 낯선 시공간에서 진실의 등걸 불을 지켜보며, 이제 우리도 에세이 ‘할’ 때이다.



##애트완의 리스트에 속한 작가는 제임스 볼드윈, 수전 손택, 조운 디디온, 애니 딜러드, 존 맥피, 노먼 메일러, 데이빗 포스터 월러스, 조 앤 비어드, 필립 로페이트, 에드워드 호그랜드이다. 이 매거진에 이미 월러스와 애니 딜러드의 에세이에 관한 글이 수록되어있다. 앞으로 언급된 작가들의 글 중 애트완이 특히 꼽은 에세이를 계속해서 소개할 예정이다. 



     *이 글은  모 문예지의 미국 문학 기획으로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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