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속에서
정신없이 수업을 마쳤다. 시간표를 보니 다음은 전담시간, 즐거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아이들한테 콧소리를 냈다.
“얘들아~ 나 없는 동안 재밌게 공부해 알았지~? 한 시간 동안 너희들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해? ”
“그럼 가지 마세요, 선생님~~!”
“에이~ 그럼 영어 선생님이 슬퍼하시지~ 너희들 보고 싶어서 벌써 문 밖에서 기다리시는데, 한 시간 잘해 알았지? 이따 만나자~”
일거리를 끌어안고 나서며 웃고 있던 영어 선생님과 눈인사를 하고 연구실로 향했다. 교실과 복도에 벌통처럼 웅웅 거리던 소음이 잦아들면 비로소 40여 분에 걸친 평화가 찾아온다.
연구실에 가방을 던져놓고 숨을 고르며 봉지 커피 한 잔을 타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꽃등불을 켠 벚꽃이 줄지어 서있다.‘내 키가 조금만 컸어도 밖을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일 년 동안 고정적으로 그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분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무슨 일 있으시냐는 질문에 기다리셨다는 듯 격앙된 목소리로 하소연을 하신다. 들어보니 학급 아이들 몇몇과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과거의 일을 되새기면 그때의 감정을 재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반복되는 아이들의 행동을 설명하다가 선생님은 화가 더 솟구치는 듯했다.
교실에는 교사를 무시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 친구를 괴롭히고 따돌리고 때리면서도 막상 그 친구는 얼마나 괴롭고 비참할지 잘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 대신 자신의 행동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변명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 앞에서 느끼는 교사의 절망과 회의감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좌절감에 그들은 버겁다. 슬프게도 요즘은 이런 아이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아이들이라면 응당 착하고 맑으리라 생각하던 선생님이라면 이런 아이들 앞에서 아득해진다. 아이의 그와 같은 태도는 다양한 이유들로부터 나온 것이라 쳐도 무분별하고 정도가 지나친 데가 있다.
이야기로 돌아와, 선생님의 그 아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말을 듣다 보니 답답해하는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도와드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다른 학급의 일에 잘 관여하지 않았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동료들과 나누고, 자문을 구하고, 좋은 방법을 배우고 대안을 만들어도 좋았을 텐데, 당시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저 내 학급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내 아이들을 챙기기에 바빴다.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자니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교실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발설할 순 없었다. 아이가 선생인 자신을 어떻게든 골탕 먹이려 한다는 생각이 안타까웠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지 망설여졌다. 그저 선생님의 기세에 눌려 작은 목소리로 “애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거예요"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아이에게 고의성이 있다고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의도적으로 선생님을 무시한다면, 그건 아이가 선생님에게 좋은 감정이 없어서이고,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화난 선생님을 진정시키고 위로하면서 이렇게 내 안에서 제 멋대로 날뛰는 생각을 눌렀다. 그 환경에서 일 년을 살아야 할 선생님과 아이의 처지가 딱하고 남은 시간이 걱정스러웠다. 사실, 문제의 그 녀석을 나는 잘 알았다. 한 해 전에는 내 반이었으니까. 내 앞에서의 녀석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별나긴 했어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었다. 불안한 요소가 있었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대는 일이 잦았지만 영리하기도 해서 부드럽게 말을 걸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먼저 말하고 용서를 구했다. 녀석을 지켜보면서 ‘다른 곳에서 상처 입고 살 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고, 꾸중이나 잔소리보다는 기다리면서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려고 했었다. 그 덕택인지 몰라도 녀석은 나를 따랐고,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했다.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할 줄 알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맞다, 그 선생님 말씀대로 녀석은 꽤 영리했다. 담임인 내 눈치를 봐 가며 장난을 쳤고, 옆 친구를 귀찮게 해 놓고도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더 열심히 하는 척하기도 했다. 내가 없을 때는 다르게 행동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녀석은 성장하는 중이며, 내 앞에서와 같은 상황을 더 자주 만들어가는 것이 녀석을 조금 더 안정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간혹 눈에 띄는 녀석의 행동을 보면서 그저 “ 허허, ○○야~” 같은 말로 녀석의 눈을 보며 진정시키곤 했었다. 그런데 약간씩 선을 넘는 녀석의 그 태도를 그 선생님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 여겼다. 선생님을 속이고 반복적으로 거짓말하는, 신뢰할 수 없는 아이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미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은 터라 그랬는지 아이에 대한 반감마저 느껴졌다. 그런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면 그런 아이로 보일 수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 선생님과 녀석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 같았고, 녀석은 학급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과 대치하거나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내 아이이었을 때 했던 행동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일면 상상이 되었다. 동의할 순 없었지만 그 선생님의 눈에 비친 녀석은 정말 나쁜 아이였기 때문에, 답답해하는 그 선생님의 심정 또한 이해가 되었다. 교실마다 녀석처럼 친구를 괴롭혀 놓고도 “무슨 일이니?”하고 물으면, “제가 안 그랬는데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은 적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곁눈질하면서, 선생님 뒤에서 슬그머니 웃으며, 힘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어느 교실에서든 볼 수 있었다. 나의 아이였던 녀석이 혹여라도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믿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벚꽃이 화려했던 봄날 창가에서의 그 시간을 생각하면 긴장되고 한숨이 나온다. 고개를 들고 바람을 기다려 본다. 얼굴을 훑고 달려간 바람의 자리에 듬성듬성 그때의 기억이 자란다. 곧 철쭉꽃으로 화려해질 데크에 앉아 산수유나무를 오가는 물까치들의 왝왝대는 소리를 듣는다. 봄은 초록 잎들이 흔들리는 3월의 나무에 내려앉아 제 날개를 펼친다. 교실이든 복도든 어디서든 녀석을 마주친다면 가만히 끌어안고, 나는 여전히 너를 믿고, 이뻐하고, 사랑한다 말해보리라 다짐했던 속상하고 착잡했던 3월의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