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OME NIGHTS

나의 여행

가마르조바, 조지아

by 알버트




오늘은 문을 열고 나와 베란다 문을 닫았다. 어제 아침의 급격한 기온 변화는 자연힘을 실감하도록 했다. 밤낮으로 숨 막히위가 거짓처럼 사라진 아침, 이렇게 여름이 막을 내리는구나 싶었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눈을 감으면 온통 초록으로 펼쳐지던 벌판과 가지각색 감탄스럽던 야생화들이 덮쳐오고, 장소마다 꼭 꼭 박힌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밤마다, 그늘에 들어설 때마다, 등을 훑고 도망치던 그 시원하고 상쾌하던 바람이 뒤따라 온다.




조지아는 그루지야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떠나 시그나기를 향해 갈 때였던가. 할아버지는 마차에 목초를 가득 싣고 나귀를 몰고 가셨다. 차에서 내려, 오던 길을 되돌아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건네고 한 참을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친절하시고 잘 웃으셨다. 이방인에게 어찌 그토록 무장해제된 모습을 보이실 수가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닮고 싶다. 헤어질 때 급히 가방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나귀와 함께 천천히 가시면서 드시라고 건네드렸다.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들, 치즈와 와인 같은 그 훌륭한 먹을거리들을 생각해볼 때 내가 건넨 초콜릿 하나는, 비록 여행 중 내게 유용한 것들이고 아끼던 것들이라 하여도 건네는 손을 부끄럽게 했다. 아름다운 자연에 녹아드는 사람들 앞에선 내가 속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내 마음을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오래 기억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남의 시간이 좋은 기억의 시간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한 여름에 웬 털양말?"

"그러게, 누가 사 저걸?"

"뜨개질을 생업으로 하시는 할머니가 여름이라 해서 생산을 중단할 수는 없으시겠지?"

농담삼아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린 결국 할머니 앞에 앉아 손짓 발짓해가며 양모로 만든 양말, 신발 같은 것들을 샀다. 그리고 아주 오래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 눈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시그나기에는 길 가 여기저기에서 양모로 만든 수제품을 팔았다. 한 낮 뜨거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아름다운 스카프는 춤을 추듯 너울거렸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색깔로 관심을 끄는 것들을 향해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해서 사 온 크리스마스 오너먼트가 두 개다. 예쁜 녀석의 미소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사 버린 털실로 만든 공들, 멋지긴 했지만 내 작은 가방 속에서 이 것들은 부피가 컸다. 트리를 만들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산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 즈음 걔들을 보게 되면, 시그나기 그 시장터가 생각나겠지.




그래미 성당에 올랐을 때 건물들 사이로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성당 한편에서 녀석은 기념품을 팔았다. 고사리처럼 작고 예쁜 손과 사랑스런 웃음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작은 돌로 만든 기념품과 마그네틱을 사면서 웃음을 주고받지 않았다면, 녀석이 오래 기억날 리가 없다.


길 가에는 우리 눈에도 익숙한 수박과 길쭉한 감자 그리고 옥수수 같은 것들이 있었고, 아저씨는 먹음직스러운 듸냐를 팔고 있었다. 잘 익은 멜론의 맛이 나는 듸냐는 곳곳에서 유혹했다. 다만 잘 익은 멜론과 그렇지 않은 멜론이 있듯이, 듸냐 역시 그러했다.





트빌리시의 한 시장, 조지아식 간식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물론 시그나기에서 하나를 씹어보았을 때 입맛에 맞지 않아 트빌리시 시장에서는 굳이 사지 않았지만, 이 곳 사람들의 입맛에는 잘 맞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아저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계실지 궁금하다. 친절하셨는데, 잘 웃지 않으셨다.





카즈베기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주타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sno라는 마을에 내렸다. 이 고장의 이름을 딴 sno라는 생수는 어느 곳에나 있었다. 물이 풍부하고 맛있는 지역이 분명했다. 길을 가다 아주머니 한 분을 태워드렸는데, 그녀가 향하는 곳이 여기였다.


마을 초입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소, 고양이들이 제 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산들을 배경으로 다리 한편에 올망졸망 앉으신 할아버지들, 저렇게 모이셔서 무슨 말씀들을 나누실까?


" 저, 지나가는 애, 외국인이지?"

"그런 것 같지?"

"몇 살이나 된 거 같아?"

"글쎄, 서른은 됐나?"

"어디서 온 애야?"

"중국에서 왔겠지."

"쟤는 털이 하나도 없네?"

"그러게, 희한하네."

"동양애여, 동양 사람이 저렇게 생겼더라고."


뭐, 이런 이야기들? ^^

할아버지들, 알고 보면 남자인 그들도 여자들처럼 모여 이런저런 남자식 수다를 떨었을지도 모르겠다.







오~ 드디어....... 주타에 도착했다. 좁게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를 때 길 옆으로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했다. 소똥과 말똥을 피해가며 언덕 중턱에 다다랗을 때 거기 할머니가 계셨다.


만약 언젠가, 내가 조지아를 다시 가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순전히 주타를 찾아가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전부터 만나길 기다려왔던 사람들 같은 이끌림을 가지신 분.


