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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일출이라면 사랑코트

안녕, 네팔

by 알버트



* 이 여행기는 2015년 네팔 지진이 일어나기 이 전에 여행한 기록입니다. 사진 역시 지진 이 전의 모습입니다.



이른 새벽 기상을 했다.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작은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일출을 보러 간 곳은 히말라야 '사랑코트'라는 곳이었다. 깜깜한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서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시간보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이동이 필요했다.


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밖에 없다. 꼬불꼬불한 산등성이 길을 따라 매연을 휘날리며 버스가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그 시각 좁은 길 가에는 꽤 많은 현지인들이 걸어내려 오고 올라가곤 했다. 더러는 길 가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기도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 사는 것이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풍경이다. 버스가 내 뿜은 매연을 길을 따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마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불편한 마음이 생겨났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슬그머니 커튼 뒤로 숨어들고 말았다. 창문에 고개를 들이밀고 창 밖 풍경마저 감상하겠다는 것은, 행여나 마주치게 될 현지인들의 눈에 생각도 걱정도 없는 이방인의 욕심처럼 보일까 봐 미안했다.


깜깜한 새벽, 사랑코트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추웠다. 가져온 옷 중에 가장 따뜻한 옷으로 중무장하고 머플러로 친친 동여맸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 디딜 틈 없어지는 사랑코트 내 영역을 사수하느라 정신 팔려서 그렇지 새벽 날씨는 꽤 매서웠다. 어둠 속에서는 목소리와 희미한 실루엣을 위안 삼아 두런두런 자기들끼리 아는 언어로 쏼라쏼라 대는 그런 광경이 펼쳐졌다. 한국인은 한국말로, 영어를 쓰는 사람, 불어를 쓰는 사람들, 힌디어를 쓰는 사람들....... 그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어도, 결국 아는 말만 반갑고 들을 수 있었던 시간.


추위에 지쳐 손발이 얼얼해질 때쯤, "어? 저쪽이 붉어진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려 바라보니 칠흑 같은 어둠이 갈라져 틈이 생긴 것인지, 장막 한 편이 들리운 것 마냥 붉은빛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일출이 시작되려는 것이었다.







히말라야 '사랑코트'라는 곳, 일출을 보기 위해 어둠 속에서 오래 기다립니다.

스스로 붉어지는 저 빛을 보며 숨죽여 기다립니다.

일출을 기대하며 제 각각 쓰는 이야기들, 그 덕에 빛나는 오색찬란한 카메라 플래시들.

사랑코트에서는 시간의 흐름이란 저렇게 어둠으로 덮어둔 것들을 슬그머니 걷어내어 보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히말라야에 퍼지는 햇살, 이런 일출을 볼 확률은 대략 30퍼센트 정도 된다 했습니다. 운이 좋은 경우였죠. 망설임 없이 둥실 떠오른 찬란한 태양의 위용. 저기 있으면 산과 해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해 밑의 나와 히말라야. 그래서 저 곳이 특별한 일출 감상의 장소 같습니다.




볼 것을 다 본 사람들의 여유가 넘쳐나죠? 나는 해 봤다~~ 뭐 이런?^^


히말라야 '사랑코트'에서 내려오는 길은 모두 언덕입니다. 언덕을 올랐으니 언덕을 내려오는 게 당연하겠지요. 어둠을 걷어내고 보니 그들의 세상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팍팍하게 산다는 식의 마음이 일었지만, 그렇게 생각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이 언덕에 몇 군데의 상수도 시설이 있어서 주민들이 거기에서 물을 길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합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둠을 밀어낸 하늘이 붉은색을 두르고, 그 빛을 반기는 히말라야 봉우리들에 황금빛 햇살이 쏴 올려진 시간이 말이다. 검은 산의 실루엣을 들치고 뾰족하게 드러나던 손톱보다 작은 금색 공은, 순식간에 동그란 붉은 공으로 확 솟아 올라앉았다. "시간의 흐름이란 이 정도의 속도야" 하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장관이었고, 짧은 감탄사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말문이 막히는 광경이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이 혹은 신이 빚어내는 일상적인 유희에 우리 인간에게 잠시 곁눈질을 허락한 그런 느낌. 신들의 놀이터에 구경 와 멀찌감치 서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존재로 서 있다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되돌아가는 듯한 그런 심정.


히말라야에 신들이 사는 세상이 있어, 신들은 자기들끼리 산과 해와 어둠과 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때론 제 자리에 던져놓기도 하고, 장막을 드리웠다 걷었다 안팎을 오가기도 하고. 어두우면 호롱불 꺼내듯 햇빛 하나 올려 걸어두고 끄고 싶으면 꺼버리고. 마치 그런 신들의 유려한 몸짓을 상상하게 되는 광경이었다. 수만 년 인간 세계와는 무관하게 저 광경을 연출해왔을 그런 시간의 타래를, 내 좁은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그런 광경이었다.


공중으로 둥그렇게 쏴 올려진 태양에 힘입어 햇살은 온 천지를 비추었고 사방 깜깜하던 어둠은 덮어쓰고 있었던 검은 자락을 내려두었다. 셔틀로 내려오는 길가에 수 많은 집들이 나타났다. 올라갈 때는 어둠 속에 싸여 있어 볼 수 없었던 현지인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들어찬 집과 골목길, 그리고 듬성듬성 놓여있는 수돗가. 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 같았으나 다행히도 공동 수도시설은 꽤 가까운 거리에 여러 개가 있다. 현지인들의 물 긷기를 염려할 주책 맞은 여행자의 걱정을 어느 정도는 덜어준다. 고개를 내려와 호텔에 내려서니 다시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 듯하다. 인간 세계로 내려와 쳐다보는 저 히말라야 산봉우리는 정말로 신들이 사는 장소 같다는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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