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날이 있지 않아?
갑자기 회중시계를 든 토끼가 뛰어가는 걸
보고 홀린 듯 뛰어들어가고
갑자기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자와 양철과 허수아비와 걷게 되는 날이.
옷장에 얼굴을 들이밀자
얼음여왕의 냉기 어린 숨결이 훅 날아들던 날이.
그런데, 다시 눈을 떠보니 그저
지하철에서 화면을 바라보며 출근하던 날이.
이상하지?
분명히 내가 본 건 진짜였는데.
내가 겪은 건 진짜였는데 왜
나만 거기에 있었던 것 같을까
이럴 때가 있지 않아?
아직도 내 앞에서 반투명하게
내 옆에서 메아리처럼
이야기하고, 마주하고 있는데
왜 이것들은 실재하지 않을까
신기루를 모래로 채워보았지만
그저 모래만 흘러 흩어져,
나도 결국 같이 스러져 버렸어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내 눈에만 보이는 산을 올라가고
내게만 보이는 그것을
작게라도 보여줄 거야.
열리기 전까진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저 땅 속 씨앗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