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디아
마치 방학 같은 평일의 여유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도서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노트북 앞에 눌러앉아 하루를 머문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지난 여행이 다시금 생각난다. 글을 보니 밤새 숙취에 시달린 내가 아직 거기 호텔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깨워내어야 하나보다.
숙취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내 평생 그렇게 괴로운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하루를 보냈다. 신나게 미친 듯이 논 대가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싶은 게, 누가 뭐라 해도 할 말이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깨어질듯하고 속은 메스껍고 귓속에서는 계속 괴성 같은 기계음이 들렸다. 이 소리는 정말 며칠을 가는 것 같았다. 다시는 주는 대로 술이란 것을 받아마시면 안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술 마신 다음날은 매우 힘든 거란 것을 처음 경험한 날이었다. 얼굴은 팅팅 부어서 그렇지 않아도 살 오른 얼굴이 두 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것 같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미칠 것만 같았지만 찬물에 커피만 살짝 타서 물 삼아 마시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여행지에서 누가 날 보살피겠는가? 내가 나를 보살폈어야 했거늘.
어쨌거나 이글거리는 몸뚱이를 최대한 표시 내지 않으며 나섰다. 아침 식사 후 나선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군/서군의 에로틱 힌두교 사원이었다. 이 곳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인도에서 매력적인 곳 중의 하나로 알려져있는 것 같다. 인도여행 하면 그래도 바라나시와 아그라 그리고 여기 카주라호를 자주 언급하는 것 을 보면 말이다.
이른 아침 안개 낀 사원을 걸으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 할 순간이 여러 번입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설명을 어찌나 웃기게 잘 하는지, 함께 보기에 민망한 조각들이 유쾌하게 느껴집니다.
사원 곳곳에 아로새긴 조각들이 아름답습니다. 누가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인간의 힘이란 참 대단하기도 하구나 싶습니다.
사원 마당으로 걸어들어가니 이른 아침 고요한 사원에 깔리는 안개들 사이로 지금도 그 자리에 단지 서 있을 사원 군들의 모습이 그렇게 펼쳐진다. 참으로 인상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잠을 깨우는 발걸음에 기지개를 켠 사원들이 부시시 눈뜨는 것 같은 아침 풍경,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자리에는 그 사원들이 아마도 자기들만의 언어로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사원들은 인도-아리아 건축의 훌륭한 실례들이겠지만 무엇보다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우리가 여기 와 서있게 한 그런 이유들처럼, 매우 자유롭게 윤색된 장식들이라 한다. 사원 주변에는 예술적으로 매우 훌륭한 조각들이 펼쳐지는데, 천년 전 인도의 여러 가지 생활상, 신과 여신, 전사와 음악가, 실제 존재하는 동물과 신화 속의 동물 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혀 예술적 감성을 가질 리 없는 내 눈과 왱왱거리는 내 귀에는 건성건성 넘어가는 이야기들 너머로, 그저 참으로 선정적이나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아름답게도 보이는 장식들에 먼저 눈길이 머문다. 아마도 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은, 많은 조각들이 보여주는 생활상 속에서도 유독 자유롭게 표현된 성적 행위들을 다룬 장식들이다. 어릴 적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란 사진 전집을 보면서, 수 많은 사진작품들 중에서도 유달리 처녀의 젖가슴을 찍은 사진들과, 펼치자마자 확 나를 덮쳐왔던 이름 모를 그 사원 조각들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구나 생각하면서, 내 앞에 펼쳐지는 시간의 배열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온통 질러대는 굉음을 양쪽 귀로 느끼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더 현실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조각의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우리들의 가이드, 그는 참 이상한 재주를 지녔다. 한없이 느끼하고 한없이 으~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그 장식들을 설명하는데, 왜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것인지. 나도 그런 재주 함 가져봤으면 좋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여기 유독 이 사원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여기 카주라호에서는 대학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청년들도 있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짜슥들이 정말 그런 거였을까? 어찌 함 해볼라고? 그 아침 녁에? 하여튼, 지나가며 우릴 보고 한두 마디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 말일까 궁금했지만, 그야 알 수 없는 일이다.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다면 여기 자주 오고 싶기도 하겠다. 예술품 앞에서 맘대로 펼쳐내는 그들의 상상력이야 어찌 막을라고 ㅎ....... 들어올 때 안개에 가려있던 사원은 떠날 때도 여전히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