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A Fairytale>

by 메아리

문득 그런 날이 있지 않아?


갑자기 회중시계를 든 토끼가 뛰어가는 걸

보고 홀린 듯 뛰어들어가고


갑자기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자와 양철과 허수아비와 걷게 되는 날이.


옷장에 얼굴을 들이밀자

얼음여왕의 냉기 어린 숨결이 훅 날아들던 날이.


그런데, 다시 눈을 떠보니 그저

지하철에서 화면을 바라보며 출근하던 날이.


이상하지?

분명히 내가 본 건 진짜였는데.

내가 겪은 건 진짜였는데 왜

나만 거기에 있었던 것 같을까


이럴 때가 있지 않아?


아직도 내 앞에서 반투명하게

내 옆에서 메아리처럼

이야기하고, 마주하고 있는데

왜 이것들은 실재하지 않을까


신기루를 모래로 채워보았지만

그저 모래만 흘러 흩어져,

나도 결국 같이 스러져 버렸어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내 눈에만 보이는 산을 올라가고

내게만 보이는 그것을

작게라도 보여줄 거야.


열리기 전까진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저 땅 속 씨앗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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