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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버트 Jun 07. 2021

평소보다 삼십 분을 일찍 나섰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도착 시간에 들떠 있다가, 갑작스레 정체되는 고속도로에 아쉬움이 컸다. 

영동고속도로가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고, 번쩍거리는 불빛은 긴장감을 유발했다.

어두운 하늘 저 멀리 달이 붉었다. 

기울다 반 만 남은 달은 어둡고 무겁다. 

우뚝 솟아 찬란한 빛으로 하늘을  찌르는 빌딩 위에 달이 얹혀있다.

 손을 뻗어 따 보면 어떨까.

달이 붉어 눈물이 났다. 

나의 생성 이전부터 거기 있어왔을 달이라니 도대체 믿기지가 않고, 나의 소멸 이후에도 그 자리에 오래 있을 달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찢는다.  

많은 것들이 왔다가 사라져도 여전히 존재할 것들과 나는 이 순간 함께 하는 것. 

달은 그리움을  부른다. 

달을 보며 기어이 누군가를 소환하고, 달 속에 비친 그대의 마음도 그렸다 지운다. 

나는 달을 보며 누가 그리운지 생각해보았다. 


델리 역, 복잡하고 바빴던 계단의 오르내림을 멈추게 했던 사람의 눈빛이 기억났다. 

그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언젠가 다시 만날 일 없을, 우연한 순간에 만났던 사람. 그가 누구였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내 사진 속에서만 나를 바라보는 그도 오늘은 저 무거운 붉은 달을 올려다보았을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료들을 프린트했다. 수십 페이지를 읽고 밑줄을 그었다. 

내일 면담 준비를 마치고 나니 오랜만에 만나는 홀가분함.

시간이 지나면 기어코 먹은 내 마음처럼 그렇게 자유롭기를, 바람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컴컴한 하늘에 낮게 달린 붉은 달과 내가 그 찰나를 공유하는 존재라는 것을 언제쯤 실감하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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