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OME NIGHTS

그들이 간직한 이야기

HELLO, UK

by 알버트





P1016203.JPG?type=w1




P1016217.JPG?type=w1




P1016218.JPG?type=w1



P1016225.JPG?type=w1



P1016226.JPG?type=w1



P1016227.JPG?type=w1



P1016229.JPG?type=w1



P1016231.JPG?type=w1



P1016232.JPG?type=w1



P1016233.JPG?type=w1



P1016239.JPG?type=w1



P1016257.JPG?type=w1



P1016259.JPG?type=w1



P1016263.JPG?type=w1




P1016270.JPG?type=w1




1415163535217.jpeg?type=w1




1415163545626.jpeg?type=w1




문을 젖히고 들어서니 따뜻했다. 누군가 나와 같이 흠뻑 젖어 추위에 떨며 영국박물관 속으로 뛰어들었다면 ‘어, 좋은데?’ 하는 마음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으스스한 바깥과 달리 박물관 내부는 안온한 조명과 포근하면서도 웅장함이 어우러져 묘한 흥분감을 자아내었다. 내셔널 갤러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평면적인 회화 위주의 내셔널 갤러리와는 달리 입체적인 조각 작품들이 사람들을 반기고,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자유스러워 보이는 분위기가 편안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어 있고, 박물관의 공간 구성 역시 입체적이다.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나와 어느 정도 맞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영국 박물관은 좀 더 사람과 가깝고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아니 현대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심이 곳곳에 묻어나는 듯했다. 아니면 내가 좀 더 상업적인 환경에 익숙했던 탓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박물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누군가는 훔쳐온 예술품들이란 이름으로 불렀지만, 나로선 많은 것들이 여기 있는 덕택에 내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예술 방면에는 문외한인 데다 아무런 흥미가 없었던 나였지만,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개별 작품 그 하나하나가 간직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과거를 추측하고, 또 그 시간을 거슬러 나의 마음에 이르는 보이지 않는 대화에 귀 기울이는 즐거움은 컸다. 새로운 발견이었고 흥분되는 대화법이자 여행법 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 그 박물관에서의 시간이 지금껏 마음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런던 이후, 가는 도시마다 박물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지루해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유럽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좋은 선물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잇는 통로로 무심히 걸어 들어가, 현재의 내가 과거의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거창한 어떤 것들을 알아내거나 유식함을 뽐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마도 나는 과거의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내 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각색하기 십상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좋았다.


박물관에서 많은 관광객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공간은 미라 전시관인 듯했다. 식당을 제외하곤 유독 그곳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아니 그곳에만 사람들이 몰린 게 아니라면, 그곳에 이른 자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미라 전시관의 분위기는 대체로 조용했다. 사람들은 조용하게 걸었고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으며 제 각각 투명한 유리관에 얼굴을 묻거나 그런 다음 고개를 돌리곤 했다. 전시관의 전체 색감은 밝지 않았다. 나무 관, 미라, 감은 천 등을 떠올릴 때 상상이 되듯, 함부로 웃거나 농담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는 흙의 색과 나무의 색 중간쯤에 놓인 관들에 압도당한 증표였을지도 모른다.


곳곳을 채운 죽음과 관계 깊은 물건들, 산 자들은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몸에 피가 돌아 움직일 수 있고 숨 쉴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사라져 껍질로만 누운 죽은 자들의 표정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보게 될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마지막 모습, 사람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단지 그런 일이 없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실은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저마다의 속마음을 갈색으로 변한 죽음의 표식들 앞에서 숨김없이 털어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을 통틀어 가잠 붐볐던 곳, 미라가 누워있던 그곳은 속마음을 모를 그들과 달리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죽음과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었던 것이라 본다.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찍었던 사진들도 몇 장만 남기고 지웠다. 생각해보면 두렵고 무서웠던 것 같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무수한 나날이 힘겹게 여겨지지만,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론 죽음을 향해 걷는다는 것을 미라관 안에선 잊을 방도가 없게 했던 시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이 시간의 소중함에 집착해야 한다는 그 마음을 무색게 만드는 죽음의 색채,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리게 된 그때엔 그들과의 대면에 움찔했으나 그 마음 나눌 이들이 곁에 없음으로 인해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마치 보지 않으면 없었던 사실이 되는 것처럼, 내 눈만 감으면 엄연한 실재가 현실이 아닌 것이라 믿을 때가 있듯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독 오래도록 깊은 인상을 주는 것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장소, 시간, 사람, 음식, 음악, 노을이 지거나 혹은 지는 낙엽을 보았을 때처럼. 3월의 마지막 주, 유럽여행의 시작이었던 런던은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당도했던 판크라스 역에서 매듭 지워졌다. 내가 해리포터였다면, 행복을 통째로 흡입해버리는 무시무시한 디멘터들을 물리칠 강력한 패트로누스가 어쩌면 런던의 기억을 통해 소환되었을지 모른다. 지팡이를 치켜올리며 있는 힘껏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외친다면, 정말 지팡이 끝에서 내 패트로누스가 흘러나오는 건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