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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C Nov 07. 2019

몬세라트(Montserrat)

까딸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의미


저는 까딸루냐 사람입니다.

지금은 스페인의 한 지방에 불과하지만,

까딸루냐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였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연주할 곡은

까딸루냐의 민요인 ‘새의 노래’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는 ‘피스(peace), 피스, 피스’라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보다 아름답습니다.

이 노래에는 나의 조국 까딸루냐의 혼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새들이 평화를 노래하듯이 저도 평화를 염원합니다.


파블로 카잘스

UN평화상 수상소감 중에서

(1971년)



바르셀로나에서 열차를 타고 한 시간, 몬세라트 역에서 산악열차를 갈아타고 당장이라도 미끄러질 것만 같은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했다. 웅장하게 솟은 산은 여전히 나를 압도했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프랑코 독재 시절 까딸루냐어가 금지되었을 때도 까딸루냐어로 미사를 드리고 매주 일요일이면 까딸루냐의 민속춤인 사르다나를 추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우디, 피카소를 비롯한 수많은 까딸루냐 출신 예술가들이 몬세라트를 자신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몬세라트 수도원이 선택해 동상을 세우고 기리는 예술가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이다.  

  카잘스는 바르셀로나의 헌책방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를 발견하고 12년 동안 연습한 뒤, 발표했던 천재 첼리스트이다. 하지만 몬세라트가 그를 기리는 이유는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가난한 노동자들도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1달러짜리 노동자음악회를 열고, 프랑코에 반대하는 공화파를 위해 무료 공연을 하기도 했다. 프랑코가 집권한 뒤에는 저항의 의미로 십 년간 첼로 연주를 하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 당시 영국이 중립을 표방했고, 전후에는 프랑코 정부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영국에서는 공연하지 않았다. 나치의 후원으로 독일에서 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친구인 코르토(Alfred Denis Cortot,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1877〜1962)와도 절교했다. 미국이 어마어마한 돈과 명예를 약속하는데도 미국으로 망명하지 않은 것은 스페인 내전 당시 미국이 공화국 정부군에게는 비행기를, 프랑코의 반란군에게는 휘발유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프랑코가 집권한 뒤에는 망명하여 스페인 국경 근처 프라드(Prades,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살며 모국 스페인을 그리워했지만 끈질긴 스페인 정부의 연주 요청을 끝까지 묵살했다.

  95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하루에 6시간씩 첼로를 연습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카잘스는 ‘연습을 하는 동안 연주 실력이 아직도 향상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계속 연주하고 연습할 겁니다. 다시 백년을 더 살더라도 그럴 것입니다. 내 오랜 친구인 첼로는 배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음악가는 그저 인간일 뿐이지만 음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이다.”

  “나는 우선 한 명의 인간이다. 그리고 음악가이다. 한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후우, 어쩌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까지도 명언일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온다.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천재들을 대할 때, 나는 스스로를 위안한다. 저 사람에게도 분명히 약점이 있을 거야. 신은 공평하고, 인간이 가진 것은 비슷하니까. 보통 위대한 천재들은 괴팍한 성격이나 비윤리적 행동으로 나를 만족시켜준다. 누구도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완벽에 가장 가까운 이가 있다면 그게 바로 카잘스일 것이다. 그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대표해 <몬세라트 수도원>에 기려질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


  지난번에 <몬세라트 수도원>에 왔을 때는 검은 마리아상을 보지 못했다. 마리아가 들고 있는 둥근 공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줄이 엄청나게 길었기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무리 오래 기다리더라도 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줄을 섰다. 점심을 거르고서라도 검은 마리아상을 보겠다는 의지로, 숙소 근처에서 샌드위치까지 사 가지고 왔다.

  다행히 검은 마리아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세 시간을 기다려서야 겨우 그 둥근 공을 든 검은 마리아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 검은 마리아 바로 앞에 선 순간, 이상하게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뭘 기도하려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워낙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길게 기도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정말 진심으로 빌었다. 백만 분의 일이라도 카잘스를 닮은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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