할머니는 깔끔하게 지은 집에 우릴 들이시고, 무슨 차가 입에 맞을지 마음 쓰여하시며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마침 할머니 댁에 놀러와 있던 예쁜 여자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의 손녀는 이방인들에게 부끄러워하면서도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했다. 깨끗한 공간에 계시는 할머니와 식구들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다음은 부엌을 수리할 차례라고 하셨다. 갖가지 자재로 어지럽게 널린 부엌이 식구들에겐 즐거운 기다림을 선물하리라.






할머니 댁을 떠나, 정상 쪽으로 길을 잡았다. 뜨거운 날을 핑계 삼아, 언덕을 오르다가 돌아 내려왔다. 내가 오르지 않은 길에는 들꽃이 만발한 넓고 아름다운 언덕과 계곡 그리고 멋진 산이 기다렸을 것이다. 걸을수록 호흡이 가빠져, 그렇지 않아도 회복 중인 몸에 무리가 갈까 염려하며 돌아섰다.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우린 많은 것에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주타 캠프 초입, 파라솔이 놓인 휴게소에 자리를 잡았다. 땀이 비 오듯 했지만 그늘 밑에는 다행히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시원했다. 들고있던 가방을 올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내 옆에는 상냥한 그녀들이 불쑥 등장한 나를 지켜보다 눈인사를 건넸다. 멋진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 네 팔찌, 정말 예쁘다."

"어, 그래? 정말 고마워. 여기 조지아에 와서 산거야."

"정말?"

"응"

"봐, 정말 예쁘지 않아?"

"그래 그렇네, 비싸 보여."

옆에 있던 그녀도 거들었다.


물과 초콜릿을 사들고 그늘로 다시 돌아와, 그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여름 동안 이 캠프에서 일한다고 했다.


"너 사진 찍어도 될까?"

"어, 그럼. 왜 안 되겠어?"

"좋아, 고마워~"


여러 장의 독사진을 찍어 예의상 화면을 보여주었더니,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 긴장하거나 무뚝뚝한 표정 대신 그녀는 잘 웃고,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러웠다. 내가 찍고도 내가 좋아할 만한 사진들이 많았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갖고 싶어 했다. 파라솔 밑에서, 둘은 페이스북부터 인스타그램까지 총동원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말썽 많던 내 휴대폰은 그때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 GPS 고장으로 길을 잃고 헤맨 후 미련없이 바꿨는데, 카즈베기 깊은 산속 주타라는 마을에서 내 휴대폰은 쓸모가 없었다. 할 수없이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담긴 모든 사진을 이메일 전송했다.









보르조미로 가는 길, 나는 콴이 이 분들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행을 오래 다니지 않은 나는 아직 어느 나라에 가도 찾아갈만한 나의 사람들이 없다. 친인척이 살고 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그곳을 여러 번 방문한 적 역시 없기 때문일까. 콴은 여행자이니 아마도 가는 곳마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노부부는 콴과 함께 방문한 사람들을 기꺼이 반겼다. 마치 아들을 맞이하는 듯한 이 분들을 보면서, 여행의 의미가 내게 다르게 새겨졌다.


사실 내 맘 속에도 그리운 사람들은 있다. 다시 한번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이 향하는 곳은 델리 역이고 또 조드푸르라는 인도의 도시이다. 두어 해 전, 인도여행에서 돌아와, 내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이 너무 그리웠고, 난생처음 안타까움이란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되었다. 델리 역 계단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이었고, 조드푸르 골목길을 탐방하다 인사 나눈 사람들이었으니, 내가 그들의 이름을 알리 만무했다. 지금도 가끔 눈을 감고 그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왠지 나의 감성과 그다지 동떨어지지 않다 여겨졌던 사람들의 눈웃음이 생각나면 나는 사무치게 그들이 그립다. 누구인지 어디 사는 누군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때때로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건강한 몸을 이끌고 온 그들과는 달리, 이 번 여행을 떠날 때 나는 과연 내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여겼었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다니던 병원 담당의사 두 분에게 2주간의 여행에 대해 각각 문의했을 때, 반가운 소리라고, 아무런 상관없으니 개의치 말고 즐겁게 다녀오라고 했다. 두 의사의 공통된 말에 용기를 내어 잡혀있던 여행을 취소하지 않고 떠나 온 참이었다. 그리고 약 2주 동안의 여행.


작은 피해라도 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고 그들 또한 최대한 배려해 준 여행이라 믿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쉬운 여행은 아니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표현하기 일쑤였고, 작은 외부 온도와 심적 상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체를 보면서, 몸 상태를 알게 되었다. 내 몸이 그 정도인 걸 알게 된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당혹스럽기도 했고 염려스럽기도 했지만,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할 때와 나 아닌 다른 이와 여행할 때의 여행은 확연히 다르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비교할 수 없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겪게 되는 상황 역시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경우 가지는 확실하다. 어떤 방식으로 떠났든, 여행은 우리에게 조금 멀리 떨어져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사실이다. 사람들 속에서의 자신의 행동과 태도 그리고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 생활 전반에 스며있는 자신의 독특한 기호와 선택의 방식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니 어떤 방식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상황과 여건에 맞추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취하면 될 일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약 한 달여가 되어간다. 꿈처럼 보냈던 시간은 이제 기억 속에선 아득하고, 때때로 들춰보는 사진 속에선 나의 여행 그 순간들이 도장 찍힌 엽서처럼 선명하다. 의미로 남은 순간들엔 풍광과 함께 사람들이 점점이 남겨져있다. 나의 여행은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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