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그때

지난 시간 속에서

by 알버트



일 년이란 기간만큼 녀석이 어려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서 그 아이는 자신이 잘못했을 때 솔직하게 인정했고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어떤 요인이 아이가 그렇게 다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경우 녀석이 잘못을 했더라도 학급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라거나, 잔소리를 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험한 표정을 지으며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아?" "친구한테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같은 말로 위협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은 교실에서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대신,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조심했고, 행동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때는 즉, 아이의 행동이 문제가 될 때는 ‘~야 선생님 좀 잠깐 볼래?’라고 하면서 따로 불러 이야기했다. 그리고 꾸중을 해야 할 경우라도 아이에게 간접 칭찬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녀석은 중요한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늘 핀잔과 비난을 듣는, 억울함이 몸에 밴 사람이 그런 것처럼 평상시에도 불안해하고 고자질하고 변명하는 모습을 때때로 보였었다. 그랬기 때문에 친구와 다툼이 생길 때는 녀석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피고 말을 귀담아듣고 안심시켰다.‘설사 네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내가 너를 이뻐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하는 사명감을 진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그때의 나로서는 이 세상 그 누군가는 네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타인이 보는 앞에서‘네가 잘못했다’는 태도를 보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방어하게 된다. 아이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꼬치꼬치 확인하며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는 시도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이럴 경우 아이는 선생님이 자신을 믿지 않으며, 자신보다 상대 친구를 더 신뢰하고 사랑하고 두둔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이 자신의 말을 들으려는 마음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만약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한다고 생각되거나 아무리 해도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여길 때, 아이는 선생님에 대해 절망감을 느낀 나머지 절규하는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자신을 '잘못된 행동을 하는 나쁜 아이'로 여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교사의 바람과는 상관없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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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날의 일이 생각날 때마다 그 선생님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말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자문한다. 문제나 고초를 겪는 사람에게 아는 척 먼저 다가가는 것이 나로선 쉽지 않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 그러하다. 대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향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일지라도, 그 순간은 진심을 담아 그 사람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때는 내가 아는 척하는 것이 혹시라도 선생님의 일에 간섭하거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보일까 봐, 자존심 상해하면 어쩌나 해서, 괜히 아는 척한다는 구설수에 휘말리기라도 할까 봐 태연한 척했던 것 같다. 어떤 식이든 선생님에게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는 합리화가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을 것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는 그 선생님과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갈등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던 마음이 그렇게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 않았던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어하던 동료에게 적극 다가가지 않았고, 시간을 나누지 않았다는 나의 지난 모습은 변함이 없다. 지나친 배려로 동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망설인 결과 나의 어려움에 타인을 초대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것과 타인과 나누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다르다. 돌이켜보면 나는 전자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면 후자에 가까웠던 사람, 관계에서 오는 작은 불편도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던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젠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다시 학교에 서 있는 시간이 온다면 조금 더 밝게, 나를 열고 불현듯 마주할 민망함에 대해서도 용기 있게 맞서고 싶다. 내 영역 밖의 일이라고 방관하지 말고 힘껏 용기 내어 이웃의 역사와 이야기에 관심을 둘 것이다. 혹시 아는가,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거기 기다리고 있을지.


이른 바람, 새소리, 근래 찾아낸 멋진 기타 음악과 커피에 둘러싸여 하루를 사는 요즘이다. 코로나-19로 유래 없는 시절을 살아가는 친구들과 동료들, 그들의 안부가 걱정되고 궁금하다. 여기 이렇게 조용히 앉아있는 나를 보노라니 낯 선 일상을 살아내는 그들이 새삼 대단하고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