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디아
매캐한 밤공기, 밀리고 또 밀리는 도로, 정체된 도로에선 목적지가 더 먼 것처럼 느껴진다. 길게 목을 빼고 밖을 내다보지만,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줄을 제외하고는 주목을 끌만한 것이 없다. 꽤 길다.
슬금슬금 여행의 끝이 보이는 듯 싶다. 이제 남은 날이 온 날 보다 훨씬 적다. 잊고 있었던 각종 한국에서의 일 세트들이 기억나기 시작하고 있고, 갈 때의 일들이 하나둘씩 생각나기 시작한다.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한국의 묻힌 일들이 흙 아래서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때가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은 인도에 있으므로 인도의 정경에 취하기로 한다. 새벽까지 이어진 델리의 밤은 내게 특별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선 어쩌면 일시정지 버튼이 작동된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내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여행이 길어질수록 이런 느낌도 덤덤히 잊혀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됨으로써 여행지의 풍경이 오히려 더 무감각해지는 듯도 했다.
델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당연히 마하트마 간디와 관련된 것들이다. 우리가 들렀던 간디의 화장터와 묘역이 그랬고, 정갈하고 예쁘게 단장되어 있었던 간디 박물관이 그랬다. 이 둘은 그 위치가 인도의 수도라는 곳에 위치한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우 세련되고 고즈넉한 분위기와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우리를 맞이했다.
간디의 묘역은 넓은 잔디밭을 빙 둘러싼 터에 아름답게 놓여있고, 현지인들의 끊임없는 참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는 대신 묘역을 내려다 보며 천천히 걸었다. 넓은 터, 아름답게 가꾸어진 잔디와 드문드문 자리한 아름다운 나무가 고요함과 조화를 이루어내어 일종의 엄숙함마저 빚어내는 곳이다.
건물의 모양새가 연꽃을 닮아있는 연꽃 사원을 방문했다. 길게 줄을 늘어서서 입장하는 사람들 틈에서 한 명의 기도자가 되어 얌전히 설명을 들었다. 인도말로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희한하게도 알아듣겠다. 왜냐고? 이건 상상에 맡기겠노라. ^^ 아마도.... 거의 뻔한 설명이어서? ^^ 사진 찍을 수 없고, 큰 소리 내어서는 안되고... 약 몇 분의 기도시간을 가진 후 뒷사람을 위해 퇴장할 것.... 뭐 등. 아마도?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길고 복잡했던 줄을 섰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고요하다. 저마다의 마음에 담은 기도를 소리 없이 조용히 풀어내는 사람들.... 종교에 상관없이 입장하고 종교에 상관없이 저마다의 신을 향해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이 곳 연꽃 사원이다. 신선하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여기 이 먼 곳에 와서 무엇을 위해 고개 숙이고 눈 감는가... 어쩌면, 세속적인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이유들이 기도 세트처럼 펼쳐지는 게 당연하다. 가족들을 위해 내 첫 마음을 내어주고, 끄트머리에는 여기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 현실적 삶을 살게 될 나에게 한 조각 축복을 염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팔을 거쳐 인도로 오면서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행복이 깃들기를 내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내 작은 기도 한 움큼쯤이야 약 2억 또는 3억에 이른다는 그들의 신이 내린 축복에 비하면 보잘것없겠지만, 난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을 다 해, 그들이 그들 신의 품 안에서 행복하게 이생을 살기를 바랐고, 사후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바랐다.
내 살 길도 구만리 건만 푼수처럼 거기 앉아서 묵상하는 내내 실데없이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들의 신들이 그들의 삶을 제대로 보살펴주기를 바랐고, 그 순간 그곳에서 현지인들의 삶과 공명하게 된 놀라운 인연에 감사했다다.
말없이 조용히, 양말만 신은 발로 걸어나와 푸댓자루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나름 재밌다.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다. 그런데 작은 통로 양쪽을 보니 전부 철조망이 가득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심산인 것 같은데, 작은 나무 울타리로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을 저렇게 위험한 철조망, 가시가 예리하게 달린 철조망을 인도를 따라 가득 쳐놨다. 누구라도 비틀대다가 걸리기만 하면 살이 찢어질 텐데, 참 이상하다. 이 사람들은 원래 이러나..... 화도 나고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에 불쾌함도 든다. 애들도 오고 맨 발에 맨다리의 현지인들도 많던데 어쩌라고.... 내가 모르는 그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을까.
시내를 돌고 돌아 들른 곳은, 마하트마 간디 박물관이다. 아름답고 단아한 인상을 풍기며 남아있는 곳이다. 들어서니 일단 고요하고 깔끔하고 예쁘고 단장이 잘 되어있다. 간디가 집을 나서서 저격을 당하게 된 시각까지 그가 매일 걸었던 길에 난 그의 발자국, 물레를 돌리는 모습, 그리고 그가 펼쳤던 많은 일들이 사진으로 영상으로 혹은 기념적인 모습으로 보존되고 전시되어있다.
인도인들의 마음속에 남은 간디는 어떤 모습일까? 많은 영감을 주고 영향을 주었을 간디는 또 생각이 다른 사람의 손에 저격을 당했다. 그리고 간디가 했던 그 일은 현재 인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분히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많은 판단 속에 숨은 그 의미가 훗날 어떤 모습으로 존재케 될지를, 단지 그 순간 자신의 선택에 충실할 뿐.
델리에서 간디 박물관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슬그머니 빛을 품고 사라져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던 인도문의 위용과, 인도문 뒤에서도 빛을 잃지 않던 붉디붉은 색깔로 당당하던 둥그런 태양의 모습이다. 인도문, India Gate는 42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데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던 9만명이나 되는 인도 병사를 위한 위령비라고 한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영국 측에 협력해서 참전을 하면 전쟁이 끝난 후 독립을 보장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커다란 희생만을 치르고 전쟁은 끝나버렸다 하니, 석양 속에 서있는 인도문이 마치 수심에 가득한 모습으로 오버랩되는 것 같다.
