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리스본으로
비행기는 착륙했고 안전 표시등이 이미 꺼진 상태. 승객들은 저마다의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하고 서 있었다. 외투를 입고 배낭과 카메라 가방을 든 나도 그 줄에 섰다. 기다리는 동안, 로밍을 했다. orange, 이름도 예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이지 우루루 쏟아져야 할 문자들이 없다. 옆에 선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한 여학생이 말했다.
“아마 데이터를 풀어야 할 거예요”
고마워라, 진짜로 그랬다. 프랑스에 공부 중인지 여행 중인지 물어보았다. 둘은 여행 중이라 했다. 몇 해 전 프랑스에서 만났던 한국 아가씨가 떠올랐다.
착륙 후 통로에 서서 그렇게 오래 기다린 적은 없었다. 환승시간 4시간 30분 중 이미 30분이 지났다. 외부에서 문을 열어줄 직원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한국 사람들로 여겨지는 승객들이 한 마디씩 하는 소리가 웅성거림으로 들려온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무장해제 된 사람들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나는 시간에 대한 압박을 느낀 터였으므로 그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펄떡이며 속도를 높여 걸었다. 샤를 드골 공항은 처음인 데다 낯 선 도시에 내려 불안했다. 내가 예약했다면 분명 시간적인 여유를 길게 두었을텐데, 오늘은 타인의 결정에 따른 날이었다. 그러니 타인에게 양도한 통제권의 속성이 그런 만큼, 맘에 들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했다. 여행 기간만큼 준비 기간도 필요했지만, 나는 준비할 여건이 못되었다. 그랬으므로 어떤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내가 선택한 것과 같은 효력을 지녔다.
느긋하게 마음 먹고 싶었지만 항공사에서 일방적으로 보낸 비행 스케줄 때문에 나는 속이 탔다. 오는 동안 승무원에게 문자를 보여주면서 오를리 공항 가는 길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종이에 써주었는데, 사람들 틈에 서서 짐짓 여유있게 십여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녀는 중요한 정보 몇 개를 알려주었는다.“paris by bus” “ 직행이란 의미의 프랑스어” “그리고 3번 타는 곳”이 그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맙고 친절한 사람들 덕에 내 삶의 한 부분이 채워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알 길이 없겠지만, 그들이 베푼 온정으로 내가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 그들 역시 기쁘지 않을까.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그래서 나도 가능하면 친절해지고 잘 웃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짐 찾는 곳을 향해 빠르게 걷다가 문득 환승 데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최대한 빨리 입국심사대를 지나 짐을 가지고 오를리 공항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가다가 돌아와 환승 데스크에 짐을 내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지않아도 바쁜 때, 가다말고 15분이라니.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했던 이 행동만큼 중요했던 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직관이나 직감, 무의식이 논리적 판단보다 빠를 때가 있다는데, 이 날의 내 경우엔 그랬던 것 같다.
환승 데스크에서 에어 프랑스에서 온 비행기 지연 문자와 내 새로운 비행 스케줄을 보여주었더니, 문자에 쓰인 비행기 편명이 없다고 했다. 아득했다. 인천에서 타고 온 탑승권을 보여 달라고 해서 줬더니 나를 찾아냈다. 놀라워라, 작은 탑승권의 힘. 그녀의 발견에 의하면 ti449가 아니라 TP449였다. 이런 중요한 정보를 실수로 보내다니, 거기다 변경하면서.......
알았다고 말하며 서둘러 떠나려는 나에게 직원은 프린트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지만, 그녀의 친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몸이었으니 여유 있는 제스처와 웃음으로 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이 종이 한 장, 이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몸서리치게 경험했다. 기억도 나지않는 그녀, 정말 고마웠다.
종이를 받아 들고 뛰다시피 간 곳엔 약 10여 개가 훌쩍 넘는 입국심사 대가 있었다. 오를리 공항에서 환승할 거라 했더니 통과해서 나가란다. 1등석 한 곳과, 유럽인들을 위한 한 곳, 그리고 나머지 모든 이들을 위한 한 곳 이렇게 단 세 곳이 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곳에 길게 줄을 섰고, 내 앞으로 약 50여 명, 내 뒤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길게 줄을 서 가늠할 길이 없었고, 갈수록 사람은 늘어났다. ㅣ상황이 이랬음에도 불구하고 입국 게이트가 더 열리거나 심사원이 더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기가 막혔다. 이게 여유인지 무례인지, 한국도 이랬던가 싶었다. 답답했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에어프랑스에서 지연되었다고 연락을 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빠른 그들의 언어를 내가 어떻게 다 알아듣겠는가?
