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앞에서

HOW TO SHIFT

by 알버트

학급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그런 만큼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 또한 각양각색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불안정하고 화를 잘 내는 아이들이 있고, 무기력하게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이런 아이들과 함께 일 년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평범한 하루가 감사하게 여겨질 정도로 다이내믹하고 드라마틱한 날이 전개된다. 쏟고, 깨지고, 다치고, 어떤 날은 다투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더 좋은 선생님이 되려 애쓴다.


교사는 학급의 아이들을 더 잘 알기 위해 그들의 가정환경을 살펴보게 된다. 어떤 가족 안에서 성장하는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성격이며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아이는 집에서 주로 어떻게 생활하며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는지. 그리고 방치되거나 폭력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닌지,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인지 아니면 부모에게 휘둘리며 위축된 상태로 생활하는지도 본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교사의 마음에 그 아이는 특별히 각인된다. 또래나 선생님 앞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그려봄으로써 애틋하고, 어여쁘고, 측은하고, 기특한 마음이 생긴다. 학급 사회의 일원이지만 한 명 한 명 눈여겨보게 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지만 학생을 향한 이런 노력은 일 년 동안 이루어진다. 그리곤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일 노력해도 매일 들끓은 마음에 지고, 다시 시작하고 후회하면서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학생들을 볼 때, 만약 공격적이고 화를 자주 내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에 관심이 없다고 여기며 절망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아이를 대하는 일이 조금 쉬워질지 모른다. 거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향해서는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들을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아이의 인생을 통틀어,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 안에서 배우고 익힌 방식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조금은 수긍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측은한 마음으로 그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마음이라면 녀석에게 자극받지 않고 행동과 그 뒤에 숨은 녀석의 마음을 읽는 것이 조금 더 쉬울 것이다. 아이가 보이는 격렬한 저항과 분노는 절박한 그의 심정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로 낙인찍히거나 또래들로부터 별난 아이로 보이고 싶어 하는 아이, 또래 앞에서 자존심을 바닥에 던지고 싶은 아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이 바닥에 떨어지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게 되었다고 여길 때 아이들은 전 존재를 걸고 저항한다.


학부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키운 장본인이 되어 학교에 온 경우라면 혹시라도 자존심 이 상하거나 체면이 구겨져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도록 부모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자녀의 강점을 관찰한 내용을 먼저 듣려 준다거나, 문제 아닌 행동을 하도록 어떻게 양육했는지 설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다. 굳이 아이가 학급에서 저지르는 문제행동을 교사가 조목조목 발설하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전 학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고, 유치원 교사로부터 문제 제기를 받았으며, 옆집 아주머니의 시시콜콜한 참견으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문제만 지적하는 교사보다는 문제 되지 않는 점을 확장시키는 사람과 연대하고 협조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간혹 자녀를 신경 쓰지 못하는 부모를 만날 경우,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그럴 경우 힘들고 어렵지만 학생을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교사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는 아이들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속에 인장처럼 남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힘내자.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는 매일 한 걸음씩 진전하고 있을 것이라 믿고, 의미 없는 진전은 없다고 믿자. 휘둘리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자. 교사로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역량을 넘어설 때는 전문가의 지원을 요청하고 그에게 의뢰하면 된다. 학생은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는 선생님을 지켜보고 알아본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이의 평생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사가 학생을 위해 노력했다고 해서 그 결과가 올해 학급에서 변화를 가져오리란 단정은 할 수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마음 아프지만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내가 가르쳤던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랬다. 변화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한 시간 후에 또는 하루나 한 달 후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아이의 전 생애에 걸쳐 서서히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기억하는 교사로서의 당신 모습은 일생동안 그를 지키는 위대한 힘이 된다.


요즘 아이들, 요즘 부모들은 예전과 다르다고 말하지 말자. 일단 해 본 후에, 실패해도 반복적으로 시도한 다음 그때 이야기하자. 실패해도 그들이 배반하고 알아주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믿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의 아이를 향해 가슴을 내어 주고 끌어안으며 가는 것이 선생 된 자의 운명이라 생각하자. 어쩌다 알아주면 고맙지만 몰라줘도 괜찮아야 하는 사람, 부모가 주지 못한 어깨 한쪽을 내어주고 언덕으로 남는 이, 너무 뜨겁고 너무 추운 인생에서 가끔 힘을 주는 어른, 어쩌면 선생님의 운명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