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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근 Jun 16. 2022

30대 게이 직장인이 되기까지 (1)

시작도 창대했으니 끝도 창대했으면 하는 게이 직장인의 썰풀이



살아온 궤적을 다시 그려볼 필요도 없이 나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적어도 내가 정규직으로 다녔던 직장에서는 늘 커밍아웃을 하고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후일 이야기할) 군대에서의 경험을 겪고 나서 나는 평생 커밍아웃을 하며 살아야 되는 사람임을 깨달았고, 그 이전까지는 유리벽장이었던 삶에서 완벽히 오픈리 게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운 좋은 삶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겪었던 딱 한 번의 차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직업적인 문제에서 게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차별을 받았던 경험이 딱 한 번 있었다. 내 세대에서부터 내 윗 세대에서는 여중 여고에서 '이반검열'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특히 기독교 학교에서 심했던 '성소수자 색출하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칼머리를 하거나 부치처럼 보이는 여학생만 보이면 그렇게 검열을 해대고, 그런 선후배들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 그걸 뜯어서 보고는 둘의 관계가 이상(?)하다거나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부모님께 폭로해서 전학을 가게 만드는 등의 작태가 많이 벌어졌었다. 내가 방과 후 교사로 일했던 은평구의 모 여자 중학교는 이반검열을 하던 학교 중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학교였다. 물론, 내가 방과 후 교사를 하고 있을 때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말이다.


당시 나는 영어 방과 후 교사를 맡고 있었고, 교재는 있었지만 내 재량대로 수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핫했던 유튜브 단편 영화 중에 하나인 'Love is all you need?(사랑만 있으면 되나요?)'를 딕테이션 교재로 활용했었다. 청소년 영화이다 보니 단어 사용이 간결했고 발음도 깔끔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는 게 딕테이션 교재 선정의 목적이었지만, 사실 내용이 주는 다양성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기도 했다. 이성애가 비정상이고 동성애가 정상인 사회에서, 주인공이 이성애자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학교 친구로부터 차별과 폭력, 이별을 겪게 되면서 생기는 아픔을 그린 영화였다. 나는 내가 속한 학교가 내 중고생 시절에 그렇게 이반검열로 날렸던 학교였는지 몰랐던 상태였기 때문에 단지 '영어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딕테이션 교재로 삼았다.


(영상 출처: 유튜브, '사랑만 있으면 돼?')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내가 보여준 영상에 대해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고(아마도 저녁 식사 소재거리로 나왔으리라.), 그 내용을 들은 일부 학부모들은 당시 방과 후 교사들을 책임지던 부장 선생님께 항의를 했다. 사태가 심각한 상황까지 갔다는 걸 알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부장 선생님께서 얼마 안 가 나를 호출했으니까.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대학생 때 일이니 그게 다 기억날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부장 선생님의 이 말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상근 선생님의 오른쪽 귀걸이는 선생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인가요?"



내가 소위 말하는 '이상적으로 패싱 되는 정상적인 모습'의 애티튜드를 가진 남학생이었다면 이런 질문은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한 번의 경고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 영화를 딕테이션 교재로 쓴 다음 주에 나는 해고됐고, 나는 교재로 삼았던 영화의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내 정체성 때문에 잘렸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학교가 이반검열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이 상황에 분기탱천하며 주변의 인권활동가들에게 내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였다.


그 이후로 방과 후 교사는 한 적이 없다. 모 유명 재단에서 대학생 교사를 모집해서 파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문제 교사로서 낙인찍혔고 두 번 다시 다른 학교로 배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정규직 직장을 다닐 때는 늘 내가 게이라는 것을 커밍아웃하며 살아왔다. 시리즈의 시작이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야기로 시작되기는 하지만, 30대 오픈리 게이인 직장인이 될 때까지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풀어나가는 것은 분명 중요한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별 다른 이야기가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 말고 많은 누군가들은 직장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오픈리 게이는 내가 알고 있다고 살아가고 있다는 자만 넘치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세상은 더 넓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는, 직장은 커녕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커밍아웃하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되어줄 글이 되리라 믿는다. 10대 때 정체성을 깨닫고 20대를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바치고 20대 후반-30대를 오픈리 게이 직장인으로 사는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한 자 한 자 힘 있게 글을 적어 내려 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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