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디아
바라나시에서 출발해 종일 차를 달려달려 서쪽으로 간 것 같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만, 워낙 털털거리는 버스라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몇 장씩이라도 사진이 남아있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달리는 버스에서 순간 멈추듯 사진 찍는 신공이 자꾸 늘어가는 것 같다.
가다가 버스가 정차했는데, 아이들과 한 참을 놀았다. 아이들이 사진 찍기를 얼마나 좋아하던지, 사진 찍은 걸 보여주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했는데, 무언가 기념으로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줄 만한 것이 없었다. 평소에 군것질이라도 좋아했다면 과자나 사탕이라도 아이들과 나눠먹을 수 있었겠지만, 차나 커피 이외에 입에 대는 것이 잘 없는 나로서는 정말 이때만큼은 너무너무 후회스러웠다. 좀 알고 올 걸, 뭐라도 좀 가지고 와서 아이들도 주고 나도 나눠먹고 할걸....... 그렇게 환하고 밝고 예쁘게 미소 짓는 아이들 얼굴에 더 웃음이 가득 번질 수 있게 해 줄 수 있었는데. 너무 나만 생각했고 전혀 다른 것들은 생각지 못했고 준비도 너무 하지 않았다는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자신을 구박할 수 있을 만큼 구박하고 싶었다. 나중에라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번 같은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아프게 다짐했다. 뭔가 기념될만한 걸 가져와 나누고 싶었다.
아쉽고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떠났다.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아이들, 이후에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바라나시를 떠나 카주라호를 향해 가다가 길 가에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어찌나 천진하고 밝던지요. 인도를 여행할 때 혹시라도 만날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것들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준비성 없고 생각이 짧았던 내가 아주 제대로 자신을 책망해마지않았던 일이 바로 이 일이었습니다.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창 밖 남루한 풍경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터이다. 그리고 이젠 생각을 다르게 해 본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잣대와 인도인의 잣대는 엄연히 다를 터이므로 나와 같은 방식으로 안타깝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그런 얼얼한 마음, 그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과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해야 할 많은 일들, 그리고 헛된 욕심인지 욕망에 사로잡힌 마음, 그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와 시달림.... 여기 있는 그들보다 조금 깨끗한 옷 입고 깨끗해 보이는 공간에 산다고 과연 행복할 것인가. 그건 당연히 아닌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부유하고 호사스럽게 살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설명되지 않지 않는가?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 가는 길은 멀었다. 저녁때가 되어 카주라호의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도 역시나 차 안에서 한 숨도 자지 않고 머리 속에 뛰어노는 생각과 함께 여행했다. 다른 사람들 보니 참 잘 잔다. 그러나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깨어있는 만큼 인도를 본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러고 보니 서울을 떠난지 6일 차로 접어들었나 보다. 바라나시를 떠나 카주라호를 향해 가는 길,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문득 오늘이 올 해의 마지막이란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한 해를 길에서 마무리하고 또 한 해를 길에서 맞게 되는구나 싶다. 집을 떠나 밖에서 새해를 맞는 일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물론 해돋이 보러 시골 간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호텔에 도착하니 반짝이는 불빛들이 있어 오늘이 그믐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오늘 인도에서는 대부분의 호텔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파티가 이루어지는 날이라, 특별히 요금을 더 내도록 되어있었고 우리 역시 그러한 그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파티를 위해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로비에 들어설 때부터 쿵쾅거리던 음악 소리에 잠자던 리듬감이 부르르 떨듯 일제히 일어나 아우성치는 것 같다. 저런 신나는 댄스 음악을 가까이서 듣지 못한 세월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내려가니 별천지라는 생각을 하고 너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현지인들이 파티에 대거 참석했고, 거기에는 나이 어린 꼬맹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댄스타임에선 우리나라 연예인 못지않게 춤을 추는 아이들도 있고, 차려입은 모습이 보통 아이들은 아닐 터이다.
