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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Mar 14. 2019

개기일식

애니 딜러드( Annie Diallard)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미스터리의 심연으로부터, 심지어 저 높은 곳의 영광으로부터도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서둘러 집이라는 평범한 일상으로 향한다”. -「개기일식」 중에

딜러드의 산문집

애니 딜러드는 정통 에세이 형식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기독교적 사색과 성찰의 전통에 내재한 자연친화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하지만 단지 전통을 계승하기보다는 일체 타협의 여지없는 세계관에 입각한 딜러드 개인의 독특한 시선과 감성을 글에 담아냈다.    


  딜러드는 1945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석사논문으로 소로우의『월든』에 대해 썼다. 1974년 출간한 첫 산문집『틴커 계곡의 순례자』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펜클럽이 수여하는 에세이 상을 받았고 2015년엔 대통령이 시상하는 문예예술 국민 메달을 받았다. 25년간 10권 이상의, 자서전을 포함한 산문과 소설을 출간하면서 소로우에 버금가는 산문작가로 평가를 받았지만 2007년부터 절필하고 책을 쓰지 않고 있다. 17년간의 침묵 이후 최근『풍요로움』이란 제목의 선집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새로운 글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대표선집으로서 딜러드의 산문 세계를 접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틴커 계곡의 순례자』는 28세에 쓴 책으로 숲에서 수년간 생활한 경험을 상징적인 1년으로 압축해서 그려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소로우의 표현을 따서 “마음의 기상학적 일기”를 쓰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소로우의 정신적 후계자임을 밝힌다. 흔히 자연시인, 자연 작가로 분류되는 딜라드의 관심은 자연 그 이상이다. 소로우가 숲 속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면 딜라드는 작가 자신의 일상적 생활,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가는 관심이 없다. 딜라드의 글에서 핵심은 자연관찰과 성찰적 사유이다.

     

  애트완의 베스트 에세이 목록에 꼽힌 딜러드의 에세이「개기일식」은 산문집 『돌멩이에게 말 가르치기』에 수록된 글로, 여러 전문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이 글은 “그것은 마치 죽음과 같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남편과 개기일식을 보러 워싱턴 주의 야키마라는 도시 근처 호텔로 가는 중이다. 딜러드는 첫 문단에서 산속 도로를 지나는 여정을 죽어가는 과정(dying)으로, 종착지인 호텔을 “이상한 곳”이라고 부른다. “마치 누군가의 죽음인 듯했다. 제정신이 아니다. 산속 길을 미끄러져 달려 내려와 공포의 제대로 떨어져 간다. 마치 열병으로 빠져 들거나 잠이라는 구멍으로 떨어져 울면서 깨어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문단의 첫 문장은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이다. 호텔방의 침대가 마치 그녀의 관 같다. 그녀는 누운 채 옆에서 책을 읽는 남편과 벽에 걸린 그림을 묘사한다.  

     

“그것은 보고 싶지 않지만 딱하게도 한번 보면 결코 잊히지 않는 종류의 그림이다. 뭔가 취향 따위는 아랑곳 않는 운명이 그것을 당신에게 억지로 내민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당신이 끌고 다니는 뒤숭숭한 마음속 쓰레기 더미의 일부가 된다. 내가 지금 이 글에서 쓰고 있는 개기일식 이후 2년이 지났다. 그 두 해 동안 아마도 내가 정말 기억하고 싶은 수많은 것들을 잊어버렸지만 그 광대 그림만큼은, 그 낡은 호텔의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절대 잊혀지지 않았다.”

     

우선 개기일식이라는 현상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흔치 않게 찾아오는 이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을 보러 기대감에 차서 손에 카메라, 비디오, 망원경 따위를 들고 수천 마일도 불사하고 달려왔을 것이다. 딜러드 부부 역시 그랬다. 그녀는 워싱턴 주 해안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부터 내륙의 야키마 계곡을 향해 다섯 시간을 달려왔다고 쓴다. “우리 자신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서.”  개기일식을 보려는 구경꾼의 흔한 호기심 대신, 딜러드는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완전히 자신을 소멸시키려 한다고 생각한다. 개기일식의 영어 표현을 말 그대로 풀면 완전한 또는 철저한 소멸 상태(total eclipse)이다. 개기일식을 보러 온 사람들은 다음의 인용문에서 딜러드가 묘사한 것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와 경험으로 표현하기 힘든 자연현상에 의해 공격당한다.