인도문 주변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작은 기념품들을 팔기 위한 각양각색의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노을 지는 하늘이 토해내는 붉은 해 아래에서 선명한 그림을 빚어낸다. 선명하고 분명한 하늘과 붉은 빛깔의 해를 등지고 선 인도문, 그 아래 개미처럼 오가며 재잘재잘 오밀조밀 그들만의 그림을 빚어내는 사람들.... 이 모두가 인디아 게이트 아래에 와서야 완성되는 풍경이다.
저녁을 먹고 델리역으로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시크교 사원에 들렸다. 사원 안의 환하고 밝은 조명과 밖에 드리워진 어둠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시크교도들 특유의 터번과 검게 기른 그들이 수염이 어스름한 밤의 어둠과 더해져 기묘한 검은 느낌을 준다. 조금은 살짝 두려움도 올라온다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에 와서 인도 여행을 떠올려보면, 인도 여행에서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 펼쳐지던 아르띠 푸자, 그리고 아그라의 타지마할, 카주라호의 에로틱 사원, 인도문 뒤에서 당당하게 스러져가던 태양 그리고 또 하나 야간열차를 타고 하던 기차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침대 기차를 타고 열여섯 시간 이상을 가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거기다가 2시간을 연착했으니 열여덟 시간을 꼬박 침대 기차를 타고 갔다.
사람들은 이 여정이 가장 힘든 여정이니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기차표를 사는 시스템이 우리와는 많이 다른 모양인지, 예약하면 좌석이 바로 확보되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닌 모양이었다. 현지인이 구매를 했지만 기차를 타러 갈 때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확실해진 듯했다.
어두워진 밤,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 도착했다. 기차에 올라보니 생각보다 좁은 통로에 내 자리는 떡대 좋은 현지인 아저씨, 심지어 능글맞게도 보이는 아저씨들이 앉아있는 그 자리이다. 이런 젠장~~ 된장~~. 분명 내 자린데 전부 차 있다.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씩씩하게 용기 내어 내 자리를 보여주었다. 거기 안에 앉으라 한다. 창가 쪽 제일 안쪽에 꼼짝없이 갇히게 됐다. 오우~~ 이런.......
어쩔 줄 모르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내 모습이 마치 똥 마련 강아지쯤 되어 보였던 모양이다. 덩치 엄청난 한 아저씨가 저쪽 자리로 가셨다. 구세주 같다. 이번엔 아예 그 자리에서 나를 뚫어지게 즐겨 감상하고 계신다. 아우~~~ 정말~!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는 매력이 없는지 내가 아니라 내 옆의 예쁜 그녀였다.
어찌할 줄을 몰라서 당황해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고 그러는 동안 내부가 눈에 익고 내 옆 창가와 선풍기 그리고 에어컨 또 놓인 물건들과 가방도 익숙해진다. 사람의 적응력이라는 것이 이토록 놀라운가 싶다. 금세 내일 오후까지 머물러야 할 장소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가급적이면 그 자리에서 보람찬 시간을 보내리라 굳은 다짐을 한다.
낯선 이국적인 여인네의 얼굴이 이상한지 한 아저씨는 참 열심히도 쳐다보신다. 다행인 것은 그 아저씨의 눈에는 나보다 내 맞은편의 사람이 호기심의 대상이다. 웃어야겠지? 그녀도 이 사실을 눈치채고 우리끼리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혼잣말을 했다. "정말 미치겠네, 저 아저씨 왜 저렇게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야 진짜~" ㅋㅋ " 관심 있으신가 봐요 ㅎㅎ"
저녁이 되어 화장을 지우고 정리하고 자리에 누울 때까지 유심히 도 관찰한다.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아마도 우리가 나름 신기한 족속이었으리라. 사리를 걸치고 머리를 기른 그들 여인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동과 언행 표정으로 다른 물건들을 소지하고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하긴 여행자들의 그들이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내 앞에 있는 그녀를 제외하고 나면 내가 아는 주변에서 나를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마주 보고 옆으로 나 있는 좌석까지 합하면 모두 여덟 명이 마주 보게 되어있는 칸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내 맞은편 그녀였다. 나머지는 모두 현지인들이다. 낯설고 좁은 공간, 낯선 공기와 낯선 소리들 사이를 뚫고 시간을 흘러간다. 때가 되어 세수를 하고 열 시쯤 되니 나 아닌 타인을 위해 불을 꺼야 한다. 그게 배려이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각자에게 두 장의 세탁된 흰색 시트 두 장과 담요 하나가 지급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감한 피부가 언제 트러블을 일으킬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하얀 면시트 두 장을 보니 세상 근심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한 장을 의자에 깔고 벽으로 높이 올려 내 팔이 닿을지 모르는 부분까지 끌어올려 걸어두었고 한장은 얌전히 덮었고 온 몸을 그 천을 의지하여 감았다.
눈을 감고 누워서 잠을 청한다. 철커덕거리며 가고 있는 열차의 소리를 느끼면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내쉰다. 철커덕철커덕... 부디부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있다가 눈뜨기를. 그래서 꼼짝없는 공간에 갇혀 앉아 말똥말똥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온 사방에 내린 어둠과 에어컨이 쏟아내는 바람을 느껴본다.
기차소리 이외엔 사방이 고요하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지금은 밤이다. 잠을 잘 시간이다. 침대 기차를 타고 잠을 자며 이국땅을 여행 중이다. 부디 오래 잠들어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