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고요
문턱을 넘자
도시는
숨을 낮췄다
회색의 소음 위로
은은한 그늘이
겹겹이 내려앉고
바람은
말 대신
향을 건넸다
연등은
빛을 모으되
자랑하지 않았고
마당의 침묵은
발걸음을
부드럽게 풀었다
이곳은
사라질 이유를
수없이 건넜고
떠날 명분도
여러 번 받았지만
결국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왕조의 그림자와
전쟁의 잔향,
번영의 번쩍임까지
모두를
같은 숨으로
견뎠다
그제야 알았다
아름다움이란
눈부심이 아니라
세월을 통과한
고요의 밀도라는 걸
나는
아무 기도도
적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
여기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를
충분히
지탱해 주고 있어서