     

“태양이 가려지기 바로 직전 우리는 어두운 그림자의 벽이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봤다. 우리가 그것을 보자마자 그 벽은 우리를 마치 천둥처럼 덮쳤다. 그것은 계곡을 한가득 채우며 으르렁거렸다. 그것은 우리가 서있던 언덕을 강타해서 우리를 나가떨어지게 했다 그것은 괴물처럼 빠른 원환 모양의 달그림자였다.”

     

  딜러드는 개기일식을 단지 구경이나 어떤 기상천외한 현상으로도 겪지 않는다. 그녀는 개기일식이란 자연적 현상이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 그중에서도 죽음이라는 사건과 가깝다는 통찰을 보인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에게 일어나는 가장 중대하고 의미심장한 자연현상이 아닌가. 달이 해를 덮치는 순간 해의 빛이 사라지고 지상의 인간에게 아주 빠르고 큰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그림자에서 그녀는 죽음의 치명성을 감지한다. 그림자의 ‘벽’이라고 한 딜러드의 표현에 주목하자. 벽을 마주한 인간은 막막한 불안감 속에서 인간의 조건을 넘어서는 불가능과 미지의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이게 된다. 이 벽이 군중들을 덮친다.

     

“가장 심오한 공포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언덕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달의 검은 몸체가 하늘에서 떨어져 나와 해 위로 굴러갈 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뭔가 또 다른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달이 해를 덮쳐서가 아니라, 달이 해를 가릴 때 생기는 검은 그림자의 벽이 그들을 덮칠 때 사람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달이 해를 가리는 자연현상은 구경거리 일 수 있지만, 그 자연현상이 구경꾼인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조건을 흔드는 어둠 속 진실과의 대면이며, 그 순간 느끼는 매혹적인 공포 탓에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게 된다.

  

일식이 끝나고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침식사를 하던 레스토랑에서 20살 남짓한 대학생이 일식 광경을 “라이프 세이버”에 빗대어 표현한다. 라이프 세이버는 중간에 구멍이 있는 원환 모양의 사탕으로 해 위로 달이 덮쳐올 때 생기는 원환 모양을 그대로 닮아있는데, 이 비유가 딜러드에게 어떤 충격처럼 다가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프 세이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라이프 세이버’(Life Saver; ‘목숨 구조대’ 정도의 의미)라는 표현은 자신들이 방금 전 외친 비명소리를 잊은 채, 명확한 언어 표현으로 숭고한 자연현상을 규정해 버림으로써 의도치 않게 경험한 심연의 진실을 서둘러 정리 정돈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일식의 순간 덮쳐온 그림자에서 강한 죽음충동, 그 공포를 경험했다면 이 젊은 청년이 던진 비유의 ‘라이프 세이버’는 그들을 그림자의 벽으로부터 ‘구원’해 낸 셈이다. 그때까지 일식의 경험과 벽의 기억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지 몰라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딜러드는 청년의 말을 듣고 이렇게 쓴다.

     

“그 아이의 표현은 적절했다. 그는 걸어 다니는 알람시계였다. 나 자신은 그때 그런 표현 같은 것을 떠올릴 수 도 없었다. 그는 문장을 쓸 수 있었지만 나는 쓰지 못했다. 나는 그가 준 라이프 세이버를 그러쥐고 그것에 올라타 표면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영리한 사람들은 비로소 그것이 맡은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그 순간들은 이제 상실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일상의 표면으로 되돌아와 말들을 마음의 휘하에 넣어두고 ‘마음껏’ 문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표면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열어보니 보물 대신 괴물이 들어있었고 그것이 당신에게 덤벼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딜러드는 반문한다. 


그날 그 언덕에서 개기일식을 본 모두가 일식 현상이 끝나자마자, 서둘러서 자리를 떴고 각자 타고 온 차를 타고 언덕 저 밑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아침 출근차량의 행렬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현실 세계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독자 역시 딜러드의 글을 읽고 난 후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다시 시작될 현실세계로 재빨리 돌아갈지 모른다. 일상의 세상은 얼마나 아늑한가. 비로소 마음이 놓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가사의하고 형언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돌아오면 일상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딜러드가 던진 질문은 우리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 이 글은 미국 문학 연재 기획으로 문예지 <한국동서문학>에 게재했던 글의 일부입니다. 에세이에서 인용한 대목은 모두 필자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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