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러시아
정신이 퍼뜩 들었다. 몸을 일으켜 앉아 멍한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제야 내 건너편에 앉은 그녀가 보였다. 둘러보니 일행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맞은편의 그녀도 나처럼 낮잠을 잤던 것일까?
"전부 어디 갔어요?
글쎄요, 아마도 식당칸에 간 것 같은데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낮잠을 잤다. 기차에서 맞은 아침, 자고 일어났을 때 내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어디 한 군데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고, 등짝을 비롯해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무거워 일어나기도 힘이 들었다. 덜커덩거리는 열차 소리에, 오늘은 무거운 가방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이 열차를 적어도 50 시간 이상은 탈 것이었다. 낮잠을 자고 나서도 몸은 눈물이 핑 돌 만큼 아팠다. 그러나 아프다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기에 아픈 것은 그냥 잊는 게 좋을 듯했다. 몸이 퍽퍽해, 누군가가 내 등짝을 쓸어주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런 말을 나눌 사람은 거기 없었다.
생각해보면 스트레스에 피곤이 누적된 상태였고, 휴대폰 없이 하루를 지냈다. 그러나 낯 선 그 모든 순간이 섬세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 내 정신은 무뎌져 있거나 민감함으로부터 떨어지려 무의식적으로 애썼을 것도 같다. 시간을 알고 싶었다. 열차의 시간은 모스크바 시간을 가리킨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지만, 쉴 새없이 며칠을 달릴 열차에서 나는 어디? 지금 몇 시를 알 방법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했던 나의 지니는 액정이 망가진 채 배낭 깊이 던져진 채 였으으로. 승무원에게 묻고 싶었으나 그것도 러시아 말을 할 수 있어야 가능했다. 답답한 것들은 많지만 해결은 더딜 일들이 산적해 감에 따라, 나의 것들을 무력화시키는 이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자못 궁금했다.
말이 없던 그녀는 "식당칸에 가보려고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로써 나는 오롯이 혼자 남게 되었다. 이대로 얼마를 기다리면 사람들이 돌아올지, 나마저도 식당칸을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또는 잠에서 깨어나 일행이 기다리는 곳에 내가 등장하기를 기다릴 것인지 대표로 짐이라도 지켜야 할지 그것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다. 그녀가 당도한 식당 칸으로부터 먼저 간 누군가가 나와 교대하러 올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나 역시 식당칸에 가리라는 그 어떤 의사도 피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몸만큼이나 피곤했던 마음은 창밖으로 펼쳐지던 아름다운 노을에 가려 빛을 잃었다.
사실 잠을 자는 것이나 모두 자리를 비우는 것이나 여덟 명이 겪게 될 결과는 다를 바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있긴 했다. 우리 중 나 혼자 남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고 그런 상황에선 나마저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 누가 그러라고 등 떠민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온 나는 그 정도였다. 다소 촌스럽고 바보 같고 소심하기도 하고, 아니 어쩌면 진짜 쓸데없는 짓이긴 했어도 그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여겼을지 모르겠다.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을 두고 사라질 사람들이 아니란 것쯤이야 알았겠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혹시...라는 문 하나가 열려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건지도...
정신이 들자 천천히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이 사라지자 비로소 일행 너머에 있던 사람들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낯선 언어로 서로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붉은 노을이 하늘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주 앉게 하며 미소로 이야기 건네게 한다. 말없이 노을을 지켜보던 나는 노을의 붉은 힘에 이끌려 어린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젊은 그녀에게 이야기를 건네자, 그녀 옆에 있던 그 남자도 자세를 고쳐 우리를 향해 다가앉았다.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과 집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남자 역시 가족과 하는 일 그리고 부산에서 일했던 날과 바이칼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었다. 또 그가 읽던 책이 허클베리핀의 모험이라는 것과 기차역에서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샀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린 서로가 가지고 있던 작은 것들을 나누었고, 또 연락처를 나누고 사진을 남겼다.
우리 서로 연락하자는 웃음을 흘렸지만 이제 막 나이가 든다고 느끼는 내가 과연 그들에게 먼저 연락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예전과 달라진 나의 이런 태도는 이미 알아챘지만 함부로 발설하진 않았다. 여행이 끝난 뒤의 일을 알 수는 없었고 어찌해야 한다는 마음 또한 갖고 싶지 않았다. 불현듯, 여행길에 만났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영국 극장에서 만났던 그녀가 생각났고 지금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 그 넘도 생각났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을 때 내 옆의 그녀는 포르투갈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포르투갈로 돌아갔다는 연락을 해왔다. 방콕에서 만났던 그 넘은 왠지 잘 통했다. 말은 다르고 문화는 다르지만 사람이 사는 것이나 가족관계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인연이었다. 그때 함께 했던 중국인 부부도 떠올랐고 라오스에서 만났던 착했던 한국 학생들과 파리의 조선족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일상을 여행처럼 살자 다짐했었다. 한동안 여행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은 처지를 이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었던 거다. 어제 금요일, 학교에서 돌아와 무거운 가방을 던지고 편한 옷으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향해 오른팔을 들었다. 그건 일종의 "열려라 참깨~ !" 같은 세리머니. 우습겠지만 텔레비전을 즐기지 않는 처지에 한 시간 되는 거리를 부리나케 달려온 이유는 하나, 오늘은 청춘들이 아프리카로 떠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딱 한 달 전 오늘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속에 있었다. 규칙적으로 들리던 철커덩 소리와 창밖의 광활한 벌판, 그리고 정차역마다 내려 기다란 막대기로 얼어붙은 열차 밑퉁을 쾅쾅 두드려 깨던 승무원들이 떠오른다. 잠시라도 열차가 멈추면 실내를 탈출해 어서어서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덜덜 떨기 일쑤였지만, 정차역에서 맛보는 짜릿한 해방감에 우린 환호했었다. 열차 안은 25도 이상, 밖은 영하 30도 이하를 찍었다. 그렇게 여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여름으로 점프하던 그 시간들, 맨발에 부츠와 외투를 걸치고 뛰어내린 몇 분이었지만 그 알싸하고 상쾌하고 청량했던 순간은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립고 눈을 감으면 그 속에 있고 싶다. 두런두런 옆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낯 선 이들과 웃음을 나누고, 누룽지 한 사발에 배불러 할 줄 알고, 고급스러운 커피 맛을 알아가던 그 시간. 이런 기억들이 저 편에서 소환될 때마다 나는 그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언제 그 시간 속에 다시 있게 될지 알 수 없어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내, 나는 그럼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 무엇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미묘한 생각에 따른 이 화학작용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제한된 공간에 만족할 줄 알았던 그때, 비록 원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휴대폰도 음악도 사라진 세상엔 본디부터 있어왔던 것들이 걸어들어왔다. 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고, 여럿 속에 놓인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여행길에 올랐으며, 이 여행 끝에 이르러야 할 상태를 떠올렸다. 그럼으로써 늘 혼자 여행을 떠났던 그런 나는,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보다 더 멀리 있는 듯했고, 때론 나에게 오지 못하고 배회하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에서 청춘들이 푸껫에서 납치되어 아프리카로 향해갈 때쯤 내 휴대폰에 흰색 말 주머니 하나가 떴다. WhatsApp으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여행 중에 만난, 일을 하며 세계여행을 하는, 가끔 인사하며 지내는 친구인가 싶었는데 확인해보니 아니다. 세상에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났던 옆 칸의 사람, 그가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일상이 여행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의 여행은 다른 여행으로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