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 마지막 리뷰
나는 대학생이다. 스펙과 취업에 대한 압박감보다는 캠퍼스의 낭만이 더 가깝다. 이따금 주위에서 들려오는 취업 시장의 비관적 전망이나 위축되는 구직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먼 미래의 이야기 같았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양복을 입고 취업 박람회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스토리에 100% 공감할 수는 없었다. 원래 남의 죽을 병보다 내 고뿔이 더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다양한 매체에 회자되는 그들의 안타까운 스토리에 공감을 못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나는 아니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수험생들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블랙 유머가 있다. 자신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소위 명문으로 불리는 대학교들이 자신들을 ‘모셔’ 간다고 생각하지만, 수능을 보고 난 뒤에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이렇게 대학교가 많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실력에 맞는 대학교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성적과 상관없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이 유머를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자신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이 유머는 비단 수험생들에게만 통용되지 않는다. 많은 대학생들은 스스로가 소위 말하는 실력자라고 생각한다. 고용 시장의 축소로 많은 졸업 예정자들이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은 탄탄한 계획을 바탕으로 면접과 서류를 준비해 졸업 후에도 탄탄대로를 걸을 거라 주장한다. 이러한 확신은 자신이 속한 학교의 명성이 높을 때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
2016년까지의 나는 위에서 언급한 ‘많은 대학생’ 들 중의 하나였다. 좋은 고등학교를 배정받고 좋은 외국 대학교에 붙은 건 오롯이 나의 실력에서 비롯된 성과이며, 이전에 해왔던 대로 교수님들의 커리큘럼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간간이 필요한 스펙만 쌓으면 이 성과가 졸업 후까지 이어질 것이라 거의 확신했었다. 하던 대로 하다 보니 심지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전국 유명 동아리의 부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하고 하고싶은 직군의 인턴 자리까지 얻을 수 있었다. 사례가 모이면서 이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 이론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 <일취월장> 별론데?
2016년에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몇 년 동안 못 본 친구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왕십리에 위치한 치킨집으로 갔다. 치킨을 뜯고 있다가 친구 옆자리에 책 몇 권이 담긴 봉투가 있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친구라 무슨 책을 샀나 몇 권 꺼내어 보고 있다가 <완벽한 공부법> 이라는 꾸며지지 않은 투박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의 나는 공부법 회의론자 중 하나였다. 고등학생 때 가장 많이 들어온 조언이 ‘올바른 공부법’ 의 수립이었다. 그러나 용돈을 아껴가면서 구입한 수많은 공부법 관련 도서는 대부분 기대 이하였다. 작가가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이든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학 석사를 졸업했든 그들이 제시하는 공부법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의 상황과 성격에 맞지 않았다. 갈수록 ‘공부법’ 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책에 깊은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그저 열심히 쓰고 외우면 대부분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러한 불신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완벽한 공부법> 은 달랐다. 다른 책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고 세밀하고 실용적이었다. 저자인 신영준 박사의 강의를 통한 응용으로 책 내용을 참고해 난생 처음 극적으로 살을 빼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학생의 가장 큰 고민인 ‘공부’ 에 대한 제대로 된 조언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플래너 형식인 <두근두근>을 제외하고) 후속작인 <일취월장>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책이 <완벽한 공부법> 못지 않게 두꺼웠고, 무엇보다 책의 주된 주제가 ‘일’ 이었다. 솔직히 대학생이
‘취업’ 이 아닌 ‘일’ 에 대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할지 의문이다. 업무의 성격 등과 상관없이 충분한 보수가 지급되는 직장에 취업만 되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대부분이다. 책에 실망했던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은 ‘운’ 이다. 많은 책이 픽사의 역량과 이에 투자한 스티브 잡스의 통찰력과 예측을 칭송하고 있지만, 이 책은 픽사의 설립부터 성공까지 운이 대부분이었다고 주장한다. 성공에 운이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나의 이론과 완전히 반대되었다. 솔직히 신영준 박사와 고영성 작가에 대한 팬심으로 책을 구입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전작보다 못한 책’ 이라는 평가를 잠정적으로 내렸었다.
#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일취월장>은 나름 읽을만한 책이었다. 최악을 대비해라, 올바른 사고를 해라, 선택을 잘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앞에서 말한 취업 박람회에 참석한 사람들에 가졌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해는 했지만 공감은 하지 못했다. 책을 다 읽었지만 그때까지 나의 생각에 큰 변화는 없었다. 심지어 쉬워 보이는 이것들을 다 지키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착각해 오히려 일을 과소평가하기도 했다.
책의 컨텐츠들도 나의 상황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내용으로 보였다. 리더가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지금 배워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들이 사람을 채용하는 방법을 굳이 알아야 하는가? 직원을 우선시 해야 하는 이유를 지금 알아야 하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책에 대한 관심은 뚝 떨어졌다. 서평은 쓸 생각조차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꾸역꾸역 책을 다 읽고 얼마 뒤, 페이스북에 저자가 직접 운영하는 멘토링 프로젝트 3기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평소에 만나고 싶었던 분 옆에서 다른 강연에서 밝히지 않은 무언가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을 했고 운이 좋게 합격했다. 프로젝트에 합격한 다른 사람들의 정체를 모른 채 첫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만나서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다른 참가자분들의 대부분은 나같은 학생들이 아닌 실제 직장을 다니시는 직장인이었고, 그들은 입을 모아 <일취월장>이 엄청난 책이라고 말했다.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두어 번 읽으신 분들도 계셨고, 심지어 어떤 분은 일취월장의 내용을 정리해 자신의 블로그에 꼼꼼하게 정리해놓으시기도 했다.