저 속도라면 환승공항까지 가서 체크인 시간 내에 도착하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이미 시간은 약 20분은 넘긴 상태, 내 앞의 사람들이 약 서른 명이니 약 1분씩만 쳐도 삼십 분, 식은땀이 나는 계산이었다. 뒷사람에게 자리를 봐달라고 한 나는 일등석 안내원 한 사람이 보이는 곳까지 사람을 헤치며 가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시선을 피했다.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그런 생각에 잠길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다시 불렀다. 아까의 그 환승 확인표를 보여주었더니 시간 내에 된다고 했다. 오를리까지 가야 한다고 하니, 보스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비행 중에 들은 승무원의 말로는 샤를 드골 공항에서 오를리 공항까지는 공항 리무진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검색해보니 교통상황과 티켓 구매 등을 감안하면 한가롭게 줄을 서서 기다릴 처지가 못 되었다. 더구나 입국심사대를 통과한다 해도 짐을 찾아야 했다. 종이를 들고 보스에게 다녀온 그녀는 나에게 길을 터주며 앞으로 나오라 했다. 맨 앞에 있던 사람까지 다음 비행기가 급하다는 것을 알고 먼저 보내주었다.
입국도장을 받기 위해 줄 앞에 서 있을 때 동양 할아버지 한 번이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왜 쟤만 먼저 보내느냐, 왜 사정을 봐주느냐, 여기 급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직원은 '보스가 보내주라고 했다' 고 말하는 대신 다른 공항으로 환승가는데 시간이 촉박하다고 1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시끌벅적해지는 상황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도장을 받고 짐을 찾으러 뛰어갔다. 심사대가 몇 곳만 더 열려 있어도 그렇게 원성이 자자한 풍경이 연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위로를 하면서, 뒷감당할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달렸다. 가방은 저 혼자 빙빙 돌고 있었다. 들고나가 버스 표지를 보면서 뛰다가 오를리 공항 가는 버스 타는 위치를 물었더니 친절하게 알려줬다. 티켓은 버스에서 구매 가능하다고 했다.
이제 고생 끝인가 싶었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내릴 곳을 확인하고 있을 때, 신사 한 분이 도와줄까 물었다. 표를 보여줬더니 오를리 웨스트에 내리라 했다. 4번째 정류장이었다. 퇴근 시간이라 교통사정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고 했다. 약 한 시간이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 시간 내에만 도착해 준다면 당황할 시간은 줄어들 것이었다.
버스는 밀렸다. 이제 모든 것은 내 손을 떠났다 싶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이랬음에도 비행기를 놓친다면 그 또한 내가 받아들일 일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그 아저씨는 저 앞에 앉아계셨다. 모르는 사람임에도 의지가 되는 이런 일은 여행 중에 때때로 경험한다.
여태 입국심사대에서 기다리다가 이 버스를 놓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를리행 공항버스도 30분 간격으로 있었으니 상상하기도 벅차다. 지쳤던지 자다 깨어 보니 오를리 공항, 버스가 서자마자 오를리 웨스트~라는 기사의 외침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다. 선명한 표지판이 반갑다. 약 한시간 20분 넘게 걸렸다. 짐을 찾아들고 물어물어 체크인을 했다. 시골 순이 같았다. 그때도 쪽지가 힘을 발휘했다.
환승센터에 찾아가 쪽지 한 장을 받은 일과, 나도 모르게 쪽지를 보여주면서 공항 이동을 해야 한다고 입국심사대 직원에게 말했던 순간,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에게 사전에 물어보기로 한 일, 나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것을 겪노라면 때론 나를 이끌고 지켜보는 운명의 여신이 나와 함께 하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녀는 나를 사랑해서 내가 위험이나 역경에서 벗어날 결정적 순간을 시간 사이사이 배치해 놓고 현명하게 내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이고 오로지 나에게서만 나왔다고 하기 에는 내가 너무 멋진 사람처럼 보인다. 알고 보면 자신의 순간적 판단이었을 테지만 그리고 자신을 믿는 마음이 없었다면 부지불식간에 확신에 찬 행동을 하기도, 사람들로부터 친절을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탑승게이트 앞에 앉아 있으니, 새삼 아슬아슬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리스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에 와 보니 한 층 전체가 모두 10이라고 써져있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시간이 지나자 알파벳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게이트 10L 앞에 앉아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이 번 여행이 자주 엉키지만 그때마다 해결을 도와주는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리스본행 비행기를 타면 비로소 하루치의 고생이 끝날 것이었다. 물론, 리스본에 도착해서도 로밍 회사가 잡히지 않아 결국 두어 시간 뒤 한국으로 전화를 했어야 했고, 도착한 호텔에선 예약자 명단에 내가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또한 받았던 메일을 재전송하면서 해결되었다. 정말 버라이어티 한 여정의 시작, 하나가 끝나면 뜻하지 않은 또 하나가 기다리는 다이내믹 한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일 어떤 일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것은 한편 두렵지만, 그 두려움 건너에는 기쁨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는건 얼마나 가슴뛰는 일인가? 리스본 오리엔테 역 앞 티볼리 호텔 한편에 짐을 풀고 누웠다. 약 30시간여 만에 몸을 뉘었다. 온 몸이 으스러질 것 같다. 직립보행만 하다가 몸을 뉘면 이런 느낌이 난다는 것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지 궁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