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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수화기 너머 그대 마음

이 순간을 여행처럼

by 알버트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와 짐 정리를 하며 뻑뻑한 눈을 불편해하고 있을 때 걸려온 전화였다. 포항에서 오셨다던, 웃음과 목소리가 근사하던 분이었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지난번 여우숲에서 만났던 ***입니다.
아, 네 선생님~. 기억하지요. 어쩐 일이세요!
선생님 혹시 오늘 생신이세요? **에 생신이라고 떠서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전화드렸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알 길 없으나, 어디선가 내 생일이라고 떴던 모양이다. 그리고 사실, 그때까지 내 생일이 언제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은 수첩을 보아 기억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았고, 아마도 한 주 미리 전화를 주신 게 아닌가 싶다.

한 번 인사 나눈 이가 그토록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오다니. 일요일 오후에, 놀랍고도 행복한 일이었다. 그것은 짧은 순간이라도 내 생각을 했다는 것. 비록 축하전화를 하고 싶도록 만든 사람이 나였는지, 혹은 그대의 마음이 그토록 다정다감한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을 일이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따스함이 읽혔다.

오늘 저녁 그대처럼, 내 앞의 그대에게 읽힐 마음을 주저 없이 내보이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수 많은 그대에게 향하는 마음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십 분의 일만 표현하기도 하며, 때때로 마음과 다른 색으로 말하기도 한다. 또 그대와 나와의 거리,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적당한 온기만 전하기도 한다. 그대를 향해 웃으면서도 그 신물 나게 가벼움과 천박스러움, 차가움과 이기심을 내가 감지했노라 말하지 않을 수 있고, 믿는다 하지만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저토록 매력적인 마음으로 인사하니 그 마음 내게 이르더라. 웃음기 어린 그 목소리가 신선했다. 토요일엔 여우숲에 이를 것이다. 다시 그대와 격한 반가움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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