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HIFT
‘저 행동으로 보아하니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도 저 아이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살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교사는 눈 앞에 보이는 학생의 문제행동을 넘어갈 수 없다. 어떻게든 고쳐놔야 한다는 조급함에 집착하기 쉽다. 학생의 미래가 불안하고 두려운 나머지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아이에게 가르치려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그 행동이 당장 달라지지 않으면 장래에 이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할 것처럼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가족상담에서 만난 부모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교사나 부모가 그리는 암울한 미래의 주인공이 된 아이는 교사나 부모에게 설득당하고 설명을 듣고 조언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자신에 대한 교사나 부모의 태도를 보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할까?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게 될까? 궁금하지 않은가? 어른의 간섭은 아이들에게‘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표시’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달라지겠다는 아이의 결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마 네가 변화할 수 있겠어?’라며 믿지 않고, 아이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다짐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똑같겠지 뭐’라며 무시하는 어른은 아이들로서도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나라면 그럴 것이다. 아이를 불신하는 태도는 은연중에 그들의 성장과 발달에 독약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학생들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과는 관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동들이 교사나 부모를 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학생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는 교사의 마음은 부모의 그것과 닮았다. 행동 문제를 가진 아이를 지켜보면서 긍정적으로 변모하기를 기다리는 교사의 마음은 초조하다. 그러나 교사는 문제 행동을 일삼는 아이가 있다면 먼저 그 아이를 믿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 아이가 비록 지금 저런 행동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어떤 계기로도 아이는 바뀔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향한 교사의 그 믿음은 진심이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아이에게 변화할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아이의 과거 행동으로 미래를 단정 짓지 말고, 엄습하는 불안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아이 역시 좋은 사람이 되고 인정받는 존재가 되려 하기 때문에, 내가 도와주면 결국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교사의 이런 믿음은 아이에게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러니 아이를 신뢰하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학생의 변화는 그들의 입장에서 인정할 수 있고, 이해 가능한 상황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신뢰하고 있을 때 나타난다.‘우리 반 아이는 원래 그래요'라든가 ‘그 녀석은 어떤 애야' 하고 단정 짓는 교사의 태도는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악화시킨다. 교사의 이런 행동이나 말은 아이를 믿지 않는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것이다. 만약 교사가 이런 마음으로 학생을 본다면, 그 한 해는 녀석이 끊임없이 빚어내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쁠 것이다.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그러하다면 더 심각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교사보다는 부모의 존재가 더 위력적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어른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헤아리지 못할 때 절망한다.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적어도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의 우주로 존재하는 순간까지는 그렇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있다면, 어제와 같은 태도로 지적하거나 꾸중하거나 설득하거나 타이르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이럴 땐‘녀석 또 시작이다’라는 생각 대신, 차라리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좋다. ‘현재 내 눈 앞에서 아이가 이런 행동을 보이고 있구나’ 하고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차분하게 아이를 도울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학생이 어떤 행동을 할지 가슴 졸이며 바라보는 교사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심정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한 교사에게 한 박자 쉬어가자는 권유, 조금 느려지라는 주문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학생이 일으키는 분란과 회오리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태도는 중요하다. 짧은 순간이지만 감정적인 동요 없이 아이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행동은 자극받아서 화나고 답답한 교사를 누그러뜨린다. 나의 경우‘어쩌면 나에게 부족한 면이 있어서 그 점이 자꾸만 세상과 불협화음을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는데, 이 생각이 아이들의 변화를 기다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교사가 학생의 신뢰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아이가 가졌던 좋은 의도를 짚어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학생이 비록 잘못된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을‘너의 의도치 않은 실수였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또래 앞에서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아이가 교사를 신뢰하고 고마워하도록 만든다. 이런 행동은 부모에게도 해당되고 우리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누구든,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대를 감싸 안기란 쉽지 않은데, 이것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므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대에게 ‘지금은 실수했다고 해도 머지않아 당신은 반드시 잘할 것이다’는 확신을 보인다면 어떨 것 같은가? 만약 나라면 그 상대가 정말 고마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비밀스러운 마음이 생길 것 같다.
학생을 있는 그대로 품으려는 노력은 학급에서 필수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중, 애정이 담긴 이야기와 눈빛 그리고 끊임없이 믿고 기다리는 태도, 이것이 있을 때 내가 아닌 타인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간절하게 바라되 조용히 따스하게 오래 비추어야 상대가 덥혀진다. 아이들은 변한다. 나쁜 영향에도 변하고 좋은 영향에도 반응한다. 그러니 마치 아이들이 지금 같은 문제를 평생 가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 말자. '저렇게 성장해서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 같은, 무의식적 단정도 버려야 한다. '저래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같은 말은 고유한 한 인간을 멋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교사는 특히 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변하지 않으면, 아이는 불신 속에서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런 불신이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동안 교사가 걱정했던 행동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일 년간 한 아이를 만나는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아이와 부모 사이의 중간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본다면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아이의 행동이나 의도를 곡해하지 않고, 행동의 이유에 귀 기울이며,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선생님 곁에는 아이들이 모여든다. 아이의 행동이나 태도를 보며 화내거나 지적하고, 꾸중하고, 설득하거나 타이르는 대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아이를 걱정하며, 도울 방법을 찾을 때 그들은 선생님을 믿고 그 말을 따른다. 그런 모습이 학생들로 하여금 교사를 무한히 신뢰하고 존경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학생을 믿고 기다리며 따스한 교사를 아이들도 인정하고 사랑한다.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