첫 만남이 끝난 뒤 각자의 직장 경험을 엮어 책의 내용을 정리한 글들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았다. 처음 읽을 때는 당연하게 보였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내용들이 사실은 실제 일터에서 통용되는 중요한 원칙들이었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를 실천하지 못해 고통받거나 반대로 이를 효과적으로 실천해 성과를 내고 있었다. 책을 잘못 읽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다시 첫 챕터인 <운> 부터 읽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읽을 수록 머리 속에는 한 단어가 떠올랐다. “X됐다.”
# 이 책은 리더를 키우는 책이다
2주 간격으로 열리는 총 다섯 번의 모임 중 4번의 모임을 나갔다. 이에 더해 <일취월장> 에 관련된 두 작가님들의 다양한 강의를 시청했다. 흔하디 흔한 지침들이 가득한 책처럼 보였던 <일취월장> 의 깊이는 상상 그 이상으로 깊었다. 다양한 자료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바뀐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한 마디로 정리된다. 이 책은 ‘리더를 키우는 책’이다. 이 키워드를 이해하면서 비로소 왜 나에게 사족처럼 보였던 컨텐츠들이 책 속에 있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리더가 필요하다. 근데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할까? 리더는 ‘이끌다’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세간에 알려진 리더는 보통 큰 단체나 회사의 의사결정권자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취월장> 이 지향하는 리더의 의미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리더는 ‘회사를 포함한 단체를 이끄는 리더’ 이다. 소위 말하는 ‘회장님’ 이나 ‘사장님’ (이 될 사람들) 이 해당된다. 회사의 성장과 인재의 등용에 끝없는 고민을 거듭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조직>, <전략>, <혁신>, <미래> 챕터를 통해 다양하면서 효과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한 사람의 인재를 데려오는 것보다 그 인재가 속한 팀을 영입해야 하는 이유, 미국 최고의 게임 기업에 관리자가 없는 이유,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어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책에서 지향하는 두 번째 리더는 ‘자신을 이끄는 리더’ 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직장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일을 잘하지는 않는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많은 직장인들은 여전히 미숙한 부분이 많고, 한계를 실감하고, 그리고 잘못된 선택에 고통받는다. 일을 선택하거나 끝맺을 때는 항상 서투르다. 언제 사표를 쓰고 어떻게 이직을 해야하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는 이러한 일의 효율을 높이고 인생을 윤택하게 만드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한 방법을 <성장>, <선택>, <사고> 챕터를 통해 제시한다.
마지막 세 번째 리더는 ‘운을 읽는 리더 (reader)’ 이다. 작가들이 강조했듯,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 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태도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실력을 키우면 ‘운’ 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완벽한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운’ 의 영향력이 미치는 어떤 분야에서도 완벽한 예측은 있을 수 없다. 책에서는 <운> 챕터를 통해 불확실성이 항상 존재함을 인지하고 최선보다는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다섯 가지만 기억하자
사실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해서 책의 내용을 실천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특히 <일취월장> 은 더욱 그렇다.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일보다 하위 레벨인 ‘공부’ 를 다루는 <완벽한 공부법> 의 내용도 아직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직장에 다니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 또한 <일취월장> 의 내용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꼭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5가지를 기록함으로써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잊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지고자 한다.
절대 운을 잊지 마라.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분야는 복잡계에 속해있다. 복잡계는 운의 영향력 아래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편향으로 가득한 예측을 지속하면 전례없는 극단값인 ‘블랙 스완’ 에 취약해진다. 이러한 운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남으려면 1) 자신이 속한 산업에 미치는 운의 영향력 정도를 측정해야 하고2) 인간의 ‘종결 욕구’ 를 억누르고 불확실성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3) 최선보다는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또한 복잡계에서 통용되는 법칙들 (멱법칙, 파레토, 창발성) 을 이해해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질보다 양이다.
올바르게 사고하라. 다섯 가지 사고 (반성적 사고, 통계적 사고, 시스템적 사고, 맥락적 사고, 재무적 사고) 를 항상 염두에 두고 각 사고에 속한 전략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선택의 프로세스에 익숙해져라. 인식론적 겸손은 고려했는가? 선택안은 충분한가? 검증의 과정은 거쳤는가? 경쟁자는 고려하였는가? 최악을 대비했는가?
다양하게 경험하고 새롭게 연결하라. 혁신은 아예 새로운 것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기존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념과 아이디어를 조합하고 연결하면서 창의성과 혁신성이 발휘된다. 이를 위해 기존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고 이를 가공하고 연결시키는 ‘실질학습’ 을 통해 혁신적인 결과를 생산해내야 한다.
계속해서 성장하라.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하는 한편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심화하고 응용하라. 습득한 지식을 정리하고 전달해서 새로운 컨텐츠를 생산해내기 위해 노력하라. 새로운 정보의 수집을 두려워하지 마라. 자신 주위에 형성된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구성원들과 자신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이기적 이타주의자’ 가 되어라. ‘이성적 몽상가’ 가 되어 해결할 수 있는 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라.
이 글은 서평이고 감상문이며 동시에 나에게 쓰는 경고문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나의 기존 생각은 모두 틀렸다. 학생이라는 신분은 언젠간 끝난다. 머지 않아 인생의 대부분을 다양한 ‘일’을 하는데 쓰게 될 것이다. 그 때 고민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지금부터 ‘일’ 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닌 학생 신분’이니까’ 고민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