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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플로리시한 삶

Hello, America

by 알버트




미래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의 나는 편안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으므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일거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주관적이다. 내 경우 행복을 느낄 때는 내가 자유롭다 느끼는 때다. 나의 자유로움이란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조절 가능하고,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일을 할 수 있으며, 그 누구의 의지가 아니라 내 의지에 의해 일을 하고, 시간과 공간을 사용함에 있어 의도하지 않은 제약이 없는 상태 이런 정도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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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생각해 힘든 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납득하고 싶었다 그래야 세상에 보이는 불공평성이 이해될 듯했으므로, 그래야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었으므로. 결국 나의 이해가능한 수준의 합의점은 이랬다. 수많은 환경적 생물학적 조건 등의 물리적 불공평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공평하다. 적어도 모든 인간에게 있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기회만큼은 공평하게 제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재능있는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결국 삶에 있어서 공평하다. 엄청난 부 속에 사는 사람도 행복을 느낄 수 없는 불행한 삶을 살 수 있고, 형편없이 가난한 자가 못지않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적어도 자신이 행복을 느낄 기회를 선택할 자유까지는 공평하다 할 수 있다.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게 아니면 나로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불공평성을 신의 이름을 빌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실은 신의 이름에 기댄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인간의 힘이라 믿고 있지만, 진리란 보는 대로 존재한다 생각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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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나 시스템 같은 거시적인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이들의 눈에는 이 세상은 불공평하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공정하게 변화시켜나가야 할 곳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담자들을 만나는 나는, 돈이 있든 없든 결국 그 속에서 행복을 논할 때는 다르지 않음을 보아온 터라 물리적 불행과 심리적 불행이 다르지 않다 느낄 때가 많았다. 심지어 물리적 불행은 심리적 불행을 담보하지 않지만, 심리적 불행은 보유한 물리적 행복마저 무력화시키거나 무의미하게 만들고 불행으로 변모시켜 지옥에 빠뜨리는 경우도 많다. 빛이라고는 없을 불행 속에서 사는 이들의 무미건조하고 말라비틀어진 삶을 상상해보면 돈이 그들을 구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퇴직을 얼마 앞둔 몇달 전, 사람을 만났다. 자신이 너무 불행하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스카이 대학과 현실적으로 타인의 눈에 보이는 그 모든 부러운 조건은 그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 따위"였다. 좋은 조건과 돈은 별 의미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냥 원래부터 있는 그런 것 일 뿐, 더구나 그 때문에 더 불행했다 여길뿐 자신이 살아온 과거는 온통 끔찍한 불행한 역사의 기원일 뿐이다. 안타까웠다. 그는 젊었다. 이제 겨우 스물 여섯. 젊디 젊은 청춘에 제 삶이 그렇게 불행하다고 하니.......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현실적 고난 속에 있는 것 같지 않아도, 그는 스스로 지옥 속에 산다고 했다. 그의 정신은 적어도 순간 순간 지옥을 경험하겠지. 말은 끔찍하다 말했으나 내 보기엔 그 현실적 풍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맘이없는 듯한 그에게 해 줄 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느끼는 그 끔찍한 세상에서 걸어나오려 있는 힘껏 몸부림치지 않는 이상 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저 무의미할 수 있기에 잠자코 기다리는 방식이 좋다고 보았다. 다르게 보면 다른 세상이지만, 여전히 그 렌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이상은 그의 방식으로 설명되므로. 그가 다른 렌즈를 갈아낄 의지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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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대규모 연구 논문을 보면 아주 흥미롭다.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도 하는데, 재정적 안정망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돈이 많아지면 삶의 만족도도 증가하지만 재정적인 안정망을 확보한 뒤에는 돈이 많아진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즉 가난해서 먹고 살기 어려운 집단에는 돈이 많아지면 행복도가 높아지지만 먹고 살만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돈이 더 많아진다고 해서 행복이 더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300명의 행복 수준이 펜실바니아 주 아미시 교인이나 북부 그린란드에 사는 이누이트 부족민과 똑 같다고 한다.


이런 결과를 읽으면 통쾌하지 않은가? 나만 그런 걸까? 어쩌면 나도, 나를 아는 이들도, 이름 부를 수 있는 많은 이들이 결국 미국 최고의 부자들과 동일 수준의 행복을 느낄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행복수준이란 주관적인 느낌 혹은 기분으로부터 비롯된 수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의 행보를 보면 놀랍다. 그는 최근 그의 저서 플로리시를 통해 행복보다는 플로리시(Flourish)라는 개념으로, 기존의 자신의 행복이론을 폐기하고 플로리시한 삶에 대해 분명한 정의를 내려두었다. 세계적인 석학조차 자신의 이론을 10년만에 바꾸는 세상이다. 통쾌하고 유쾌하고 역사가 현재가 곧 역사가 되는 세상에 있는 기분이다. 그는 플로리시를 위한 웰빙의 5가지 구성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긍정적인 정서, 몰입, 긍정적인 관계, 삶의 의미,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웰빙의 상태에 있으며 곧 플로리시 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 정서, 즉 낙관성이다. 우리는 이것을 개발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강점특성 속에서 살 때 플로리시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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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축복받은 삶을 살고있다 생각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긍정적인 정서, 몰입, 긍정적인 관계, 삶의 의미, 성취하는 삶이 내 지향점과 특별히 달라보이지 않으므로 나는 쉽게 행복을 느끼고, 또 불행한 순간이 주는 나쁜 감정이나 생각을 어렵지 않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두려우나 두려움에 위축되지 말고, 내 앞에 오는 어떤 것들에도 담담할 수 있는 용기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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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펼쳐진 드넓은 평지를 보며 종일 간다. 캘리포니아의 주도 세크라멘토를 출발해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달리기 시작한 드넓은 평지는 샌프란시스코를 지나 LA를 향해 내려가는 내내 펼쳐진다. 처음엔 초지로 시작하여 나무라곤 하나 없는, 그런 땅의 목적에 잘 어울리는 풍차가 그득했던 지역을 지났다. 커다랗고 둥근, 뚝 잡아내어 품 속에 숨겨두고 싶은 시뻘건 해가 지평선으로 숨어들고 나서도 이름을 알 수 없는 과수나무들이 그득한 광활한 땅을 달렸다.


열 한시간 버스를 타고서도 지치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으며 잠도 한 잠 자지않는 내 강철 체력과 성성한 정신을 무기삼아 여행하는 열흘이 오늘 같기를 바래본다. 고개만 돌리면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광에 속감탄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그것도 아니면 생각에 골몰하며 노는 사이 버스는 제 갈길을 간다. 끝나지 않아도 좋을 이 순간 속에 있는 지금, 나는 자유롭고 그러므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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