도대체가 이 것 또한 충격이다. 네팔과 인도를 거쳐 여기 카주라호까지 오면서 보았던 집들, 이이들을 떠올려보니 여기 호텔 플로어에서 춤을 추고 퀴즈를 맞추고 부모님과 함께 친인척과 함께 놀고 있는 아이들이 새삼 너무나 생소하다. 무엇으로 다른 공간의 아이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차이는 단지 부모의 차이밖에 그 무엇이 있을 것인가 싶다. 오두막 같은 집에서 새까만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여기 이 호텔에 벤츠 타고 부모님과 들락거리는 아이들, 두 아이들의 사는 모습이 다른 데 과연 어떤 내가 모를 이유가 있을까? 알고 싶다. 알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수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르는 이유에 대한 상상을 하느라 내 마음은바빠보였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잣대로 판단한다면 인도에서 내가 본 광경은 공평하지 않았다. 불공평해 보여도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러하게 운행된다면, 거기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우주의 원리가 숨어있다고 봐야 했다. 그게 서양 신의 뜻이든 여기저기 도처에 이들과 함께 사는 이들 신들의 뜻이든,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우주만물의 이치 혹은 신들의 뜻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잣대로 통용되는 그 무언가는 뭘까. 그게 뭘까?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나 행복에 대한 민감성 혹은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성의 차이일까.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정도가 된다면 사람이 정신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 비슷하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본 광경은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는 수준에서부터 넘쳐 보이는 수준까지 천양지차였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이를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싶다. 겨우 하나 생각해 낸 것은, 돈이 많다고 하여 행복하고 적다고 불행을 느낄 것인가 정도였다. 궁색한 결론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느낄 기회 정도는 동등하게 주어져있다는 것이었다. 행복을 느낄 기회. 사실 잘 먹고 잘 살아 보여도 행복하지 않다는 이들을 많이 만나온 터라 그런 결론에 다다른 것이었다. 혹은 주관적인 기준 저 너머에 우리 인생의 비밀지도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지만, 무언가 궁핍하고 허술한 내 상상은 내가 명민하지 않다는 것을 표시했다. 적어도 기회 정도는 동등하게 부여받았다는 것, 그것이 긴 시간의 여정을 통해 얻는 내 가난한 맺음말이었다.
흠이라도 찾는 사람 호텔 송년회를 즐기는 아이들을 자세히 바라본다. 그러나 아이들, 그냥 아이들이다. 천진하고 밝고 재밌고 잘 웃고 순하고 착한 그런 아이들이다. 이야기를 건네 보고 함께 놀아보니 그렇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댄스 플로어에 나가서 이런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서도 인도인 가족들과 정말로 땀 뻘뻘 흘리며 신나게 놀았다는 것이고, 아이들은 나를 너무 잘 따랐다는 것이다. 낯 선 인도인 가족들이랑 신나게 춤추고 놀았다. 마지막엔 오늘의 춤꾼으로 뽑혀 와인을 선물 받았고, 아이들과 너무 잘 논다고 아이들이랑 나랑 초콜릿도 받았다. 확실히 정신연령이 초등학교 1~2학년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땀범벅되다시피 해서 새벽 한 시 넘어까지 플로어를 뛰어다니며 꼬맹이들이랑 인도인 가족들과 놀았다. 인도 음악이 참으로 단순하긴 해도 무지막지하게 크게 울려대니 어느새 귀에 리듬이 쏙쏙 박혔다. 전생에 내가 인도인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마지막엔 버~~ 얼건 얼굴로 식구들과 사진도 찍었는데, 팅팅 부은 얼굴로 어디 인도 포털 뉴스 한 편에 문란한 한국인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기사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은근한 걱정도 되었다. 그 짧은 시간에 소심한 걱정이 스쳤다.
한 해를 댄스 플로어에서 마감하고 또 댄스 플로어에서 맞은 잊지 못할 카주라호의 밤이 깊어갔다. 잘 마시지 못하는 럼주를 몇 모금 마셨더니 완전 정신과 전신이 마취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끈질기게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단 말인가. 가야겠다는 정신이 들어 휙하니 자리로 돌아와 사람들과 허깅을 하며 새해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올라갔다. 속이 울렁거리고 혀가 마비되었다. 목구멍도 감각이 없었고 귀에서는 엄청난 소리가 났다. 내가 인도 여행 와서 도대체 뭐하는 게야 싶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잊지 못할 밤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은 난생처음 인 고로. 숙소로 돌아오니 속이 울렁거린다. 조신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마음을 정갈히 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거 새해 첫날부터 뭔 짓을 한 건지.......
참 어울리지 않는, 복잡하나 모순 덩어리의 하루를 보냈다. 자려고 누웠는데, 귀에서 쇳소리가 났다. 말은 안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다. 그래도 누구에게 어디가 어떻다 말할 수가 없다. 못 먹는 술을 먹었고 그렇게 정신없이 뛰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내일 아침엔 제발 멀쩡해지면 좋겠다는 속절없는 바람을 가져본다. 속이 울렁거려 누워있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