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속에서
친구들 앞에서 아이를 추궁하거나 꾸짖거나 가르치거나 설득하는 교사의 태도는 듣지 않는 약을 처방하고 먹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방식으로 먹이는 약은 아이의 증상을 완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하기 쉽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로부터 핀잔을 듣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때 어떤 마음으로 부모님이나 선생님 앞에 서 있었는지. 자신이 했던 행동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친구들 앞에서 체면이 손상되는 상황을 견디는 일은 아이들에게 있어 힘든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핀잔이나 꾸지람보다는 친구 앞에서 견뎌야 하는 그 시간이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친구들 앞에서 꾸지람을 듣는 일은 아이들에게 생채기를 낸다. 공개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더 그렇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고 자존감이 낮았던 과거의 나 같은 아이들은 내상을 입은 채 애처롭게 견디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의 체면을 깎은 선생님에게 반감을 감춘 채 주먹을 쥐고 치욕스러운 순간을 견딜지도 모른다. 그 일이 때로는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될 수 있으며, 소문은 옆 반으로도 퍼져나가 아이의 위신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혹여 따돌림이라도 당하던 친구라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이 소문이 학부모의 귀에 도달할 경우 다른 국면으로 일이 전개될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의 의도를 곡해하지 않는 사람들과 있을 때 편하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세워두고 가르치려는 선생님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거나 좋아하기란 어렵다. 특히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아이의 경우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건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종종 판단력을 잃고 선생님에게 대드는 아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든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 아이의 방식으로 교사가 하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이다. 아이에 따라서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일의 자초지종을 교사에게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수준의 통제력을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므로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교사가 먼저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을 설명하거나 변명할 때,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교사는 그 점을 감안해서 차분하게, 아이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사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봄날의 그 선생님처럼‘아이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명’하는 태도를 ‘거짓말을 한다’고 해석하기 쉽다. 아이 입장에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설명은 일어난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자 ‘핑계’ 혹은 ‘변명’이 맞다. 그러나 다른 말로는‘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 일 수도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소위‘거짓말’이라는 것을 할 때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우리는 아이의 행동을‘거짓말’로 치부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그 일 혹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하거나 친구들 앞에서‘자신의 입장과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 일 수도 있다. 또 최대한 빨리‘그 상황을 모면하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 둘러대는’것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발생한 그 심각한 일을 일어나지 않은 사건으로‘아이 스스로 믿고 싶은 것’ 일 수도 있다. 그래야 아이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마 그 선생님도 그러셨을 것이다. 아니, 선생님 아닌 부모 혹은 어떤 누구라도 무례하고, 변명하는 아이 앞에서 감정을 통제하며 아이의 행동 그 너머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자기 아이가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자랄까 봐 두려운 나머지, 어떻게든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는 그것을 아이가 인정하고 반성하도록 만들고 싶을지도 모른다.
학급에서 학생이 어떤 일을 만들더라도 교사는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비록 놀람과 걱정으로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더라도 울퉁불퉁한 마음을 잠재우고 아이 행동의 이면을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몰아가지 말고, 깊은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떨어져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얼마나 노력해야 우리가 이런 모습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교사로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하고 다독거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능력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