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디아
바라나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태어나고 소멸해갈 것 같은, 은유와 사실의 도시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의 삶 속에 살아 영원으로 남을 것 같은 도시다.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도시이다. 바라나시의 그 무엇이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 나중에 차근차근 적어 볼 기회가 있으리라. 그런, 영혼의 도시라 불리는 바라나시에 저녁이 되었을 때 호텔에 도착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일출을 보러 갠지스 강으로 갔다. 아직 어둠에 싸여 잠든 도시, 깨어날 마음이 없는 바라나시의 이른 새벽 골목길을 이방인들의 눈으로 훑으며 또 낯선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풍경들에 더러 놀라면서 일행을 따라갔다.
새벽의 바라나시, 온통 안개가 뿌옇습니다.
새벽, 바라나시,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기 위해 나섭니다.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러 가는 길에 만난 꽃 파는 여인, 그들이 신과 속삭일 땐 이런 메리골드? 금잔화? 꽃이 꼭 필요합니다. 이 여인은 기품 있고 아름답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새벽,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기 위해 나선 곳, 강을 향해 내려가는 계단에 앉은 그들에게 돈을 던지는 우리는 복을 짓는 중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복을 짓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 그들은 매우 덤덤하고 머리를 조아리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왠지 머리 조아려야 할 것 같은 오묘한 분위기가 나지요?
초겨울 옷이라야 제대로 옷을 입은 듯한 쌀쌀한 날씨, 안개 그득한 새벽 바라나시의 도시 한 가운데 붉은 불빛들이 잠들지 못한 인류를 기다렸던 것처럼, 갠지스로 가는 시내 골목은 온통 붉은 안개에 휩싸여있다. 인도 전통 차 짜이를 파는 집에 들르니 빈 속의 이방인들에게 인도차 한 잔을 건넨다. 따끈하고 약간은 단맛이 감도는 들적지근한 그런 차 짜이, 본래가 단 맛이 나는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터라 짜이는 입에 맞지 않다. 건넨 사람에게 미안하게도 억지로 한 약 먹듯이 마셨다.
현지인들은 짜이를 마시고 짜이를 마신 그릇을 땅에다 던져 깨어버렸고 도시 골목을 거니노라면 이곳저곳에 짜이 그릇 같은 붉은 깨진 컵이 여기저기 뒹굴었다. 우리의 문화와 달리 인도에서는 짜이를 담는 그 컵을 애벌구이 한 흙 같은 상태로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네팔에서도 그 그릇을 썼는데, 그러니까 모두 일회용이었다. 너무 아까워 내가 마신 짜이 그릇 한 개를 가방에 넣어 한국까지 가지고 왔다, 그리고 우리 집 장식장 한 편에 두었다. 그래도 기념이라고 그것을 볼 때마다 붉은 안개에 싸여있던 새벽의 바라나시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안개 낀 갠지스 강가 시바신의 모습을 담은 커다란 형상 앞에 서서 시바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주변을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에워싼다. 갠지스 강가에 나와 앉아 구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적어도 합당한 이유로 구걸을 해야 하고 또 거기에 작은 정성을 서로 나누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 보였다. 누군가 받아 든 동전을 차례로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고 오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동전을 주는 나도 받아 드는 그 누구도 오히려 그 순간 더 신성해진 느낌이 난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동전을 건네면서도 받으면서도 신성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갠지스가 풍기는 아우라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하여튼 묘하고 알 수 없는 해석 불가의 강이다.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기 위해 나선 길, 그들이 저어주는 보트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지만 갠지스는 안개 속에서 깨어날 줄 모릅니다. 상인들은 그들의 보트에 올라 우리들 보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물건들을 팝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걷히는 안개와 함께 보트들이 쑥 출몰합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와 있었던 걸까요?
안개로 갠지스의 일출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가트를 지나 갈 겁니다. 힌두인들은 죽을 때 갠지스에 뿌려지기를 최고로 소망합니다. 다음 생을 위해서겠지요? 그러기 위해 죽을 때가 되어 갠지스에 다다르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합니다. 갠지스 강가 가트에서는 죽어 갠지스에 담기려는 사람들의 시신을 태우는 장작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시신을 태울 충분한 양의 백단향 나무 장작을 살 수 있기를, 또 재가되어 갠지스에 뿌려지기를 소망합니다.
꽃으로 장식된 초를 사서 우리는 보트에 올랐다. 사실 우리가 온 목적은 보팅을 하며 일출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갠지스는 우리에게 네팔 사랑 코트에서 처럼 쉽게 일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소원을 담은 꽃 양초에 불을 붙여 갠지스에 띄우고 갠지스의 모래사장에 내려 웃음 놀이를 하고 모래를 담고... 했다.
갠지스에 꽃 양초를 내릴 때는 제법 이상하였다. 어떤 신성한 장소에 내가 마구잡이로 침범한 것은 아닐까? 같은 그런 류의 알 수 없는 움츠려듬도 느껴지고, 이래도 되는 걸까? 같은 약간은 소심한 마음도 생기고....... 갠지스는 이방인의 것이 아니라 인도인의 것일 텐데, 함부로 손을 담가도 될지 어떨지, 그런 소심한 마음조차 느껴졌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갠지스와 함께하고, 시작과 끝이 갠지스에 닿아있으니, 그들의 삶과 함께 해온 갠지스에 흐름에 낯선 이방인의 편승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갠지스가 좋은 마음으로 허락할지.... 등에 대한 생각도 순간 스쳐갔다. 그러나 잠시, 아주 잠시 있는 그대로의 갠지스에 살포시 앉았다가 떠나는 가벼운 새의 마음으로 지나쳐가리라 생각하며 불 붙인 꽃 양초를 강물에 얹었다.
새벽, 백단향 나무의 불길에 휩싸여 인도인들의 삶을 새털처럼 가볍고 행복하게 마무리하도록 해주는 화장터 가트를 훔쳐보며 갠지스의 오래된 도시 골목길을 구불구불 돌아 돌아 호텔로 돌아왔다. 오래된 시가지 골목길은 온통 인간과 짐승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그것이 그들에겐 지극히 일상적이다. 함께 나누고 함께 살아가고 서로 귀하게 여기며.......
비록 바라나시의 오래된 도시 구석구석을 구경한 대가로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하는 대가를 ^^ 치러야 했지만(밥 먹을 때 지나치며 보고 온 몇몇 장면들은 식욕을 감퇴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함, 물론 사람에 따라 다름 ^^) 이른 새벽, 갠지스는 다소 몽환적이고 잠 덜 깬 색시의 기지개, 또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우리의 거부할 수 없는 삶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오늘도 내일도 영원할 것 같은 모습으로 거기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