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사는 세상

학교, 그 애증의 공간

by 알버트



두어 해 전 아이 문제로 도움을 요청한 선생님이 계셔서 경기도의 한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에 들어서니 낯설다. 2월 말, 새 근무지로 발령을 받은 뒤 짐 정리를 하러 학교에 들어섰던 때처럼 어색하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밖에서 들여다본 학교는 과거에 비해 좋은 시설과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을 갖추어 간다. 학교에 따라 독특하고 개성 있는 정책을 펼치고, 학생들의 안전과 안녕을 염두에 두는 학교도 늘고 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그리 멀리 온 것 같지 않은 모습도 눈에 띈다.


서툰 대인관계, 다양한 학교 부적응 행동처럼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아이들, 주의 산만하고 과잉행동을 하는 아이들, 분노와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폭력이나 따돌림, 게임중독 및 자살시도처럼 아이들이 보이는 학교 부적응 행동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이슈가 되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친구 간 갈등은 학교폭력 업무담당자를 배정할 정도로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 되었는데, 2019년 교육부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아이 13만여 명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표본조사' 결과에 의하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초등학생 2.1%, 중학생 0.8%, 고교생 0.3%로 초등학교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이 가장 많다. 놀랍고도 걱정스럽다. 학교폭력 피해 유형을 보면 더 슬퍼진다. 언어폭력이 39%로 가장 많고, 집단 따돌림 19.5%, 스토킹 10.6%, 사이버 괴롭힘 8.2%, 신체폭행 7.7% 등이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 가해의 이유가 걱정스럽다. 아이들은 장난 혹은 특별한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33.2%)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말한다. 학교폭력 발생 원인과 관련한 인식 조사에서도 '단순 장난'(29.4%)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19.2%) 학교폭력이 발생한다고 보는 아이가 많다. 이러한 결과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으로는 단순한 장난이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 없이 특정 친구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집단 따돌림, 사이버 괴롭힘 등을 가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자료를 읽다 보면 요즘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 죄의식이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학교폭력 피해 유형도 교묘하고 다양하지만, 피·가해 및 목격 시기가 과거에 비해 초등학교에서 높아진 것이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 속에서 신음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보는 부모들은 어떤 심정일까? 당사자가 되어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학교, 가정, 사회가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들을 방지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텐데 조바심이 난다. 예방 프로그램의 보급과 확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적인 장면들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사회의식이 형성되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그리고 학교에 있지 않은 시간에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는 그들만의 또 다른 세상이 있고 그 속에서 그들은 서로 관계한다. 교사나 부모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행동이 전부가 아니다. 그 네트워크에 선생님과 부모는 없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또래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른들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된다. 긍정적인 일도 일어나고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증명하듯 따돌림, 언어적 폭력 같은 문제도 발생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빈도가 높은 언어폭력, 집단 따돌림, 스토킹, 사이버 괴롭힘은 굳이 학교라는 공간, 교실이라는 장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이 배제된 가운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우리는 학교, 교사가 훌륭히 개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다면 더 할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그러나 그런 행복한 일은 드물게 일어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감, 유능감을 갖기에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존중되고 허용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은 또래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약자를 배려하고, 나와 다른 아이들에 개방적이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부당하는 경험이 축적될 경우, 아이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며, 선택권을 잃은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아동기는 특히 또래를 중심으로 한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기이다. 아동들은 가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점차 또래들과의 관계 맺기가 증가하며, 학교에서의 학습 등을 통해 근면성을 획득하고 사회화되어간다. 아동의 또래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개인적인 요인, 가정 요인, 학교의 요인이 모두 관련된다. 아동이 느끼는 외로움이나 불안 정도는 또래관계에 영향을 미치는데, 자아개념, 자아존중감, 자기 유능감, 자기 통제감 같은 요인이 아동이 느끼는 외로움이나 불안 등과 관련된다고 보고된다. 또 우울, 분노와 같은 부적 정서 또한 개인요인으로써 또래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아동이 학교에서 의기소침하거나 무기력함,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또래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가정 요인은 또래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부모 자녀 관계와 양육태도는 아동의 인지적, 심리적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된다. 특히 어머니와 높은 신뢰감을 형성하고 아버지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학교에서는 또래 및 교사와의 상호작용이 아동들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교사로부터 인정받았다고 지각되는 아동의 경우 다른 친구들로부터 더 많은 선택을 받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고 보고된다. 모든 요인을 통틀어서 어쩌면 가정 요인이 또래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출생으로부터 유년기의 성장과 발달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며, 부모의 양육태도는 아동의 다양한 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또래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동의 심리적 정서적 상태와 학교 요인의 상호작용 방식까지 모두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학교, 학급 친구로부터 괴롭힘이나 따돌림 대신 친구들과의 건전한 경쟁을 배우고, 협동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또래 및 주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들과 어울리고 활발하게 신체를 움직이며, 주변의 모든 곳이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될 수 있을 빛나는 시절을 아이들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신날까? 서로 다투지 않고, 분노심에 사로잡히거나 산만한 행동이 사라진 공간, 그 속에서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롭게 참여하고, 무기력감과 우울감 대신 성취감을 느끼며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성장해 나간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일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요인 중에는 교사의 영향, 교사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보고된다는 것이다. 학생을 사랑하고, 이해해 주고, 격려하며, 신뢰를 보이고, 관심을 주는 것 같은 교사의 정서적 지지와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평가적 지지는 학생들의 또래관계와 관련성이 높고, 이는 교우들 간의 신뢰감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또래 간에 발생하는 일에, 교사의 아동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미친다는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으며, 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너무 이상적이고 감상적이라 치부하더라도 적은 학급 인원, 자연스럽게 한 명 한 명의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교사가 있는 학급을 생각해본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사이좋은 동무로 살아가는 모습, 그런 꿈같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교사가 살아가는 시간을 꿈꾼다.


시간이 되어 약속했던 선생님과 학교 부적응 아동을 위한 지원방법에 관해 면담을 했다. 기다리는 동안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창 밖을 보니 운동장에선 체육 수업이 한창이다. 잠자코 밖을 내다보니 거기 운동복을 입고, 모자와 호루라기를 걸치고 아이들이 내려간 복도를 달려 운동장으로 가던 내가 보인다. 물끄러미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자던 학교 생각이 여기저기에서 부스스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