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그 애증의 공간
학생, 교사,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든다. 교육이 학생과 교사에 의해 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때 학교는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학교는 국가 교육시스템으로서 시대의 변화를 즉각적이고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질책의 대상이 된다. 학교는 학생, 학부모와 관련 있으므로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가진 모든 가정이 학교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을 가진 가정과 관련 있는 주변 역시 자연스럽게 학교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유사 교육기관, 전문가 등을 포함하여 전 국민이 직·간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학교를 주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 교육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각종 매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학교 밖으로 송출되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발생한 일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상황 상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보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학생과 관련한 사건이 불거지기라도 하면 학교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학교에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책임에 소극적이고 감추기에 급급해 보이는 모습이 보도되는 경우가 있다. 학교가 마련한 대책이 사회가 인정할만한 수준의 것에 미치지 못하거나 미봉책으로 그칠 경우 학교를 향한 질책은 더 혹독하게 가해진다. 어떤 일이 발생하고 확대되는 데에는 하나의 원인이 작용한다고 보기 어렵다. 학교에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할 때 사회는 일차적인 책임을 우선 학교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이 발생한 경우, 그 사건의 발생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에도, 사회는 학교를 문제 발생 원인의 주된 배경으로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한 경우, 수사기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교사는 자기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사건의 경위를 작성해야 한다. 같은 학급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을 상대로 담임교사가 그 일을 한다. 학급 아이들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기를 바라는 교사는 만에 하나도 없을 것임에도, 교사는 자기의 아이들끼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법적인 절차를 밟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단 학교폭력사건으로 접수가 되는 경우에는, 사건에 관련된 학생들, 부모들을 상대로 중재를 하는 등, 담임이 이 사건을 종결하거나 교장이 종결하는 사안은 인정되지 않는다. 학교의 중재 과정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학교폭력 발생 시 매뉴얼화된 일련의 문제 해결 과정에 그 어디에서도 교사, 학생, 학부모로서의‘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발생한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억울함을 해소하며, 가해와 피해의 소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합의된 절차를 거치지만, 인간미가 살아있다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삭막하고 무섭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법에 기대어 처리되는 학교폭력 사안은 아이들로부터 죄책감을 가지거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 결정되는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의 죗값을 모두 다 치렀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차치하고라도,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을 학교와 교사에게 먼저 두는 현실은, 학교현장의 무사 안일주의 혹은 사고만 나지 않도록 하는 소극적인 교육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재직하는 동안 학교에서 가끔 들었던 말이 있다.
“아무리 아이들을 잘 가르쳐도 소용없다, 사고가 나면 모든 게 물거품이다”
학급에서 절대로 사고가 나서는 안된다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인데, 아마도 이 말은 지금도 학교에 살아있을 것이다. 사고가 났는데도 나 몰라라 발뺌하는 학교와 교사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학생들의 보호자로서 학교와 교사가 져야 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책임의 범위와 모호성 그리고 과도함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없는지 되짚어 볼 필요는 있다.‘학생 사고가 일어나면 내 책임’이라는 사실 때문에, 교사들의 적극적인 교육활동이 위축되지는 않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학교와 교사에게 문제가 적다고 말할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학교라는 특정 장소에서 빚어지는 일이라 하여, 그 일의 발생에 기여하는 원인이 학교와 교사에게만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과, 학생 뒤의 환경적 요인 또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 아이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 교실에 있지 않더라도 학교가 원인인 문제는 발생할 수 있고, 학교에서 발생된 문제라 하더라도 큰 원인이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그 결과 나아질 것이란 기대도 않을 뿐 아니라 시도조차 포기한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교수-학습 관련 국제비교조사(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TALIS)를 보면 우리나라 교사들은 교직에 대한 사회 일반의 높은 기대와 다른 모습이다. 학교 업무와 가르침의 과정에서 매우 낮은 자기 효능감을 가지고 있으며, 교사로서 매우 저조한 직무만족도를 가지고 있다. 교사들이 아무런 희망이 없는 나날을 학교에서 살아간다는 가정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각성한 개인의 힘, 그리고 이것이 집단 구성원에게 전해졌을 때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열려있는 마음, 들을 줄 아는 귀와 따스한 위로의 말이 가진 위력을 실감하며, 그 힘은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와 닿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 변화의 물결이 학교에도 밀려오면 좋겠다.
학교라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제 역할을 하는 교사들이 존중받고 당연시되는 문화, 그 속에서 내 친구들과 동료들이 살아가면 좋겠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의 등교가 어려워진 시절, 새로운 교수 방식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방역까지 담당하느라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 사건이 없으니 살 것 같다’라는 교사들의 말이 더 이상은 들려오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을 아는 책임 있는 교사로서,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을 그려본다. 자기 앞의 아이들을 사랑과 신뢰로 대하고, 그들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그 과정 속에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교사가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