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HOW TO SHIFT

by 알버트

우리가 변화를 바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게 가능하지는 않다. 교사가 관점을 바꾸어 긍정적인 눈과 마음으로 학생들을 보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아이들을 관찰하며 잎사귀 뒤에 숨은 열매를 발견하듯 칭찬거리를 찾고, 힘껏 아이를 칭찬한다. 아이는 선생님의 의도가 통하기라도 한 듯 제법 안정되어 교사를 기쁨에 겨워하게 만든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가면 다시 제 자리. 그래서 다시 시작해 본다. 칭찬, 변화, 그리고 다시 원위치. 그러면서 지쳐간다. 이는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자주 겪는 순환 과정이다.


만약 시작과 실패를 되풀이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것을 반복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한두 번의 시도 후에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동의 변화를 바라는 교사는 아동에게서 원하는 모습을 볼 때까지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시도하다가 실패한 경험은 교사들과의 상담 컨설테이션이나 가족상담에서 수시로 보고되는 내용이다. 이들 말의 요지는‘시도해 봤는데, 효과는 그때뿐이고 문제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거나, ‘고치려 노력하지만 애를 써도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만,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형성되고 변화하는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잊은 데서 오는 말이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래서 몇 번 시도하면 원하는 대로 뚝딱 이루어지는가? 매일 운동을 하겠노라 다짐하면, 금연을 결심했다고 해서 바로 성공하고, 다이어트를 마음먹거나 가족에게 상냥하게 대하겠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행동으로 옮기는가? 나는 그게 쉽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두 번 학생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고 웃어준다 해도 교사의 이런 시도를 보기 좋게 날려버리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보면 ‘한두 명도 아닌 아이들을 어떻게 그리 세심하게 관찰하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느냐’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고, 이는 교사의 힘겨운 노력을 중단시키거나 포기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이유가 된다. 학급에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상황은 교사들이 많은 수의 아이를, 지속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힘겹게 만든다. 이럴 때 그럴듯한 속삭임은 교사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슬그머니 저버린 채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도록 만든다. 그러니 교사는‘한두 명도 아닌 아이들을 어떻게 그리 세심하게 관찰하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느냐’ 같은 속삭임이 마음에 파고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학생들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대할 수 있겠느냐는 교사들의 반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 교사가 치러야 할 대가 혹은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아이는 미성숙하기 때문에 어른의 지도 아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교사는 학생들의 일에 개입하고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교사에게는 아이들이 소중하고, 사랑하고,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럴 것이며, 아이들보다 오래 산 사람으로서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럴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좋다고 판단되는 일들을 하도록 시킨다. 교사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학생은 자신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가 사랑하는 방식을 보면서 학생들은‘자신에 대한 간섭이자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음, 존중하지 않음, 신뢰하지 않음’ 같은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인들도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만약 누군가 내가 하는 일마다 못마땅해하며 간섭하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빌미로 자기의 방식을 강요한다면 어떨까? 고유한 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하고, 정리하고, 공부하고, 씻고, 앉고, 먹고, 놀기를 자기식대로 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그런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건대, 나라면 절대 그럴 수 없다. 따르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가 강요가 아니라 제안하는 것이라 해도, 나는 그건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여길 것이며, 만약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는 거리를 둘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선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의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더라도, 학생에게는 이게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성인들이 자신을 버리고 타인이 기대하는 대로, 타인의 조종에 의해 살기 힘든 것처럼,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개인의 독립성과 심리적 물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내면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아이의 개성과 독특성이 표출될 수 있고 자유스러움과 긍정성 같은 힘이 잉태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독립을 일컫는다. 아이들은 현재 물리적으로 어른에게 의존하는 상태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으리라.


교사는 학생의 보호자이다. 교사로 사는 동안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문제행동에 개입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럴 때 아직 교사인 내가 발견하지 못한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조금 느긋해지고 아이의 행동이나 태도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학생의 등 뒤에 서서 아이를 지켜보며 자유롭게 생각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을 열어두기 바란다. 그것이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만약 학생의 변화를 바란다면 한두 번의 시도와 몇 번의 인내로 끝나서는 안 된다. 변화란 그리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긍정적인 변화가 더딜 땐, 출생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형성된 아이의 행동과 태도가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다.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문제나 단점보다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반복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변화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듭 일어나는 힘으로 문제를 밀어내면서 싹트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다.


학생의 행동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면, 긍정적 관점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면, 오랫동안 지속해야 하며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야 한다. 이 과정이 누군가의 눈에는 실패의 연속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해결중심 접근의 관점에서는‘한 번씩 하는 성공의 연속’이자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의 위대한 걸음’이다. 이런 반복된 시도는 변화를 향한 징검다리를 놓고 결국 상대에게 서서히 스며들며 변화를 향한 걸음을 내딛도록 설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