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지난 기억 속에서

by 알버트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학급의 아이들이 소위 문제라 일컫는 행동을 할 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리고 교사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내가 써 본 방법 중 효과적인 하나는‘교사인 내가 이미 다 안다고 단정하지 않고 아이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론 이때 교사의 자세는 어떠한 판단도 중지하고 선입견 없이 아이가 하는 말을 그의 입장에서 듣고자 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학생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따져 묻거나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진심으로 걱정되기 때문에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때에도 교사는 또래 앞이 아니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외적 심적 환경에서 아이와 만나야 한다.


행동이 문제시될 때 교사가 하는 말이‘너는 원래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니까’의 뜻으로 학생에게 비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런 말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상황을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 학급 아이들 앞에서, 어떤 아이가 대단히 큰 잘못을 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의 행동을 평가하기 전에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다행히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없다. 그리고 이때는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 그런 생각을 했구나, 그렇게 볼 수도 있어. 그런데 선생님은 그건 잘못이라기보다는 네가 실수한 것이라고 보고 싶어,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 그런데 그런 실수를 하면 일이 복잡해지기도 해 지금처럼.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여기 와서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중략)“노력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애쓰다가 힘들면 언제든 선생님께 이야기해, 너를 위해 늘 선생님은 여기 있단다. 알았지?”


물론 아이의 말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말에 응답하면서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가 가는 방향은 한결같아야 한다.‘네가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네가 이전보다는 너와 친구들에게 이로운 행동을 할 것을 믿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 혹은 나쁜 아이'와 ‘어쩌다 보니 실수한 아이'는‘같은 행동을 두고 선생님이 내릴 수 있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실수를 하는 녀석’은 다르게 해석하면 ‘잘하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아이' 이거나 ‘잘한다고 했지만 매 번 실패하는 아이’ 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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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방식을 두고, 학생이 실수한 게 아니라 평소에도 나쁜 행동을 자주 하는 데, 어떻게 그걸 실수했다고 하느냐고 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흔한 반문이다. 그러나 “너 나쁜 녀석이야”라고 단정 짓는 것과 “너는 가끔 실수도 하는 녀석이란다 또는 너도 잘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었던 녀석이지”라고 보는 데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음을 알 것이다. 하나는 “이 아이는 늘 나쁘다”라고 하는 것이고, 하나는 “방법을 몰라 실수를 하는 아이”또는 “이 아이는 잘하려는 의도를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문제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늘, 변함없이, 학교에 와서 지내는 매 순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나쁜 행동만을 하지는 않는다. 교실에서 지내는 동안 “잘 못하지 않는 시간”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그런 좋은 모습은 못 보거나 건성으로 넘어간다. 아니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이 실수나 잘못을 할 때만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우리들을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을까?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아이가 가졌던 의도와 하려고 했던 그 과정은 생략한 채, 오로지 결과적인 행동 하나만을 두고 판단하는 것은 아이가 보기에 어떨까? 억울하지 않을까? 이런 태도가 선생님뿐 아니라 부모들에게서도 자주 보던 것이라면 아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서 억울함, 불공평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문제가 아닐 때는 반응 없다가 문제일 때만 반응하면서, 자신에게 문제가 많다고 보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학생에게 “너를 절대 나쁘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아이 자체보다 아이의 행동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마음속으로 아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나 부모라면, 그 마음이 결코 그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교사나 부모를 위해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봄날의 그 선생님은 대화하던 중 내가 그 녀석의 전 학년 담임이었다는 것을 아셨다. 물론 드라마틱하게 알게 되셨다. 선생님은 내가 기록했던 녀석의 자료들을 훑어보시더니 “선생님은 얘를 나랑 완전히 다르게 보았네, 그럼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라고 하시더니 잠자코 말씀이 없었다. 아마도 지금껏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깨닫는 순간이었거나, 같은 대상을 자신과 달리 바라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다행히 둘 사이에 불편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들을 좋아하는 것은, 이런 순간들을 겪으며 어제보다 한결 힘을 뺀 사람들로 변모해 나가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의 하늘길이 묶이고, 각국은 문을 닫고 팬데믹 속에서 살아간다. 꽃 피는 시절에 문을 열어야 할 학교는 꽃 핀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그 자리에 눈이 쌓일 때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오가다가 한 해를 훌쩍 넘겼다. 올해 들어 학교는 또 다른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 내 동료들이 사상 초유의 교육환경 안에서 슬기롭고 지혜롭게 살기를 바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너울너울 춤을 추던 집 앞 벚나무는 얼마 있지 않아 또 환한 꽃등불을 달 것이다. 울긋불긋 단풍의 시절을 지나 빨간 산수유 열매가 달린 가지에 샛노란색 팝콘이 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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