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디아
자이푸르는 '자이 왕의 성'이라는 뜻이라 한다. 1727년 자이푸르 번 왕국의 왕이었던 마라하자 자이싱 2세가 건설하였다고 하는데, 자이푸르는 무굴제국과 영국 지배하에서도 늘 협조적인 자세를 취한 탓에 존립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다. 영국 지배 시절에는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7세가 자이푸르를 방문했을 당시 마하라자가 온 도시를 분홍색으로 칠해 열렬한 환영의 표시를 한 이유로 핑크시티라고도 한단다. 역사를 보면 한 왕국이든 왕조든 흥망과 성쇠가 있고, 그 흥망과 성쇠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하였데, 이런 물줄기를 타고 흐르면서 구부리고 수용하고 협조하면서 존립해 온 도시를 보노라니 새삼 역사란 무엇일까? 하는 짧은 생각에 젖는다.
자이푸르에서 우리가 아침 안개를 휘저으며 도착한 곳은 암베르 성이었다. 암베르 성을 가기 위해서 우린 지프차를 탑승했는데,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지프차 운전자 아저씨 혹은 총각을 보면서 여전히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괜히 그들이 안쓰러워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신이 가진 직업에 매우 열심이고 또 그들이 그들의 몸을 움직여 살아갈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그럼으로써 가족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내 딴에는 찾아 헤맨다고 했던 일이, 어느새 내 안에 또 하나의 인식 틀을 형성해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내가 만약 내 하는 일이 하늘을 날 만큼 혹은 당당하게 가슴 펴고 자랑질 해댈 만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또 그런 내 잣대로 세상을 재려고 덤볐을지 모를 일이다. 벗어났다고 자신하는 순간 부딪히게 되는 내 한계를 이 곳 저 곳에서 만나게 되니, 어찌 보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갈고닦을 연마의 장인 게 분명하다.
암베르 성, Amber Fort는 자이푸르에서 북쪽으로 11km 떨어진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고 알려준다. 북쪽으로 11킬로 떨어져 있다는건 확인할 수 없었으나 구릉지대라는 말은 확실하게 맞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암베르 성에 올라보면 요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 뒤 양옆, 어느 곳이든 훤하게 트여있으니 접근이 그리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굴 황제 악바르와의 혼인 동맹을 통해 왕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마하라자 만 싱이 건설하였다고 하는데, 성 내부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다. 몇 번이나 본 상영시간 약 3시간에 이르던 인도영화 '왕의 여자'에는 암베르 성으로 보이는 장소와 아그라의 붉은 성이 나왔던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지를 돌이키는 단서를 만나면 가슴이 뛴다. 암베르 성도 영화에서 보니 반갑더라. 주인공들이 유명한 배우들이라 보기 더 좋았었다.
왕들, 소위 권력을 유지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어쩌면 그들은 그들만의 숙명 속에서 살아갔던 종족인지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마저 일정 부분 상호 간의 이익을 배제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성립할 때가 많은지라, 역사 속의 그들을 보노라면 양가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누구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불행 그리고 시대를 암흑으로도 황금빛으로도 칠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그 시간이 모이고, 그 시간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온갖 정신과 흔적이 흘러넘쳐 밥 짓는 솥의 마지막 눈물이 흐를 때, 역사 속의 그들이 생생히 살아 숨 쉴 수 있게 된다.
암베르 성을 벗어나서 도시로 들어오면 옛시가지와 어우러진 자이푸르 인들의 삶과 마주할 수 있다. 시장을 지나치면, 멈춰 서서 시장을 구경하고 싶고 온갖 것을 맛보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는 이 낯 선 도시에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누른다.
하와마할이라는 곳에 갔다. 핑크시티를 대표하는 볼거리인 일명 '바람의 궁전'이라는 곳인데, 179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외부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왕가의 여인들이 창가에 서서 시가지를 구경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란다. 바람의 궁전....... 그 이름 만으로도 아름답고 알싸한 기분이 느껴진다. 왜 바람의 궁전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속에 스민 옛 왕가 여인들의 마음 한 조각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의 궁전에서 내다보면 거리 양쪽으로 길게 형성된 상가에서 수많은 상인과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그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람의 궁전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창문이 나 있다. 갇혀있었는지 아니면 그 세상에 속했음을 행복으로 여겼을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나는 그녀들이 작은 창문을 통해 햇살 가득 품은 바람을 안고, 바깥세상을 훨훨 나는 꿈을 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마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별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갇힌 공간을 너무 싫어하는 성향이라는 그런지 그건 뭐 잘 모르겠지만, 나는 훤하게 트인 공간, 개방성, 넓은 이해심 뭐 기타 등을 좋아하지, 좁고 틀에 박힌 생각... 이런 것이 답답하다. 하긴 뭐, 그 창문에 서서 바람맞으며 밖이라도 쳐다볼라치면 그곳에 간택되어 가야 되는 게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ㅋ
자이싱 2세는 세종대왕쯤에 견줄 수 있는 왕이었을까? 우리는 하와마할을 지나 잔타르만타르 라는 이름의, 운율이 멋진 천문대에 갔다. 건축이나 천문학, 의학에까지 깊은 관심을 가졌다니, 자고로 왕이나 책임자는 높은 도덕심에 현명함과 총명함 그리고 불굴의 용기와 도전정신 그리고 따뜻함과 냉철함을 동시에 그러나 계획성이나 추진력 등도 함께 갖춰야 비로소 되는 자리였을 것 같다. 너무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리고 있을까? 그러나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럼 정말 멋진 일을 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 같다. 자이싱 2세는 우리가 지나왔던 바라나시, 뉴델리, 웃자인, 마투라와 여기 자이푸르에 천문대를 만들의 놓았고, 자이푸르의 그것이 가장 큰 규모의 천문대라고 한다. 총 18개의 천문대, 해시계, 적도시계 등을 갖추었고, 크기가 크기는 하지만 실제 관측은 정확도가 높았다.
시장으로 걸어 들어 갔다. 양쪽으로 울긋불긋한 온갖 상품들이 나부끼기도 하고, 좌판에 얹은 그들의 일상 한 조각이 거기 피곤하게 누워있기도 한 시장.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물건도 사고 그러고 싶지만 천천히 눈인사를 나누며 지났다. 거기에도 좁쌀도 있고 콩도 있다. 신기하다. 시장을 자주 다녀보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그 같은 물건들이 있으니 반갑다. 시장을 돌면서 생각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한편으론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