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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 Jun 09. 2021

호우 경보

중문 해수욕장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자 귀에서 이어폰을 뺍니다.


상록활엽수, 낙엽활엽수, 초본다년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폭포. 물안개. 침식, 우당탕탕. 튀어오르는 돌멩이.

파고가 높습니다.

망망대해. 파도를 거슬러 수평선 쪽으로 아찔함. 서핑보드.


바다에는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강풍. 휘몰아치는 바람. 태풍의 전조.


위태롭습니다. 높은 파도 속으로 말려 들어갑니다. 그는 이미 4개의 파도를 넘었습니다.

파도 속은 행복입니까 침묵입니까.

두둥실, 가만히 몸을 맡깁니다.

그는 파도 밑으로 애써 숨으려 발버둥칩니다.

그러고는 파도에 이끌려, 더는 못 버티는 듯, 다시 모래사장으로 밀려옵니다.


흰, 흰, 고르지 않은 파도.

무모함. 지저귀는 이백 마리의 새떼.


이안류(離岸流).

어느 위치에서 뛰어들어야 할 지 나는 잘 모릅니다.

파도 앞을 거닐며 물색하던 찰나, 갑자기 한 걸음 더 나가 물 속으로 발을 담급니다.

그가 헤엄을 칩니다.

파도를 넘는 형상은 치열함입니다.


호우경보.

새벽에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무계단, 자갈들, 재난을 피해 줄지어 걸어가는 곤충 무리.

꿈틀거리는 지렁이. 달팽이. 잠자리.


휘몰아치는 파도.

집채만한, 자욱한 안개.

전망대, 푸르지 않은, 채도가 낮은.

물안개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야자수. 여름. 방황.


파도는 더 거세게 몰아칩니다.

굉음. 물살은 굉음을 내며 갈라집니다.


풀 내음새. 파도 내음새.

벗을 부르는 소리.

나비의 아련한 날갯짓

우중충한 하늘.

소금기 섞인, 광기 넘치는 바닷바람.


모래둔덕과 바위틈새.

침묵하는 스피커.


-여름, 서귀포 중문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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