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러시아
* 아래의 사진들은 여행을 함께 했던 일행들이 촬영한 사진임을 밝힙니다.
새벽 여섯 시, 이르쿠츠크 역에 내려 대기 중이던 택시를 타고 포트 바이칼로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할 때만 해도 추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택시가 선착장 근처 버스 승강장에 우리를 내려놓고 사라질 때만 해도 시베리아의 추위에 느닷없이 내팽개쳐진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시간상의 착오가 있었던 것인지 배를 타는 시간과 우리가 내린 시간에 텀이 길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콴이 던진 말로는 승강장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더웠던 기차에서 여러 번 망설이다가 껴입고 온 히트텍 내의와 방한복 덕에 처음엔 그 추위가 그리 견디기 힘들진 않았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작은 가방에서 플리스 쟈켓을 꺼내어 등에 대는 여유도 부렸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동차가 사라지고 불과 십여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동동거리며 어떻게든 추위에 대적해야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견디려는 듯 펭귄들이 추위를 견디는 흉내까지 내며 웃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간파했는지 콴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사이 사람들은 이 추위를 대체 어떻게 견뎌야 할지 끙끙댔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이상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새벽 승강장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온 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한기는 아리다 못해 아팠다. 온갖 방한용품에 둘러싸인 몸뚱이는 그래도 어찌 해본다지만 문제는 발이었다. 시려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니 느낌이야 견딘다 해도 문제는 동상이라도 걸리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몇 년 전 겨울여행 때 시려도 참고 셔터를 눌렀던 손가락이 지금도 무감각해지는 것으로 봐서 추위를 가벼이 여길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 발은 한국에서도 늘 차가웠고 시려서 동상에 걸릴 위험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약 몇 십분 동안 서 있었을 뿐이었는데도 발이 시려 힘들었다. 사실 이때뿐 아니라 내 발은 여행 내내 온갖 방책을 강구하게 했다. 품질 괜찮은 방한화에 히트 폼까지 장착한 신발 위에서도 발은 시렸다.
운 좋게 추위를 피했던 바이칼 박물관을 나서서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쇄빙선을 앞세운 배 선실에 올라 포트 바이칼을 향했던 동안에도 내 발은 떨어져 나갈 듯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하면 동상으로부터 보호할지 그 생각에만 골몰했고, 그러느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여행 중반 알혼섬이라는 곳에 이르러 세르게이라는 주인장의 숙소에 머무를 때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일행 중 몸이 아픈 이가 있고, 그이가 챙겨 온 옷들이 이 추위를 견디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포트 바이칼에서의 며칠이 지나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날에도 우린 얼음 위에서 한 시간 여를 기다렸기 때문에, 그이가 그래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쉽게 함부로 견뎌낼 수 있는 추위가 아니었다. 투병을 하면서도 겨울 바이칼 여행에 나선 것도 상상 이상이었지만 그 몸과 그 옷으로 그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웠다.
그 후 그를 볼 때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란 어디쯤이며, 어떤 것들이 우리를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으로 이끄는지 궁금했다. 어떤 힘이 등 떠밀어 겨울 시베리아에 뛰어들게 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자기 앞의 험한 짐을 지도록 하는가. 그의 내재된 무엇이 대적하기엔 형편없는 바지로 추위를 맞서게 했고 터질듯한 두통을 동반하는 추위 앞에서 대범한 척 만드는가. 또 있다. 그 이뿐만 아니었다. 새벽 쇄빙선이 얼음을 깨고 선착장에 들어서는 순간, 추위가 거의 절정에 다다른 순간에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 참 사람들이란 대단하고도 믿기지 않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 때였다.
우리가 아프면 몸을 돌보며 섭생을 게을리하지 않고 충분히 잘 돌보아야 한다고 한다. 의사의 지시대로 휴식하며 에너지를 비축하고 좋은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여행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린 그 이의 몸을 걱정했다. 여행 중 건강이 악화될 수 있었고 갑작스러운 고통 앞에서 대책을 강구하기엔 우리가 한국으로부터 너무 멀리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처럼 다른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의 선택 하에 여행을 떠나고 추위를 덤덤히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그 이의 인내가 어떻게 가능했었는지 모르겠다. 영하 40도의 추위는 상상하는 것보다 힘들다. 이제껏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강도였기 때문에 몸이 아픈 그가 느꼈을 추위는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조차 힘들다. 방한복과 갖가지 방한용품에 둘러싸인 나는 그 이의 열흘 앞에서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열흘 동안 얼마나 추웠을 것이며 그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다행히 그 이는 무사히,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표면적인 악화 없이,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픽업 나온 언니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안녕을 나누고 그리움을 표현한다.
그이나 사람들을 보면 강인함이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하며, 그 정신에서 우러나는 힘이란 것이 종당에는 자유의지의 발로라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강인하다는 것은 딱딱하고 부러지기 쉬움을 말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내는 힘을 이른다.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행위이며, 그 과정이 비록 험난하더라도 견뎌내는 모습을 말한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자신이 믿는 바를 향해 걸어나갈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강한 것은 오직 자기의 생각만으로 무장해 자신 이외의 것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함부로 부러지지 않는다. 물처럼, 담기는 그릇에 따라 처하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자신을 변형시킬 줄 알고, 필요한 곳에서는 자신을 열어 보이고, 쓰이기도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따스하고 즐거웠던 시간 뒤에 찾아왔던 그 느닷없는 날이 기억났다. 그 새벽이 얼마나 추웠던지 우리는 지금도 웃으며 말한다. 말할 수 없이 추웠던 그 새벽을 회상해 보면 용케 견딘 내가 대견스럽고 그것을 견딘 힘으로 요즘을 사는 것도 같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추위를 겪어낸 일이 자신감을 선물한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오직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추위를 견뎌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이 근사한 경험은 온 몸에 새겨진 듯하다. 물론 그 일 하나가 시름시름하던 나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해도 분명 우리에게 먹인 그 한 방은 효과가 컸다.
우린 쇄빙선을 앞세우고 나타난 배를 타고 포트 바이칼을 향했다. 선실 좁은 틈에 끼어 앉아 만약 갑판 위에서 20여분을 간다면 우린 어떨까란 농담을 하며 웃음도 울음도 아닌 소리로 말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배는 오래지 않아 포트 바이칼 항구에 도착했고, 우리를 마중 나온 차는 깊은 눈에 덮인 숙소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숙소 주변은 설경으로 근사했고 꿈에 그리던 자작나무 숲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처음 보는 정경이었고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포트 바이칼에 우리가 당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