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 아홉 시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아끼는 볼펜으로 플래너에 또박또박 적었다.
'오전 9시. 인스타 비활성화.'
문득 인스타그램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몇 명 떠오른다.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앞으로는 카톡으로 연락하자고 보내 놓긴 해야겠다.
SNS 계정을 없애거나 일시중지해본 경험은 이미 많다. 대부분의 경우는 '중요한 다른 일에 잠시 집중하고 싶어서' 혹은 '계정이 해킹을 당해서' 둘 중 하나였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사유들이다.
하지만 내일의 내가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하려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어쩌면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고민으로부터 비롯된 행위일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지우면 삶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흔히 SNS의 가장 큰 폐해 중에 하나로 '타인의 화려한 삶과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초라한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고 싶다.
SNS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사유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한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에서 느낀 감정은 자유와는 거리가 먼 것들 뿐이었다. 타인은, '나의 일상'을 궁금해한다기보다는 '나의 일상 중 극히 일부의 화려한 이미지 한 컷'에 좋아요와 댓글로 반응하는 존재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코 인스타그램과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나는 평소에 SNS의 순기능에 굉장히 호의적이다. 그리고 어떤 게시물을 올렸을 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팔로워 수를 늘리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인스타그램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곳에서 나의 자유로운 일상을 공유할 수 없었다. 나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도 없었다. 인스타그램을 브런치처럼 활용했다가 '진지충', '사회 부적응자', '노잼'이라는 말을 한 번씩 들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그곳에 올릴 사진들을 애써 보정하고, 짧지만 강렬한 문구를 고르기 위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은 진정한 '나'를 드러내는 방법이 아니었다.
나는 나와 멀어지는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나의 진짜 내면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단 몇 주만이라도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인스타그램을 지우면 삶이 더 행복해질까?
정확히 1년 전에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던진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그 질문에 더 잘 대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해진다'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나에게서 멀어진 나'를 예전보다는 더 가까운 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최근에 친한 친구 두 명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둘 다 활발히 활동하던 친구들이라 좀 놀라긴 했다. 그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의 진정한 내면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떠난 게 아닐까, 혼자서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