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만에 바다를 보았습니다.
그대와의 결별을 선언하고자 인천역에서 한없이 걸어 도착한 곳은 월미도 해안. 나폴레옹 1세에 관한 16일 전의 그 사색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바다색이 쪽빛이기는커녕 대기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황색을 띠니 그때의 그 사유에 진척이 있을 리 없죠. 갈매기들은 유람선 주변을 맴돌 뿐입니다. 그나마 간조 때인지라 바위에 앉아 쉬는 녀석들도 여럿 보입니다.
만조수위를 알리는 표지를 바라보며 나는 그대를 잊으려 애써 노력합니다. 그대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나요. 나는 그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었건만, 그대는 그대가 나에게 처음 다가온 그날 내가 그대에게 보여준 헌신과 이에 대한 그대 자신의 맹세를 벌써 잊은 듯합니다. 그동안의 나의 희생은 이제 휴짓조각이 되었군요.
'나 주변의 타인'과의 관계란 모름지기 함께 살아가야 하는 법. 그러나 그것이 편리공생으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 이때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자는 자신이 그런 위치에 처해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허다합니다. 그러다가 희생의 끝자락까지 오도록 상대의 보답이 '무(null)'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공허함은 곧 고통이지요. 하지만 상대는 그의 고통에 무관심합니다.
추측컨데, 보답이라 함이 굳이 물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레시프로시티(reciprocity)의 요건은 충족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대는 끝내 나를 버리었지요. 나를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대의 벗들을 데리고 말없이 떠났지요. 문득. 내 주위에서 빙빙 돌던 갈매기 떼조차 뱃고동 소리에 유람선을 따라 영종도 방향으로 떠나네요.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그대를 위하는 것이 나의 인생에서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진정 나에게 소중한 이들이 누구였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기조력에 의해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내 삶을 회억해 봅니다. 동시에 내 삶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한 이들을 하나둘씩 호명하며, 이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그대와 관련된 모든 기억들을 인천 앞바다를 향해 완전히 날려버립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비상입니다.
그대와 헤어진 직후. 소중한 벗들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잿빛 하늘에 반사된 그대의 형상을 경청함에, 더 이상 튕기지 아니하는 길 위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고독을 걸으렵니다.
- 2018년 겨울, 월미도 바닷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