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과 함께 같은 속도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눈 안에 무언가가 들어간 듯
따갑고 보이지 않는다.
무심결에 눈을 비비며 양 눈이 좋아지길 기다리지만
오히려 투명한 비늘이 낀 듯 뿌얘지기만 한다.
절망하며 풀썩 앉아버리고, 군중은 계속 흘러간다.
보이지 않아 눈을 가리고 있기를 한참
주변이 조용해지며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다.
눈을 뜨자, 새롭게 열린 눈에, 처음 보는 세상이 펼쳐진다.
군중의 형상을 한 글자들만 남아
고개를 홱 돌리자
글자들이 획으로 풀어헤쳐지며 내 주위를 맴돈다.
맴도는 획을 어루만지니
待 멈추어 기다리고
忘 잊어버리라.
획이 더 이어져 글자가 되어 말한다.
눈을 진짜 뜨고 보니 내가 실제로 해야 했던 것은
계속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 그저
자신을 잊어버리라고. 그리하면
새로운 흐름이 찾아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