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하나의 성전이다(1)

내가 물리치료사가 된 이유

by 메아리

저는 처음에 신학교에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신학이 아니었습니다. 매일의 기도와 묵상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수도자들이 서원을 세우듯, 저 역시 다짐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치유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신학이 제 길이 아님을 깨달았고, 결국 자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음에 남은 것은 오직 ‘치유’라는 단어였습니다.



자퇴 후 조선소에 들어가 RIG에서 케이블 풀링 작업을 맡았습니다. 거대한 배의 좁은 통로를 따라 케이블을 이어 붙이는 일은 고되고 위험했지만, 동시에 묘한 감각을 일깨웠습니다. 케이블이 연결될 때 배라는 구조물은 전기를 얻고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인간의 혈관과 신경을 떠올렸습니다. 단절된 곳이 다시 이어질 때 비로소 전체가 작동한다는 원리, 그것은 몸과 배에 모두 적용되는 진리였습니다. 이때부터 ‘몸의 구조’와 ‘연결의 의미’는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조선소에서의 시간은 현실도 가르쳐주었습니다. 노동의 무게, 생계의 무게. 동시에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습니다. 결국 다시 수능을 준비했고, 물리치료과로 진학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제게 치유는 오래된 질문이었고, 물리치료는 그 질문을 구체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경제적 안정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몸을 합법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신학교에서의 서원과 조선소에서의 경험은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치유를 향한 마음과 구조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 결국 물리치료라는 길에 닿았으니까요.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환자들은 각자의 삶에서 전문가입니다. 어머니가 집안을 일으킨 것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탁월함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무너지고, 결국 그 전문성마저 흔들립니다. 저는 그들의 삶에 작은 블록 하나라도 다시 채워 넣고 싶었습니다.



몸을 회복시키는 일은 결국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과 같았습니다. 저는 오늘도 환자들의 몸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성전으로 바라봅니다.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는 일이 곧 치유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대학 시절 만난 태극권 수련 속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