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여행처럼
여행에서 돌아온 지 거의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났겠다. 귀국 다음날 다시 여행길에 나섰던 콴이 한 달여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바이칼 여행팀 여덟이 다시 모였다. 수원 사는 이가 나를 데리러 와 함께 약속 장소로 갔다.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와서 그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것, 식구들을 제외하고는 옆 동 사는 박선생님 아니면 잘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첫인상은 꽤나 깐깐해 보이고 알고 보면 허당이란 말이 내심 좋았으나, 결국 나는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꺼려하는 꽤 경계가 분명하고 깐깐한 사람임이 맞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처음 기차에서 깨어난 날 그 환하고 밝은 얼굴로 "커피 드시겠어요?"라는 친절한 말은, 낯 선 사람들 속에 섞여있다는 외로운 현실이 곧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일주일 전 무턱대고 만났던 그를 보니 반갑다. 그 날 갑자기 내린 눈으로 축제 같은 하루를 보낸 뒤에 다시 만난 터였다. 그는 오늘 여행 후 전원이 모이는 이 모임을 위해 살뜰히 준비했다. 아마도 몇 사람이 의견을 교환하며 그 즐거운 일을 도모한 듯 보였다. 그러한 과정이 모두 인생이란 여행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실로 성의 있는 일인 것이고, 마음뿐 아니라 아침 굶어가며 들이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결과가 생성되는 일이기에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짐을 몇 봉지 싣고 나를 태우러 왔다. 씽씽 달리면 약 4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두어 시간 못 미쳐 달린 것 같다. 난데없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는 것을 보며, 만날 때마다 눈 폭탄 아니면 폭우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다. 열흘 여행의 순간순간 기억들이 저축되고 지난날 나와직업적 맥락이 비슷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고민들이 그 시절의 내 시간들과 오버랩 되면서 공감되는 면이 많았다.그래서 정체되는 시간이었지만 우린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괜찮다고 믿었다.
약속 장소에 내려 선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꽁꽁 얼었던 바이칼의 겨울을 지나 예쁘고 싱싱한 꽃처럼 피어난 사람들이 반겨주었다.시베리아 그 추웠던 곳에서 보던 그들이 아니다. 모두 추워 움츠리고 동동거리며 쌓은 정이라, 그 환한 웃음들을 보자 우리 마음도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듯 했다. 다들 피부는 고와지고 미용실을 다녀온 사람들, 그리고 어둔 외투 대신 사랑스런 색감을 걸친 사람들, 여행자의 옷을 벗고 신사가 되고 샤프한 청년이 된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의 처음 모습을 기억하면서, 시간 속에 우리가 녹아들고 스며든다는 것이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것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듯하다.
함께 하는 경험은 그 나름의 소중한 가치가 있는 법,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 쉽게 이별을 결정하지 못하듯, 시간이 주는 끈끈한 연대라는 것은 우리가 어쩌면 그리워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장소를 예약하고 연신 음식을 만들고 나르던 사람이 있고 사람별로 멋진 선물을 만들어가지고 온 사람들, 멀리 여행에서 돌아오며 사람 수대로 작은 꾸러미를 챙겨온 사람. 여럿이 어울려 잣는 실은 상상할 수 없는 무늬를 그려낸다.
바이칼의 향수가 어린 사진과 영상을 보았다. 그리운 시간들이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점철된 시간의 누적으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은 안다. 여행을 떠날 때 가지고 왔던 마음과 고민 또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었고, 그 여정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했을 것이다. 꿈을 고민하던 사람들은 그 실행을 위한 여정에 서 있을 것이었고, 얼룩덜룩한 마음으로 나선 사람들은 혹독했던 추위가 주던 여행으로부터 일순간 정신이 번쩍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여행을 떠난다 하여 필연적으로 어떤 변화가 수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앞의 생이 그려내는 그 현란하고 다이나믹한 풍경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습득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여행은 확실히 우리에게 선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여행 동안 무엇이 어떠하다는 확실한 느낌이나 감정을 일궈낸 것은 없었다. 바이칼의 추위에서 깨어나기엔 짧은 시간이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여행 동안은 그랬다. 그러나 여행 이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땐, 여행 이전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여행의 잔상을 안고 본 어느날의 영화 한 편으로 두꺼운 얼음이 깨어지듯 내가 깨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느낌이었다. 우리가 결국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며, 내 안의 일도 내 마음에 따라 잠기고 풀리고 한다는 것을 확연하게 경험한 일. 그로부터 이젠 별다른 흔들림이 없다. 이것이 이 번 여행으로부터 받은 의미 있는 선물이었으며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포트바이칼로 향하던 새벽, 선착장에서 맞닥뜨렸던 한 치 양보 없던 추위와 작은 선실 속에서 견디던 순간이 생생하다. 우린 함께 있어도 결국 각자 견뎌야 했고, 그러나 각자 견뎠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시간을 건너 어제 다시 만난 우리는 이제,바이칼의 칼 같던 바람 속에서도 건재한 사람이며, 꽁꽁 언 발로 한 시간을 얼음 위에서 견딜지라도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견딤의 시간은 포트 바이칼의 아름다운 눈과 자작나무 같은 아름다움, 알혼섬에서 맞이한 자기 몫의 자유와 칼바람을 즐길 여유, 그리고 깜깜한 밤을 걸을 때 선물처럼 둥실 떠오르던 달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므로 그런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거뜬히 치러내야 하는 역경이라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인내는 필시 그런 선물들을 숨겨두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하다. 물론 그런 믿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길 일들을 우리가 쟁취한 선물이며 아름다움이라 이름 붙이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필요한 분량의 믿음을 여행을 통해 확보한 셈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 역시 그러하였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얼었던 땅이 녹고 음지에 쌓였던 눈이 녹아 지난겨울의 추위는 이제 내 마음 속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열린 창으로 가지각색의 새소리가 들리고, 마당의 산수유는 노란 눈을 틔우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걸으며 찾아본 땅에는 작년 그 자리에서 어느새 튤립이 뾰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울타리 밖을 거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돌나물의 자리엔 겨우내 준비한 돌나물이 돋고 나만 아는 자리에서 비밀스럽게 자라는 부추들도 흙을 밀치고 올라왔다. 이 겨울이 사라지고 내년 겨울이 닥칠 때쯤이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겠지만, 우리 마음에도 산수유나 돌나물, 튤립과 부추 같은 것들이 자랄지 모른다.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고 한겨울에 이를 때쯤이면 돋아나는 겨울 여행의 기억들. 우리 삶이 그러한 것처럼 한 번 새겨진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살아가게 되고,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예전의 나로부터 성큼성큼 자란 지금의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여행은 그런 마법 같은 요소를 숨겨둔다.
3월, 봄이라 노래하면서 많은 것들이 시작되었지만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다. 여행 처음 만난 ‘어려운 관계’의 그 어려움이 차차 가신 자리엔 이제 ‘함께 한 시간’이 자랄 것이다. 우리 사는 과정이 다 이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